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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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가 좋아서 한참을 머물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랬다. 사랑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라 참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랑 앞에서 세상을 처음 배우게 된다는 것을 여기에 실린 시들로 느껴본다. 때로는 다 안다고 생각한 사랑도 최선을 다해 모르려는 힘으로, 때로는 최선을 다해 알려는 힘으로 이 시들을 만나보라는 기획의도는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아~ 이것도 시구나. 아~ 그랬던 내 마음도 시 같은 것이었구나. 사랑이 시가 되는구나 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사랑과 상대가 아는 사랑은 다르기 마련이고 사랑이 다른 이유는 받은 사랑의 양태와 표현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랑은 언어와 같은 것이다. 사랑을 같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그 사랑은 배우기도 수월하고 전하기도 수월하니까. 그러나 이것이 아주 당연하다거나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경험으로 알게 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처럼 각자의 언어로만 표현하는 사랑이 왜 힘든지, 오해를 만드는지, 결국 헤어지고도 상처를 안고 있는지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 만난 시집에는 많은 시인들의 시가 담겨 있다. 시를 읽다보면 다얀한 모습의 사랑을 만난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아직 뭐하지만 울가 정말 소중하고도 아련하게 기어가고 있는 것들. 나를 그 해로 데려가준 시집이다. 봄이라 마음이 일렁이는 요즘, 가방 안에 시집 한 권 넣어다니다가 아무데나 앉아 읽는다. 그렇게 펼쳐 읽은 시는 어떤 날을 내게 가져다주는 것 같다. 준비 되어야 할 것은 어던 시집이냐 보다는 어떤 설렘이 아닐까!





'나는 사랑이 뭔지 알아요'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묻는다. 사랑의 품은 얼마나 될까요? 하고 말이다.

내가 해온 사랑은 무엇이었던가? 거기에 대한 답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몰랐던 순간들에 대한 발견이 되었으면 하는 시집이었다. '아, 내 사랑은 이렇게 내게로 왔구나' 그런 시간이었다. 마냥 진지하지도 고민스럽지만도 않게 사랑은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다.

봄이고 사랑이 꽃피는 시기이다. 사랑이 깃든 만물을 보는 사람들은 시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이 잠시 멈추어 내 안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리워 좋고, 함께 있는 시간은 이야기 나누고 들어 줄 수 있어서 좋은 시간 그게 사랑이다.



얼굴 - 이영광

너는 내 표정을 읽고

나는 네 얼굴을 본다

너는 쾌활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그래서나도 쾌활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그러다 너는 취해 운다

그래서 나는 취하지 않고 운다

눈물을 닦으며 너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닦으며,나는 네 사랑을 사랑한다

너는 나를 두고 집으로 갈 것이다

나는 너를 두고, 오래 밤길을 잃을 것이다

네 얼굴엔 무수한 표정들이 돛처럼 피어나고

내 얼굴은 무수한 표정들에 닻처럼 잠겨 있다





환절기 - 박준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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