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 - 나를 전공하고 있습니까?
이종은 지음 / 캘리포니아미디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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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터 알맞은 속도감으로 차곡 차곡 쌓아가는 관계가 가진 이야기들의 빌드업이 참 선명하고도 재밌었습니다. 책 속의 책으로 등장하는 < 니체가 말했다 여기가 거기니 >가 보물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도 재밌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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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사이를 산책하기 - 여성동아 문우회 앤솔러지 숨, 소리 2
여성동아 문우회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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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안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좀 특별한 타이밍인 것도 같네요. 여성의 글이 가진 위대한 힘을 알아채고 싶었던 지금 딱 만나야했던 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작은 책에서 만난 소설들이 가진 내면적인 고급진 글맛에 기분 좋은 쇼크를 느낍니다. 어디가 고급지냐고 물으신다면,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 하기 위해 천천히 고지로 이끄는 정성스러움과 섬세함에 있다고 해야할까요. 결정적으로 독자에게 좋은 여운을 남깁니다.



여성동아 문우회는

1968년 부터 시작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들의 모임입니다. 50여 년 간 박완서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이 참여해 꾸준히 활동을 해왔고, 1984년부터 꾸준히 1~3년에 한 번씩 회원들의 작품을 모은 작품집을 내고 있다고 하네요. 이번 기회로 알게된 이름들을 비롯해서 확장되는 독서를 경험합니다.


유덕희 - 별 사이를 산책하기

박재희 - 홀연

유춘강 - 레몬

한수경 - 나비머리핀

이남희 - 잠들지 못하는 행성에서

권혜수 - 그 여름 뙤약별

독자의 배경으로 좀 더 큰 여운이 남는 글이 분명 있겠지만 여섯 작가의 여섯 개의 소설은 각자 고유한 맛을 지닌 만큼 최상의 비빔밥을 완봉한 듯한 건강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홀연] 하나만 얘기해보려 합니다.

홀연

저자 박재희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어쩌다 가야금에 혼이팔려 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이수자가 되었고, 가야금 타는 스승님께 넋을 놓아 <춤추는 가얏고>를 썼다. 《양구》 《어쩌, 트로트》 《짐을 두드리는 동안》 《대나무와 오동나무》 등의 책을 냈다.

( 저자의 이력은 참으로 독특하고도 특별한 소설의 주제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


♡ 소설의 주인공 박동자는 가야금 학원 원장으로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먹고 살만은 했지만 막연히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떠나고자 하는지 끝없이 물어왔지만 답을 내기는 어려웠고 막연히 현실과 가족, 특히 엄마를 떠나고 싶어합니다. 원가족으로부터의 드러나지 않는 박동자의 내면적 상처와 회피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사랑에 서툰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더군요.

p 41

무엇으로부터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자기로부터의 혁명, 소유에서 무소유로, 어쩌고 저쩌고 고상하게 정의할 자신은 없더군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건 오직 하나, 당장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홀연 중에서

이것들이 박동자를 감싼 보자기의

씨줄과 날줄이긴 하지만

이것이 박동자일리는 없습니다.


박동자가 떠나고 싶어 하는 목록을 보자니 어쩐지 버릴만큼 끔찍해 보이지는 않는 것들인데 굳이 버리고자 하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궁금해집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 훌륭하고 멋져보이는데 본인 스스로는 본인의 삶이 갑자기 허탈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누구나, 어느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던지 우리가 자신을 의심해보는 순간은 이렇게 늘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글 속에는 박동자와 어머니의 미묘한 심리들이 숨어있어서 마음이 푹푹 빠지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모녀관계가 가진 미묘함과 박동자를 찿고 싶어하는 박동자의 마음에 많은 공감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떠난다는 것이 속세를 떠난 출가라면 좀 극단적인 선택이긴 합니다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내며 겪는 박동자의 심리변화가 참 공감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익히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알고, 잘 살아 왔다고 자부함에도 나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p 70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숲속은 크고 작은 나무들로 빽빽합니다. 출근길 1호선지하철 같습니다. 1호선 지하철이 끔찍해서 국악단을 떠났지요. 3호선 지하철이 징그러워서 엄마를 떠났지요. 다시 만원 지하철을 탄 듯한 이 느낌. 살아서는 못 벗어날 것만 같은 이 숨 막힘은 무엇일까요. 숨을 안 쉬어야 숨이 막히지 않는 것인가요.

홀연 중에서

아프고 말을 안듣는 몸을 이끌고 또 뻔한 반찬이나마 손수 밥을 해서 딸을 먹이려하는 엄마를 대하는 박동자의 마음이 어떤지 저는 너무 알겠더라구요. 엄마를 향해 감사하다고, 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박동자의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차라리 엄마를 외면하는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왼손에 힘이 없어서 오른손으로 돌솥을 옮기는 엄마를 나는 외면합니다... 엄마의 여생에서 돌솥을 옮길 사람은 내가 아닌 엄마니까요...

