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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을지로순환선>을 말하면 서울지하철 2호선을 말한다. 지방에 사는 나라도 서울 을지로를 순환하는 지하철을 알고 몇 번 타 본적이 있다. 서울에 가면 중요한 시내를 환승할 때 2호선을 빠질 수 없는 구간이다. 신도림역과 합정역, 잠실역과 사당역, 우리 형이 작년까지 서울 봉천동에 살 때 내가 내리던 역도 2호선이었다. 2호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서울의 지하철은 서민의 발이다. 교통체증이 심하고, 인구 대부분이 서울경기도에 집중된 한국사회에서 지하철의 만원사태는 항상 본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서울은 지하철 중심의 교통체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일반 아파트 단지부터 시작하여 쇼핑센터, 대학교 및 정부 공공기관마저 그렇다. 모든 중심이 지하철로 매개되어진다. 그러나 최호철 선생의 <을지로순환선>은 지하철 내부를 보여주거나 지하철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을지로라고 하는 것은 지하철 노선이기도 하겠지만, 맨 처음 검은 바탕에 그려진 하얀 실선의 그림들은 서울의 한 바퀴를 돌아가는 것처럼 서울이란 도시를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로 보고 그려낸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거나 혹은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세상은 발전되면 될수록 좋아진다고 하나, 왠진 그것은 꿈과 같은 이야기다. 꿈이라도 좋은 꿈이 아니라 최악의 악몽이다. 남의 입에 들어가는 좋은 떡을 보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인가? 내 입에도 하다못해 콩고물 하나라도 들어가 그 달콤한 맛을 보는 것이 좋을지 모르나, 세상은 오로지 그것을 멀리서 부러운 시선으로 보도록 한다.
이런 세상에서 매일 같이 일상을 전쟁터로 보는 이들의 삶은 어떤가? 삶에 흔적에 언제나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한 하늘 위에 구름이 잔뜩 끼여 낮에 맑은 하늘과 밤에 반짝이는 별조차 볼 수 없다. 하지만 구름은 언제나 이동하고, 그 농도가 강해지면 비로 내린다. 비가 내린 하늘은 맑고 푸르며,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그런데 왠지 우리의 서울하늘은 언제나 여름철 장마전선인 모양이다. 눈에는 분명 하늘은 맑은데, 마음의 눈에는 언제나 흐림이니 말이다.
16세기 영국의 왕국은 국가재정을 탄탄하기 위해 혹은 영주가 자신의 부를 늘리기를 위해 농지에 살던 농민들을 모두 내쫓았다. 농민들은 왕과 영주를 위해 농사를 짓던 농노였다. 그들을 내몬 이유는 그 자리에 목축지를 만들어 양을 풀었고, 양에서 나오는 양모를 팔아 수익원을 삼았기 때문이다. 농지를 잃은 주민들은 모두 도시로 흘러가고, 배고픔과 추위에 시름 앓는다. 운이 좋으면 공장의 노동자나 부잣집 하인으로 고용되나, 대부분 거지나 좀도둑이 되어 마지막에 범죄자로 몰려 고문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다.
서울이란 도시 혹은 서울 인근에 위치한 지역이 급격한 성장한 현대사회에서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자들은 계속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내쫓기게 된다. 그들은 더 저렴하고 개발이 당장 되지 않을 것 같은 곳을 찾다가 멀리 이동한다. 나쁜 주거환경, 불편한 교통여건, 각종 공공성 재산이 없어 항상 생활은 허덕인다. 우리 이웃은 이렇게 우리의 이기심에 의해 우리의 눈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 역시 살아가야 한다. <을지로순환선>으로 그려낸 최호철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이란 이렇게 아프지만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이 있는데 말이다. 땅 밑이 있어야 땅 위에가 존재한다. 토대가 있어야 멋진 건축물과 빌딩들이 하늘을 향하여 올라갈 수 있다. 거만한 인간의 욕망은 마치 하늘 위에 존재하는 절대자처럼 되고 싶은지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차가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그것조차 없다면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