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1>에서 아들러 사상에 감화된 청년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됩니다. 청년은
아들러를 알아야 할 사람은 때묻은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실천해 보려 하지만 현실에는 벽이 있음을 느꼈죠. '칭찬해서는 안 된다. 야단쳐서도 안된다' 이 같은 표면적인 아들러의 주장들이 자주성이라는 이름 아래에 아이들을 방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하며 분개합니다. 아들러 사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말하지요.
이에 철학자는 아들러의 사상만큼 오해하기 쉽고 이해하기 힘든 사상이 없다며 다시 아들러 사상을 숙고해 갑니다. 아들러 사상을 깊이 이해하려면 사랑을 알아야 한다고 해요. 그 사랑만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도 없고 말이죠.
아들러는 소크라테스에 비유됩니다. 청년들을 이상한 논리로 꼬드겨 타락하게 했다는 오해를 받고 사형에 처해졌으나 그보다 훌륭한 스승이 없었음을 후대에 깨달았죠. 소크라테스의 묻고 답하는 과정으로 세계는 성장했습니다.
특히 <미움받을 용기 2 >는 1의 대화 뒤로 3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다시 대화가 이어지죠.
청년이 다시 철학자를 찾아온 이유, 아들러 생활 양식에 공감하며 실천하려고 했던 청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적용하기 어려운 이상에 가깝고 엉터리라고 말하며 다시 토론은 시작됩니다. 행복해질 용기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독자들 역시 아들러 심리학의 실천과 적용에 대해 같은 어려움을 느꼈을 터라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