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만의 철학 아카이브를 일주일 동안 만들어보면서 그동안의 독서가 리셋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뭘 깨달아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동안 독서 과정은 퍼즐 피스만 열심히 모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내가 가진 퍼즐 피스들을 하나씩 맞춰가면서 나의 철학도 맥락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인식에 대한 갈망에서 나아가 질문하는 독서로 향하고 싶어집니다.
마흔,
탁월한 인생을 위해 행동으로 실천할 때
" 소크라테스의 이름은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를 야스퍼스 <위대한 사상가들>
철학의 시작으로 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하는지 소경이 이제야 글을 깨친 심정으로 다시금 진지하게 만나보려 합니다. 그동안은 삶에 대한 베이스, 철학에 대한 나 자신의 경험의 재료가 부족해서 읽은 바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좀 달라졌음을 알겠습니다. 삶의 경험이 쌓은 시간. 서른 중반에 독서를 시작한 덕분에 마흔 넘어서야 나 자신에 대한 안정성,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덜 흔들리고 흔들리더라도 유연한 나를 이제 실천으로 이끌어줄 스승들을 다시 한 번 차례로 만날 생각에 기쁨을 느낍니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도 어느 시기에 다시 만난 소크라테스에게서 그냥 살지 말고 훌륭하게, 탁월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얻었다는 말이 저의 가슴도 열리게 만들었습니다. 남은 인생 절반은 두 번째 인생이자 첫 번째 삶이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만나가고 싶어집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속 소크라테스는 굳건하게 1만 년을 버티고 있는 거대한 바위 같았다. ( 저자에게 이런 은유가 생긴 것처럼 저도 이제 소크라테스를 이렇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들림이 없었다. 70살 노인은 재판장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들의 비방과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면서, 그들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했다.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 숙고하지 않는 무지의 대가로 아테네가 몰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흔, 각자의 아포리를 넘어서라
" 인생길 반 고비에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저도 신곡의 도입부 문장때문에 소름이 끼친 적이 있었기에 저자가 신곡을 말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겠더군요. 누군가에겐 마흔이라는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일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해 두고 싶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이거나 정체성을 잃은 힘듦이라면 그 고통도 이루말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함께 책 읽자고 말하고 싶네요. 그것이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니까요.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에서 시작하며 가장 순수한 나로 돌아가는 시작점 같았습니다. 육체의 성장이 끝나고 하루 하루 사그라져갈 때도 우리는 다시금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는 시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삶이 시작되듯이 아주 다른 질적 경험을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