청강대학교 만화창작학과 박인하 교수님의 아이유에 대한 사태를 두고 가와이이 미학에 대하여 쓴 글을 보았고, 나는 거기에 대한 덧글을 단 후에 다시 답글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분의 덧글을 바라보면서 현대사회의 인간이 겪는 모순을 생각했다. 과거 여성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의 시선을 보면서 이번 아이유 사태를 다시금 생각한 것은 이른바 “국민 여동생”이란 하나의 스펙타클이었다. 스펙타클은 이미지가 매개되는 사회이고, 이미지라는 것은 있는 그 자체가 아닌 만들어진 가상적 존재이지만, 그 가상의 존재성이 현실의 인간에게 하나의 사실성으로 다가오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2004년 <어린 신부>라는 영화가 있었다. 거기 주인공으로 등장한 문근영 씨는 히로인으로 연기했다. <어린 신부>에서 아직 나이가 어린 여고생이 학교의 미술선생으로 오신 소꿉친구 오빠가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운명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결과는 그 오빠는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자신도 그 오빠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다. <어린 신부>에서 보여준 문근영 씨의 연기는 이른바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리기 좋은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10년 후의 아이유에게서는 그런 점이 다르게 진행되었다.

 

문근영 씨의 과거는 무척 귀여운 소녀인 점은 분명하지만, 그녀는 아이돌이란 이름으로 영화관에 등장한 게 아니라 단지 연기자 중에서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란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후 문근영 씨는 꾸준히 연기를 펼쳐 좋은 영화를 선보이고, 최근 개봉한 <사도>에서는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는 혜경궁 홍씨로 등장한다. 과거에 보이던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60살 환갑장치에서는 할머니 연기까지 완벽히 소화한다.

 

문근영 씨는 완벽한 연기자이고, 이제는 영화세계는 훌륭한 배우일 수밖에 없다. 아이유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래 되었는가? 아이유 역시 국민 여동생이란 별명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이돌문화 그 자체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 관심을 가져도 아이돌 그 자체에게 관심은 없다. 여성의 성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문화산업을 통해 수익을 거두거나 혹은 그 자신조차도 그런 기회를 노리는 것만을 나쁘다고 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어 하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만약 대중가수 프로그램에 락이 나오고, 발라드가 나오고, 그리고 아이돌이 나와 서로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준다면 아이돌이 대중문화에 다양성이 될 수 있을 것이나, 지금은 오히려 아이돌 그 자체가 대중문화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돌은 인간이지만, TV매체 혹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계에서 하나의 신이 되었다. 신은 반드시 신성한 존재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도 가능하다. 샤머니즘에서 인간의 군주는 신의 대리인이거나 혹은 신의 후손이라고 자부했다.

 

신의 대리인에게 오는 것은 오로지 복종의 환희만 가능했다. 믿음이란 영역에서 신앙적 요소와 달리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만이 용인되었다. 최소한 신앙의 세계에서는 경전으로 통해 믿음을 요구하지만, 그 믿음과 경전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추구해야할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까지 넘어간다. 종교에서 단순히 신앙생활이 믿음만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믿음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삶의 미학에 이어지는 순간 진정한 종교생활이 탄생한다.

 

아이돌은 종교가 아니지만, 현대적 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이다. 한국에서 아이돌 이전의 아이돌문화로 보자면 조용필 씨를 시작하여 이승철, 이승환, 김현식, 임재범 등과 같은 보컬리스트(락문화)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지오디 같이 남성가수, 이제는 대부분은 여성가수로 되었다. 여성가수에 대한 광적인 반응은 남성에게는 성적인 판타지를 여성에게는 자신도 아이돌여성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에 대한 욕망이 다시 타인으로 투영되는 것으로 그들만의 커뮤니티 즉 사회성을 획득한 것이다.

 

아이돌가수, 그 중에서 왜 아이유만이 이런 독특한 아이덴티를 가지게 된 것인가? 아이유가 국민 여동생이란 칭호가 그렇다. 아이유는 김광석이란 포크송 가수를 좋아했고, 그의 노래를 좋아하여 많이 따라 부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녀가 부르는 곡은 팝적인 요소가 많으며, 다른 아이돌가수처럼 날카롭거나 혹은 모델 같은 여성의 모습이 아니다. 국민 여동생이란 단어는 결국 친숙성을 대중들이 받아들이게 한 이미지다. 아이유란 사람이 실제 어떤 인간이고, 무슨 가치관과 생각을 하는지는 주변에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알 수 없다.

 

오로지 미디어에 의해 그녀를 그런 모습으로 보여주게 만든 콘텐츠제작자의 의도로서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민여동생이 되어야 했던 아이유, 그리고 대중의 호의는 긍정적인 요소와 더불어 부정적 요소까지 만들어내었다. 대중은 국민 여동생이란 단어에서 자신만의 공간에 있어주길 바라는 것,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것으로 보려고 했다. 박인하 교수님이 가와이이 미학처럼, 아이유는 가와이이에서 귀엽다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남성이 단순히 여성을 여자 친구나 애인으로 삼고 싶다는 것 이상으로 내가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전국의 수많은 팬들이 그런 생각을 해도 아이유가 만일 결혼을 하거나 애인을 사귄다면 단 하나의 남성일 뿐이다. 여러 남성과 복잡한 관계가 되면 그 이상의 치명적인 상황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저 팬들이나 혹은 대중들은 아이유는 그렇게 보여주었으니 앞으로도 역시 그래야 한다는 스펙타클을 끊임없이 생산한 것이다. 수동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 아이유의 모습에 곧 관객조차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수동성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생산된 것이다.

