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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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인물들이 겪는 상황은 때로는 특수하다. 특수하지만 뉴스 같은 매체에서는 어쩌면 흔하기도 해서 이렇다 할 시선을 받지 못하며 구석자리에 놓여있다. 이 소설에서는 양육자가 없는 상태의 미성년자 아이들이 복지관의 도움으로 함께 생활하는 시설인 그룹홈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6살에 아버지와 건설 노동 현장의 컨테이너에서 기거하던 민서는 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술에 취한 아빠는 배우지 못하고 돈이 없으면,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살고 일해야 하고 더울 땐 가장 더운 곳에서 살고 일하게 된다는 것만 어린 딸에게 어렴풋이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부터는 아빠가 컨테이너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가 친권을 포기했다는 말과 함께 복지사의 손에 이끌려 그룸홈 생활을 시작하게 된 민서는 가족 아닌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지만 가족 같던 관계는 퇴소 후에 흩어진다. 흩어져 각자 자립해서 연락 없이 지내다가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가장 먼저이자 가장 마지막에 떠오르는 사람이 그룹홈 사람들이었다.

P 15

또래 알바들은 불편했다. 그들과 같이 웃어야 할 타이밍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다들 웃는데 나혼자 웃지 못하는 순간이 가장 난처했다. 생각하는 걸 다 말하는게 아니라고는 배웠지만 그다음은 익히지 못했다. 어른이 된다고 모르는 것들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룸홈은 1997년부터 서울시에서 도입한 복지제도이다. 보호가 필요한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가정보호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한 명의 관리인과 4~5명의 아이들이 가족처럼 살도록 한 제도인데 소설 속 인물 민서, 해서, 설이, 솔이는 그렇게 만났다. 넷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 6살에 보호소에 입소한 민서에겐 많은 경험들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휘력과 문해력이 떨어지는 학습경험 탓에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많은 것들과 달리 미술은 민서가 좋아할 수 있고 잘 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인 선택은 미술과 관련한 것들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소설의 저자는 1990년생으로 민서와 동일시되는 성장 시점을 가지고 있어서 이 소설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되어있을 민서를 생각해 보자면 딱 저자가 떠오르고 만다.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이 소설 [완벽이 온다]를 썼을 작가를 내 마음대로 민서와 동일시하며 상상하는 것이 큰 잘못은 아니기를 바라는 동시에 소설에 다 드러나지 않은 민서와 해서, 솔의 미래가 완벽이와 함께 밝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낯선 세상에 부딪혀 가며

자신만의 ‘완벽’을 찾아 분투하는

청춘의 이야기













사랑 받고 싶은 마음,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늘 남에게 내비치며 가족에 대한 결핍에서 벗어나고자 애쓴다.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은 채 홀로 버텨 보기도 하고, 완벽한 가족을 만들겠다며 끊임없이 연애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들의 결핍과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건 다름 아닌 이들 자신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솔에게 해서가 손을 내밀고, 여기에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힘겹게 이겨 낸 민서가 합류하면서 이들은 그룹홈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처럼, 아니 그보다 더 단단한 연대로 다시 뭉친다. 이들은 이제 곧 태어날 해서의 아이 '완벽이'를 다 함께 기다린다.

아빠, 엄마, 아이가 있는 완벽한 가족을 만들겠다며 해서가 지은 아이의 태명은 ‘완벽’이다. 결국 해서는 최초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어엿한 가족과 다름없다. 민서와 해서, 솔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되고, 새롭게 만들어진 대안 가족의 모습에 든든한 희망을 품게 된다.

18세가 되어 보호소에서 퇴소를 하고 나서 겪는 우여곡절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 매체에서 들어서 아는 정도다. (그들이라고 말하기가 부자연스럽지만 그들이라는 표현밖에 없었다. ) 그들이 사회에 나와 일자리를 구하고 월세든 전세든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과정에서 불안과 위험들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현실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거나 관심 밖이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알아챌 여지조차 없다. 그러한 사정을 알리고 알아가는 과정들에서 그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홀로서기는 낯선만큼 더 위함할 수 있기에 그룸홈에서든 밖에서든 멘티멘토 관계를 만들어 선배로서 조언해줄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대 관계가 마련되었다는 것도 들어서 아는 정도이며 실효성에 대해선 모른다.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여러 상황에 의한 청년 가장들은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어느 세대보다 독립이 힘들어진 청년 세대의 문제점들을 함께 보게 되는 소설이다.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이 겪은 불행을 끝내고 다시금 완벽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걸까? 무수히 깨지고 실수를 거듭하면서 알아가기엔 하나의 작은 사건이 미치는 영향만으로도 벅차다. 솔이가 그랬다.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바닥이 있더라... "라고.

P 198

그는 이미 낭떠러지에 서 있었고 그 일은 마지막 한 발을 떠민 것뿐이라고... 다 스러진 솔이 언니를 절벽 밑으로 떠민 건 무엇이었을까...


인물들이 서로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동정과 연민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우리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소설이다. 불안하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삶을 꾸려 가는 이 땅의 수많은 ‘민서’와 자립을 모색 중인 모든 이에게 이 작품은 찬란한 자기 성장기로 다가온다.

이 소설의 아이들에게서 버림받은 배신이라는 감정 뒤로 서서히 생겨난 연대에서 느끼는 책임감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연대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을 통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만나고 그 삶의 무게감을 함께 느껴본다. 나와는 전혀 개연성이 없이 시작한 이야기지만 중반이후 부터는 내 삶의 일부분이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하며 나역시 민서이고 해서이고 솔이였다. 살아가는 기술이 있다면 그 무엇보다 사랑을 주고 받는 방법에 서툰 그들과 나를 보게 된다.

출발 선상에서 이미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문서들이 당당한 홀로서기와 연대를 해가기를 바란다. 특수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긴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잘못은 될 수 없다. 또 누구든지 평범한 삶에서 회의를 느끼거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평범함인지를 더불어 알아야 하고 손잡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던 성장소설이었다.

그리고 완벽이 온다. 임신하고 미혼모가 된 해서의 뱃속 아이의 태명은 완벽한 가정을 주고 싶었던 해서의 마음을 담아 '완벽이'였다. 어려움을 통해 진짜 가족 이상이 되어버린 가족, 그들의 완벽을 희망으로 바라본다.





(창비 서포터즈로 도서만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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