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열차>

 

Lumière: L'Arrivée d'un train a la gare de ciota

 

1분짜리 필름인데, 시작은 10초가 되면 나온다. 잔잔한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저 멀리서 레일 위로 열차가 한 대가 다가온다. 그리고 열차는 멈추면서 승객이 내리고, 다른 승객이 올라탄다. 지금 보면 옛날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유럽의 풍경으로 보이겠으나, 당시 프랑스인을 비롯한 많은 관객들이 실제 열차가 자신에게 들이 닥치는 것으로 착각했다.

 

이른바 가상의 세계가 현실의 인간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이다. 화질도 흑백인 점에서 분명 당시 사람들은 이 필름에서 흑백이겠지만, 본래의 존재성에서 컬러를 인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화관은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950~60년대 흑백 TV가 보급될 쯤, 드라마에 나온 인물을 보고 많은 시청자들이 말을 걸었다고 한다.

 

실제하지 않은 존재, 혹은 파생실재라는 시뮬라크르의 세계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만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지금과 당시의 차이점은 당시로는 가상적 존재가 물리적인 영역까지 넘어온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물리적인 영역이 아니라 가상과 현실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어 극현실적인 Hyper-reality로 되어버렸다.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열차>에서 보듯이 1분이란 시간동안 우리가 볼 수 것에서 그 어떤 연출이나 편집은 없다. 시퀀스는 연속으로 이어지는 롱 테이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연기자들의 연기력과 카메라 감독의 촬영기술 그리고 녹음, 소품, 미술 담당 등의 호흡이 맞춰지지 않으면 롱 테이크이란 시퀀스를 소화해내기 어렵다.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열차>는 단지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찍었기 때문에 미쟝센적으로 그저 철로 역에 서서 고정된 기차역의 풍경만 찍은 것이기에 큰 구경거리는 없다.

 

그러나 지금과 달리 상황은 어떨까? 그때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아예 가상으로 이어진 존재에 대해 - 그것이 파생실재에 의한 연예인이든지 애니메이션으로 의한 캐릭터이든지 -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소중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가? 연예인이든 캐릭터이든 존재성에서 그 자체로서의 존재할 수 없다. 연예인들은 내가 영상으로 본 1초와 지금 상황의 1초가 다른 존재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시간적 초단위는 무의미하기에 다들 그 존재성으로 존재할 수도 혹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있는 영상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이미지라는 관념세계로 통한 자기 의식 합리화이지, 물리적 존재는 변화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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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6-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인문학'이란 책 어떻습니까. 읽은만합니까 ? 워낙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을 진중권이 많이 써서 겹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만화애니비평 2014-06-16 21:02   좋아요 0 | URL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으나, 이번에는 조금 어렵고 색다른 내용이 많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