 

최근 장기하 씨와 일에서 자신들만의 세계에 균열을 발생한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게다가 제제의 일에서 일화가 만파하다. 만약 최근 유행하는 섹시아이콘의 아이돌이 그런 대사를 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이유라는 이미지에서 그런 가사를 제작한 점에서 대중과 팬들을 용납할 수 없다. 최근 아이돌에서 여성댄스그룹은 팜 파탈 이미지가 강하다. 강렬한 화장과 의상, 그리고 몸동작은 남성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 강렬함에 남성들은 거부감 내지 위축성을 느낀다.

 

이와 다르게 아이돌로서 아이유는 그런 팜 파탈 이미지가 배제된 인물이다. 팜 파탈의 이미지가 강한 아이돌에게 남성은 능동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배제된 존재로 이어진다. 하지만 팜 파탈이 없다면 그런 불안 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강박의식에 벗어난 가수에게 예상하지 못한 가사의 등장은 분명 불안한 요소를 재발견하게 된 것과 같다. 익숙해야 할 것이 익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게 되어 섬뜩하게 여기는 언캐니적인 요소가 등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이 익숙한 것에 의존하려는 것은 대부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런 일이 일어난 계기는 현대사회의 남녀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과거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과거의 시대를 많이 따라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변화하자 관계성이 무너졌다. 아직도 한국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많은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남성 역시 그 불리한 요소를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부 소수들의 권력과 자본의 독식으로 그 외의 인간들은 소외된 점이다.

 

단순히 이런 문제를 남자가 바라보는 여성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남성이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조건에서 임금이 남성이 높다고 하나, 최근 직업군에서 남성만 할 수 있거나 여성만 할 수 있는 일의 직종은 점차 줄어든다.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종, 기술, 하부관료에서는 오히려 여성들의 강한 진입을 보여준다. 20~30년 전만 해도 가정의 모든 경제적 생계수단은 아버지로부터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버지 혼자서도 힘들고, 남녀 모두 맞벌이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많은 남성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많은 여성들도 기존 사회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불리함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하면 그것은 남녀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라는 커다란 구조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많은 남성들은 군대를 2~3년 보낸 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간다. 그러면 자신과 동갑인 여성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으로 동갑이라도 회사에서는 엄연히 직상상사이고, 선임이다.

 

자신의 위치와 현실적 조건에서 느끼는 간극에서 대중문화와의 관계성에서 아이유의 인기에서 국민 여동생 이미지는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 심리와 보상 심리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심리적 안정성을 추구하려던 그들에게 균열이 온 셈이다. 가와이이 미학이란 요소에서 본다면 남성들은 자신들이 아주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감을 다시 되찾지 못하여 그것을 대체할 그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ualia 2015-11-09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동녘 출판사 측으로선 광고 효과는 크게 보는 것 같습니다. 즉 동녘 측에서 의도했든 안 했든 아이유라는 대형 아이돌 스타를 통한 일종의 “스타 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얘기죠. 저는 이런 측면에서 (야유의 형식을 빌려 진중권도 지적했지만) 동녘이 아이유 사태에 유감 논평을 냈을 때 좀 의아스러웠고, 약간 의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시/소설/문학작품을 사지선다형 문제 풀이식으로 가르치는 한국 국어 교육의 박제화된 논리가 저기에도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이윤 추구를 제1 목표로 삼는 기획사 체제로 돌아가는 한국 대중문화/대중음악계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자유로운 창작 욕구와 독자적 작품 세계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활동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은둔 공간에선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철저하게 상업적 논리/방법론/목표로 아이돌들을 ‘픽업’하고 조련해 하나의 대중문화상품으로 제작/판매하는 기획사들이 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섹스 칸셉트(혹은 섹시 칸셉트)를 노골적으로 적용하는 게 이제는 한국 대중문화/대중음악의 보편적 양식이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하나의 일정한 세태/풍조로 자리잡아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와중에 혹은 이행의 과정에서 아이유 사태가 불거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결국 이런 생각도 만화애니비평 님의 위 진단과 비슷한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만화애니비평 2015-11-09 10:28   좋아요 0 | URL
한국 기업형 자본주의 윤리는 인간적 가치를 다루는 게 아니라 기업주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이 인간으로 보는 것보다 상품으로 가고, 특히 여성성을 이용한 성적인 전략에서 아이유는 역으로 이용하는 컨셉으로 갔다는 것이죠.

아이유가 솔직히 하나의 인간이고 여성인데, 자신의 감정과 마음조차도 미디어에서는 매도당해야 하는 운명이죠. 아이유는 그래야 한다는 식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한계성은 자신의 개성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감이나 취향을 적용하기에 그 미적선택의 범위가 좁고도 좁은 한국사회의 단편적인 이질감이라고 말하기에 님의 질의는 정확하게 맞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중의 지적이 신경질적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본 것이지요. 확실히 이번 앨범은 로리타 취향을 저격했습니다. 문제는 나이죠. 그 로리타 취향의 대상이 5살이냐 혹은 13세 이상이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5세를 저격했다면 그건 정말 추하죠. 그건 소녀에 대한 판타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범죄적 요소이니 말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11-10 17:17   좋아요 0 | URL
아이유 연세가 23살이면 엄연한 성인이고, 게다가 연애를 해도 무방하고, 자신의 의지로서 결혼도 할 수 있죠. 대중이 그런 아이유에게 언제까지나 소녀라는 이미지를 원하는 욕망이 보인다는 점이죠. 오덕 사이에서 로리지온 누님연방이란 영원한 라이벌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