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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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창비의 테마 소설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되고 다시 만난 작가님과 글이 있었다. 생각이 날 때마다 펼쳐 읽은 하나의 글 속에는 중요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것들이 하나의 사진처럼 찍혀 있다.

공존하는 소설

각자 따로가 아닌 같이 함께를 바라는 이야기들


내가 다 끌어안기엔 버겁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 이해의 폭은 턱없이 좁기만한 세계에서 타인을 향한 공감을 넓히며 공존하길 바라는 소설들이다. 극혐이라고 외면하다가도 마음을 여는 순간 나의 일이 되는 이야기들을 만나며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뒤로 희망을 보아서 좋았다.​​



<밤은 내가 가질게> p 23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일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불행해지기 의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같았다. 기를 쓰고 히든 크레바스에 몸을 던진 사람 어떤 의지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냥 거기 구멍이 존재하니 빠져드는 것... 더욱 최악인 건 언네가 도무지 지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속았으며 무기력해질 법도 한데 언니는 끝도 없이 사랑을 믿었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어김없이 돈을 뜯기 고 가차 없이 버림받았다.


보잘것없는 불행부터 겉잡을 수 없는 불행까지 빠짐없이 지려 밟고 있는 언니는 이제 겨우 서른네 살이었다.

p 29

이 세상은 공평해. 내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말만 하고 집 살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

❤️ 어느 집에나 있을법한 사고 뭉치다.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이 드는 인물로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죽을 맛이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저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은 언니에게 닥치는 불행을 보며 감당하기 힘들다. 감정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동생은 언니에게 등신이라고 퍼부어보지만 정작 모르는 건 너라는 얘기가 돌아온다. 언니의 삶도 나의 삶도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서로가 모르는 것, 앞으로도 모를게 분명한 것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이상한 싸움이다. 내가 지닌 굴곡과 언니의 굴곡이 다르지만 어찌 잘 맞추면 평면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가족은 주는 상처와 위로를 만난다.

고백 p 113

셋이란 이런 거구나. 미주는 종종 자신이 주나와 진희의 특별한 관계에 딸린 부록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의 관계에는 미주가 개입할 수 없는 단단한 지점이 있었다. 그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진희는 자기야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렇잖아. 너희 둘은 허물이 없다고 해야 하나. 편해 보여. 내가 낄 수 없을 때가 있어."

진희의 커밍아웃

p 123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 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 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진희에 대해서, 진희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 미주는 대학에 와서야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었다. 겉으론 의연한 척하면서도 여렸던 그 애가 받았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미주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 애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했을지, 그때 자신과 나가했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였는지도, 미주는 그 사건으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다.

p 125

둘은 진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진희를 연상하게 하는 어떤 기억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이 둘만의 보이지 않는 계약이었다. 그 계약을 지킬 때에만 둘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희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은 없었다. '우리'라는 말에는 늘 진희가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결국 미주와 주나가 함께했던 시간은 없던 일이 됐다.

p 131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신에게 위로 받기보다 다만 한 사람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이 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만 같은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런 사람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을 느끼는 반면, 원래 없었던 것을 찾고 있었다는 깨달음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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