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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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는 경로는 많다. 소설, 에세이, 일기, 울프의 독서법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 이번 책은 울프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자연을 시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20세기의 영국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영국과 사람들의 모습은 한 번의 탈피를 거친 모습 같기도 했다. 울프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적 현실을 포착하려 했고 그것이야말로 울프가 보는 진짜 '현실'이었다.

여러 경로로 조금씩 울프를 만났고 여러 번의 리뷰도 했다. 이제는 버지니아 울프와의 만남이 조금 소풍 같아졌다. 웬만한 집중력이 아니고서는 울프가 그려놓은 장면들을 떠올려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난해하다는 말~ 이젠 그마저도 좋아서 버지니아 울프 관련 책은 모두 반갑다. 만나다 보면 난해함을 잊고 온전히 울프와 편안하게 대화하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밖에서 본 여자 대학, 과수원

안젤라는 생활고를 겪는 여대생이다. 대학에서 이 세상의 규율과 규칙 너머를 꿈꾸며 창가에서. 저 너머를 상상한다. 안젤라는 자기 안에 바다를 품은 듯이 상상 속의 거친 풍랑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를 어렴풋이 갈망한다. 그 모습은 21세기 청년들의 모습도 닮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는 소리는 과수원까지 퍼지기도 하는데 어린 나이부터 과수원의 노동자가 되어 학교 공부와 멀리 지낸 한 친구의 마음이 덕분에 심란해지기도 한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카드놀이로 여가시간을 즐기는 여대생 기숙사, 교회 예배에 참여하는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 과수원에서 상상을 펼치다가 잠이 든 19세 아가씨가 "차 마시는 시간에 늦겠어"라고 소리치며 현실로 복귀한다. 그렇게 경계를 즐기는 모습들이 어딘지 혼란스러우면서도 설렌다. 과수원의 나무들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자라듯이 이제 자신의 모습을 갖추려 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특히 여성들의 의식 변화를 담은 이야기들은 새로운 끌림이었다.

이 단편들을 읽으며 ~~ 빨강 머리 앤의 고장 '에이번리'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버지니아 울프가 안내하는 아름다운 자연에 빠졌다가도 사람들의 변화가 가진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단편들이 완결 없이 끊어지는 느낌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의 초고나 글의 재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해설에서도 버지니아 울프를 '장면 만들기의 마술사'라고 칭하는 것을 보니 내가 받았던 느낌이 영 틀리진 않았나 보다.

  • 울프의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울프의 창작 방식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자전적 에세이집 <기억의 소묘(A Sketch of the Past)》에서 울프는 자신을 작가로 만든 것은 “장면 만들기"라고 말한다. 기승전결의 플롯이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대신 인상적인 장면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 이는 전통적인 서술 기법보다 회화나 영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과 닮아 있다. 울프의 작품이 어려운 이유는 매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울프는 "1910년을 기점으로 인간의 본성이 변했다"라고 주장하며 전통적 글쓰기를 거부하고 다양한 서술 방식을 실험했다.


( 쓰다만 글 조각, 글속의 시대 )

전화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다. 진짜 쓰다 만 듯한 10줄이 안되는 글이지만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 실타래가 엄청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지나랄 우리의 통신 수단이었던 삐삐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있듯이 그 이전에는 전화의 등장으로 달라진 삶이 상상된다. 문명의 대전환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변화와 굴곡이 있었을까? 지금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보다 사실은 더 큰 이질감과 충격이었을 것 같다. 산업혁명을 지나며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동시에 행복했던 낙원을 잃어버린 것을 회상하는 듯 묘하게 아련한 단편들이기도 하다.

  • 이 나라는 자기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겁니다.

  • 전쟁 후에는 장갑 공급이 안정되지 않아서요

  •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쓰러져 죽었고, 세계는 계속되리라.

빅토리아조(1837~1901년)에 태어나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울프와 우리 사이에 놓인 100년이란 시간의 간극이 느껴진다. 19세기 말 20세기를 품은 키워드들과 의식의 변화를 읽어가는 시간이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전쟁 후의 물가 변동과 생각의 차이도 느껴본다. 실크 스타킹, 장갑, 신발, 드레스, 설탕 등의 이야기를 통한 시대 읽기는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글에서도 많이 만나게 되기에 이젠 울프에게 닿는 '표지' 같다.

프라임 양, 불가시이한 V 양 사건

울프는 특히 프라임 양처럼 “이름 없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전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프라임 양>이라는 이 작품은 이름 없는 한 독신 여성의 삶에 관한 스케치로 이해할 수 있다. 불가사의한 V 양 사건 역시 이름 없는 개인의 삶을 다룬다.

하지만 뛰어난 인물이 아닌 사람의 삶은

기록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런 식의 의문과 의식이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켜 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습작 하나일지라도 놓치기 싫어진다. 동시에 하루를 끄적이는 수준의 우리의 일기도 소중해진다.


울프는 20세 무렵부터 <타임스> 문예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이 작업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어 600여 편이 넘는 에세이를 남겼다.




이 책에 실린 것은 단편이라서인지 에세이와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완성되지 않은 실험적 습작, 장면 만들기 연습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축약 같기도 하고 사뭇 다르기도 한 본드가의 댈러웨이 부인 편을 읽으며 뭔가 달라서 갸우뚱거렸던 의문을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통해 만나게 되어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이렇게 만나는 것도 반가웠다. 늘 버겁지만 한 발씩 나아가는 재미가 있는 버지니아 울프와의 만남은 내게도 길고 행복한 여행이다.


  • 댈러웨이 부인은 꼿꼿이 서서 화물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빅 벤이 열 번째 종을 치고, 열한 번째 종을 쳤다. 묵직하고 둥근 파장이 공중에 퍼졌다. 그녀를 곧추세우는 것은 자긍심, 대대로 내려오는, 그녀가 물려받고 물려주게 될, 훈육과 고통을 통해 몸에 밴 바로 그것. 사람들은 어떻게 고통을 감당했을까, 그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기차, 자동차 크고 묵직한 쇳덩이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노동자들의 비명이 있었음을 꼬집는 걸까? 일자리를 찾아 도시의 불빛에 밀려 든 많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또다시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다는 걸 버지니아 울프가 알게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글을 썼을까 싶다. 개인의 시선과 이야기가 시대에 얽히는 글들을 재밌게 읽는다. 코로나 수기가 이런 느낌이려나? 큰 일을 다같이 겪으면서 일상이 소중했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고귀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여운을 뒤적거려 본다.




울프는 20세 무렵부터 <타임스> 문예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이 작업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어 600여 편이 넘는 에세이를 남겼다.

이 책에 실린 것은 단편이라서인지 에세이와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완성되지 않은 실험적 습작, 장면 만들기 연습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축약 같기도 하고 사뭇 다르기도 한 본드가의 댈러웨이 부인 편을 읽으며 뭔가 달라서 갸우뚱거렸던 의문을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통해 만나게 되어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이렇게 만나는 것도 반가웠다. 늘 버겁지만 한 발씩 나아가는 재미가 있는 버지니아 울프와의 만남은 내게도 길고 행복한 여행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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