이 한 페이지 안에서만도 저는 얼마나 멈추어 있었는지요. 여러 절을 헤메고 스님들을 찾으며 답을 구해보는 사이에 외면해오던 엄마의 진밥과, 오이무침을 떠올리며 사뭇 그리움을 느끼는 박동자는 이제 더이상 엄마가 계시지 않는 속세로 내려 와야했습니다. 엄마가 계시지 않는 속세는 산을 오를때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곳이기에 가슴이 무거웠어요. 그리고 저도 엄마 생각에 한참을 산속을 헤메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자기로부터의 혁명, 소유에서 무소유로, 어쩌고 저쩌고 고상하게 정의할 자신은 없더군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건 오직 하나, 당장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 P41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숲속은 크고 작은 나무들로 빽빽합니다. 출근길 1호선지하철 같습니다. 1호선 지하철이 끔찍해서 국악단을 떠났지요. 3호선 지하철이 징그러워서 엄마를 떠났지요. 다시 만원 지하철을 탄 듯한 이 느낌. 살아서는 못 벗어날 것만 같은 이 숨 막힘은 무엇일까요. 숨을 안 쉬어야 숨이 막히지 않는 것인가요.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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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문우회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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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에서 만난 소설들이 가진 내면적인 고급진 글맛에 기분 좋은 쇼크를 느낍니다. 어디가 고급지냐고 물으신다면,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 하기 위해 천천히 고지로 이끄는 정성스러움과 섬세함에 있다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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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소크라테스의 말 -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깨닫는 지혜의 방법
이채윤 엮음 / 읽고싶은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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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소크라테스의 말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깨닫는

지혜의 방법

세계 4대 성인이지만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사약을 먹고 당당하게 죽었다.

소크라테스의 죄명은 도대체 뭐였을까?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현혹하여 전통을 해치며 타락시킨 죄였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나인들은 모든 것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는 그 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질문을 살아냈다.




말 시리즈라고 해야하나?

'○○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만나는 책들이 있다. 철학자의 모든 책을 다 읽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가 무슨 생각을 했고 또 무엇을 했기에 지금까지 회자되는지 알고 싶어질 때 아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책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철학자에 대해 진지한 경험을 해보려고 어느 정도의 시간과 공을 들여본 다음에 이런 책을 만나야 온전한 깊이감을 느낄 수 있는 책들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단편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말들이지만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긍상첨화인 것이다. 나도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이젠 '○○의 말' 같은 책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기회가 될때마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해야 이제 이름 정도는 가슴에 딱 새길 수 있는 것 같다.

[초역, 소크라테스의 말]로 소크라테스를 다시 꺼내들고 그와 이어지는 사람들도 함께 만나고 있다. 400여 페이지의 구성, 딱 좋은 책의 크기와 종이의 재질로 결코 지루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유일한 선은 지식이고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돌아보며 깨우치는 깨달음이다.


소크라테스,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가 정확히 무슨 말과 사유를 했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까지 술술 읊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그의 제자들은 누구이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한 번 진지하고 보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에 생겨난 견유학파,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유를 비롯해 라파엘로의 유명한 그림 <에테네 학당>을 통해 만난 디오게네스까지 내게는 아주 즐겁고 재밌는 시간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상을 남긴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질문하는 법을 깨우쳐준 사람이기에

왜? 왜? 왜? 하고 묻는 익살스러움과 괴짜스러움을 배우고자 한다.

너 자신을 알라.

너의 무지를 알라.

그 무엇보다 너 자신을 알려고 하라.

너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경험해라.

너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지 마라.

'너 자신을 알라'를 비틀고 짜낸 것들이 오늘날 우리를 만들었다고 할 만큼 소크라테스는 사유의 시작점인듯 하다.

적게는 한 문장으로 많아도 한 두페이지의 짧은 글들이지만, 그 말의 의미를 들추려면 자주 또 한 참 멈춰서야 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여백이 좋았고, 여백이 많을수록 뭔가를 채워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다. 독서는 재밌고 유쾌해야 하니까 평소의 습관대로 메모하고 붙이고 책을 씹어 먹는다. 나는 철학자는 아닌 관계로 다른 책에서 만난 소크라테스도 데려오고, 필사로 남겼던 밑줄들도 데려와 함께 만나보는 시간을 가지며 생각해보려 노력은 했다.





지혜의 시작은 용어의 정의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이 생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

♡ 교육이 이래야한다는 생각이 팍 ~ 드는 순간입니다. 자신의 것이 옳으니 그대로 베기고 믿고 전하라는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라는 말이잖아요. 동굴속에서 살던 인간이 스스로 불을 찾아내고,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성장했던 것은 인간이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기 때문일거에요.

그래서 또 이렇게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짧고 굵게 전합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이 역시 소크라테스의 말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글 한자 남기지 않았고, 책 한 권 내지 않은 거의 유일한 철학자이고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 플라톤이 남긴 고대의 흔적이니까요.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은 사람들의 집안으로 불러 들였다는 키케로의 말이 이해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발명하진 않았지만 질문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결과적으로 질문이 끌어내는 답도 바꾸었다.

​소크라테스에게 빚지지 않은 철학자가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공들여 읽고, 메모하고, 끄적이고 싶은 <초역, 소크라테스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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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지마다 붙여놓은 메모지가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읽고 자가 생각을 또 정리하는 독서 배워야할텐데 게으른 저는 항상 하다 말아서 문제인데 감탄하고 있습니다.

모든것이좋아 2022-08-12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또 감사합니다. 제게 일과 독서를 함께 할 수 있는 천복이 있더라구요. 온전한 시간이 있어서 몸이 자유로웠다면 못했을 것을 적당한 메임으로 책상앞에 있다보니 독서가 가능하네요.
 
초역 소크라테스의 말 -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깨닫는 지혜의 방법
이채윤 엮음 / 읽고싶은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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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관련 인물들의 말까지, 단편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말들이지만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더 좋다. 나도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이젠 ‘○○의 말‘ 같은 책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경로로 다시 만나기를 반복해야 가슴에 딱 새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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