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배우가 선박침몰사고로 죽은 희생자의 가족에게 막말을 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참 답답하기 짝이 없다. 셰익스피어라는 대문호의 글을 인용하면서 정작 중요한 점은 정치적인 입장에서 헌법에 대한 기본적인 맥락을 제외했다. 즉 문학적으로 말하면서도 정치철학적으로 배제된 글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제는 우리는 역사가 시보다 철학적인 상황이 도래했다.


하지만 역사라고 해도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있다. 국민 대부분이 그 현장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세계라는 이미지로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는 이미지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은 결국 문맹인으로 되는 것처럼 가상세계의 이미지가 제 아무리 실재하는 현실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의 가상이다. 우리의 현실은 역사적 가상이란 시로서 움직이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그 배우의 문제점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도 그만의 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의 기본법률은 헌법이고, 헌법에 명시된 국가정부와 행정기구가 과연 그렇게 제대로 대응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적인 기록을 본다면 인간이 극단적으로 몰리는 것에 대한 비관찰성이다. 타인의 관찰은 넘어가도, 결국 자신의 개인적 내력으로서 자신의 비극적 삶을 관찰하게 해준다.

 

단지 실수는 자신의 형님이 돌아가신지 10일이 지났다면, 그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고, 그 원인과 배경을 상세히 나열해야 한다. 선박사고는 정해진 용량초과, 안전도구 미비, 선원들의 직무자각인식(비정규직 내지 근로조건 열악도 포함), 해경과 해수부의 관료조직의 부패, 거기에 연류된 정경유착과 암묵적인 비리가 원인이다.

 

누군가 분명히 약속을 하고, 그렇게 해준다고 선언했지만, 전혀 뒤에 일어난 반응은 시원치 않다. 약속을 먼저 했다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세워야 한다. 물론 피해자 측의 과도한 발언을 문제삼는다면, 그것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인물에 대해 과오가 있다면 인정해야 하나,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단지 욕을 해서 욕을 했다는 어리석은 판단이다.

 

부모의 죽음에서 그것은 자신의 배우인생이란 개인적 책임이지, 사고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어린 생명과 다르다. 병으로 죽은 것과 사고로 죽은 것에서 무엇이 같을까? 만약 형님이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 과정과 원인, 상황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닌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위대하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위대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작품 그 자체를 비평한다. 

 

그러나 가장 착각하고 있는 것은 배우가 배우로서 셰익스피어를 말한다면,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헌법을 논해야 한다. 국가의 주인이 누군인가부터 시작하여 아무리 간접의회민주주의 정치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헌법정신을 두고 발언해야하는 점이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법은 법을 위해 존재하는가? 법을 만든 자를 위해 있는가? 법 그 자체를 초월해 있는 자를 위한 것인가? 노모스 법 위의 군림하는 자 즉 정치적으로 통치하려는 자인가? 대한민국은 절대왕정의 군주제가 아니다.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처럼 그 나라의 정치를 보면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희생자라는 약자를 궁지로 모는 현실에서 우리의 앞날은 어두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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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2014-08-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만애비 님, 이 회색톤다운 주황은 으아앗
부디 친절한 색으로 바꿔주시기를요!

만화애니비평 2014-08-28 15:44   좋아요 0 | URL
교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