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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는 경로는 많다. 소설, 에세이, 일기, 울프의 독서법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 이번 책은 울프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자연을 시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20세기의 영국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영국과 사람들의 모습은 한 번의 탈피를 거친 모습 같기도 했다. 울프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적 현실을 포착하려 했고 그것이야말로 울프가 보는 진짜 '현실'이었다.
여러 경로로 조금씩 울프를 만났고 여러 번의 리뷰도 했다. 이제는 버지니아 울프와의 만남이 조금 소풍 같아졌다. 웬만한 집중력이 아니고서는 울프가 그려놓은 장면들을 떠올려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난해하다는 말~ 이젠 그마저도 좋아서 버지니아 울프 관련 책은 모두 반갑다. 만나다 보면 난해함을 잊고 온전히 울프와 편안하게 대화하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밖에서 본 여자 대학, 과수원
안젤라는 생활고를 겪는 여대생이다. 대학에서 이 세상의 규율과 규칙 너머를 꿈꾸며 창가에서. 저 너머를 상상한다. 안젤라는 자기 안에 바다를 품은 듯이 상상 속의 거친 풍랑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를 어렴풋이 갈망한다. 그 모습은 21세기 청년들의 모습도 닮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는 소리는 과수원까지 퍼지기도 하는데 어린 나이부터 과수원의 노동자가 되어 학교 공부와 멀리 지낸 한 친구의 마음이 덕분에 심란해지기도 한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카드놀이로 여가시간을 즐기는 여대생 기숙사, 교회 예배에 참여하는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 과수원에서 상상을 펼치다가 잠이 든 19세 아가씨가 "차 마시는 시간에 늦겠어"라고 소리치며 현실로 복귀한다. 그렇게 경계를 즐기는 모습들이 어딘지 혼란스러우면서도 설렌다. 과수원의 나무들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자라듯이 이제 자신의 모습을 갖추려 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특히 여성들의 의식 변화를 담은 이야기들은 새로운 끌림이었다.
이 단편들을 읽으며 앤~~ 빨강 머리 앤의 고장 '에이번리'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버지니아 울프가 안내하는 아름다운 자연에 빠졌다가도 사람들의 변화가 가진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단편들이 완결 없이 끊어지는 느낌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의 초고나 글의 재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해설에서도 버지니아 울프를 '장면 만들기의 마술사'라고 칭하는 것을 보니 내가 받았던 느낌이 영 틀리진 않았나 보다.
울프의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울프의 창작 방식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자전적 에세이집 <기억의 소묘(A Sketch of the Past)》에서 울프는 자신을 작가로 만든 것은 “장면 만들기"라고 말한다. 기승전결의 플롯이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대신 인상적인 장면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서술 기법보다 회화나 영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과 닮아 있다. 울프의 작품이 어려운 이유는 매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울프는 "1910년을 기점으로 인간의 본성이 변했다"라고 주장하며 전통적 글쓰기를 거부하고 다양한 서술 방식을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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