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사회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관심은 많다. 이슈가 되는 사회현상을 발견하고 사회의 균형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빅데이터를 통해 더 다양하게 연구되는 분야가 아닐까? 사회학은 인간 진화의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을 마주하면서 비슷한 패턴의 행동을 하게 된다거나 혹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는 식으로 달라지는 현시대의 이야기다. 이 책 더티 워크는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그래서 조지 오웰과 미사 겔혼을 잇는 르포르타주 작가라는 수식어로 설명되고 리베카 솔닛, 마이클 샌델의 추천을 받았다. 작가의 이력이 책의 방향을 읽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회학이 품은 다양한 시선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사회학이라면 인간과 사회의 관련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적인 공동생활의 이법(理法)을 밝히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사회의 구조와 변동 및 그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한, 특수 사회과학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더티 워크, 제목이 강했다. 그 단어만으로도 시원스럽게 설명되는 것들이 분명 있었다. 혹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더티 워크일까? 그런 식의 질문도 처음 해보았다. '사회악' 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구린 일을 대신 처리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그 일을 해야만 가족의 생계가 유지된다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스스로 모른체하게 되지 않을까? 자본주의 아래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티 워크를 떠맡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더티 워크
수직적 복종 관계나 보통은 갑을 관계에서 힘없는 사람은 더러운 일을 직접 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시킨다. 어렵고 곤란한 일들, 인간적으로 회의가 느껴지는 일들, 부끄러운 일들, 때론 가족이나 공동체 국가를 배반하는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곤 한다. 힘 있는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비윤리적인 행위를 위임한 뒤 책임을 편리하게 회피한다. 더러운 일을 떠맡은 사람들은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이들이다.
더티 워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예는 바로 독일의 나치이다. 나치가 사회의 위임을 받았다는 추론은 근래 들어 점점 더 많은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유대인을 비롯해 사람들을 향한 나치의 폭력은 평범한 독일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그 일에 협조한 사람도 많았다.
이 점에서 휴스가 1962년 발표한 《선량한 사람들의 더러운 일》은 선면 지명으로 쓰인 글이었다. 우리 가운데 언제나 숨어 있는 위험들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조차 타인에게 더티 워크를 시키고 그에 대해 모른척하는가? 그런 일을 위임받을 때 모르는 척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라고 여겨지는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이 있다. 교도소의 잔혹행위, 대량 감금, 전쟁에서 드론 공습, '표적 살인'을 수행하는 일은 증가하는 반면 그에 대한 감시는 소홀하다. 드론 공습이 잘못된 일임을 알리려는 사람은 오히려 사회적 공격을 받았다.
덜 독재적인 나라에서 진행되는 덜 극단적인 종류의 더러운 사회 산업일지라도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 암묵적 동의는 나치 독일 같은 독재국가에서 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일이 행해지고, 그 일을 누가 하며 그 밖에 우리 모두는 어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 일을 위임하는가이다. 우리는 스스로 전혀 하고 싶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예 모르는 척하고 싶은 일을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위임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노동자들이 강제로 발이 묶이거나 격리되어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었고 자유와 윤리적 기준에 혼란을 느꼈고 의료계에서도 사회적인 딜레마를 겪어야 했다. 단편적으로 부족한 병상에서 하나 남은 산소 호흡기를 위급한 고 연령의 노인에게 줄 것인지, 아이 둘의 엄마에게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따랐으며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통해 우리는 사회의 정의를 다시 물어야 했다.
역시 코로나를 겪으며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 노동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씁쓸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안전을 보장 받는 방법은 다양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안에서 선량한 사람들이 더티 워크에 더 쉽게 노출되는 현실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말한 교도소나 드론 전투, 도축 노동자 등은 내가 알기는 어려운 특수한 경우에 가까웠다. 미국을 배경으로 쓴 책이지만 실상의 이면은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책임 의식이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고 전해본다. 적어도 몰라서 저지르는 악은 없었으면 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는 전쟁의 끝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한편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전쟁을 끝없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출판사를 통해 책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