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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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르네상스 시기와 비슷했던 시기가 

조선의 17세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에 꽃 핀 예술만 눈여겨보았다면 다음으로 우리나라 17세기의 예술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그래도 어디서 무얼 보면 좋을지 모르겠던 마음이었죠. 때마침 조선의 미술관으로 초대를 받게 되어서 이거다~ 싶었습니다.

❤️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신분과 기분, 생각까지 알 수 있고 놀이판에서는 누가 속임수를 쓰고 있고 누가 이기고 있는지, 혹은 출생의 비밀도 알 수 있네요. 그것만으로도 참 재밌었어요. 조선 시대의 '6시 내고향', '그것이 알고 싶다' 를 만납니다. 저자 탁현규님의 탁월함이신 것 같아요.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아는 방법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알아보면 된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조선의 오백 년 가운데 후반부인 17세기 이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 고유색을 문화 전반에서 갖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방구석 미술관 1,2 출간했던

블랙피쉬 출판사에서 만나는 조선 미술관



17세기는 우리나라 그림에서 사람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여가생활과 취미가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어요. 조선의 르네상스, 창의력이 꽃 피는 시기라는 말이 이해되네요. 물론 여유 있는 조선 양반들 이야기였지만요. 그래도 그림으로 남아있는 다양한 계층과 평민들의 모습 덕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 고유색의 핵심은 사실 정신이다. 

조선의 산천과 의식주를 사실대로 담았던 17-18세기 그림을 통해 한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얻을 스 있는데요. 이 시절 조선 그림들 속 사람들은 모두 기운이 맑아요. 실제로도 그러했을 것이라는군요. 주변 생활 환경도 깔끔하게 잘 정돈 되어 있습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9세기 이후로 노쇠해진 조선 문화는 조선 말과 일제 때 사진 속 모습처럼 그렇게 기운을 잃어갔다. 사진 속 모습이 문화 말기 현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17-18세기 문화 절정기에 그려진 풍속화와 기록화 덕분이다. 

풍속화사생활이라면 기록화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다.

오늘의 다양한 기록장치와 미디어 매체들이 생겨난건 사실 지금으로부터 얼마되지 않은 때부터고 그 이전엔 그림과 글이 전부였던 시대가 길게 있었죠. 오늘의 사소한 기록이 중요해지는 순간, 여러분의 일기가 고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 재밌는 조선탐방입니다.



p 28

그렇다면 김홍도는 '선비'였을까? 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에 위치한 전문 직업 계층을 부르는 말이고 선비는 양반 계급을 넓게 부르는 말이다. 즉 중인은 선비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김홍도 시절 중인들의 신분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이에 김홍도처럼 지방관까지 오르는 경우도 생겼다. 그리하여 중인들도 양반들과 같은 선비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 대표 인물이 김홍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비들의 놀이인 시서화를 즐길 줄 아는 중인들이 조선 말기에 양반들을 대신해서 예술 수요층으로 떠오른 걸 생각한다면 그 첫 번째 중인 김홍도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김홍도의 자화상이자 당시 선비 의식을 갖춘 중인들을 상징하는 초상화라고 해도 되겠다.

❤️ 선비가 되고 싶었던 중인들이 선비 방 안에서 쓰던 물건을 벌여놓은 것은 선비의 욕망을 욕망했기 때문이다. 여러 욕망을 나타내는 물건 가운데 단연코 으뜸은 4갑으로 쌓여 있는 책이다. 선비를 다른 말로 유자라고 하는데 유자란 책 읽는 사람이자 책 쓰는 사람이다.

❤️ ❤️ 조선의 책 읽는 사람이자 책 쓰고 싶었던 사람이었던 중인의 신분, 지금의 내 욕망과 다르지 않아서 무척 재밌게 보았네요. 어느 시대에나 인간의 이야기에는 결국 결핍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구나~ 그 기록들이 신기합니다.

❤️ 그림 속에 담긴 설명들을 보는 것이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니네요. 그림속에서 나이들어가는 율곡과 봉은사 이야기를 만납니다.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


풍류로 통하던 조선 양반들

궁궐 밖에 있는 놀이에 빠진 선비들, 양반들의 놀비판 풍경, 매사냥, 벼슬 없는 선비의 풍류, 투전판, 투호놀이, 기방과 기생집을 비롯한 그림들을 만나게 됩니다.

p 19

이렇게 놀이하는 선비들을 그린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다.『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배불리 먹기만 하고 종일토록 마음 쓰는 바 없으면 곤란하다. 장기 바둑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조영석, 김홍도, 정선, 김득신, 신윤복




가부장제 아래의 조선 여인들

자애로운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 빨래하던 여인을 욕보이는 모습, 과부가 봄빛을 즐기는 모습, 종소리 들으며 절을 찾아가는 모습

신윤복, 신한평

하루하루에 충실한 서민들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는 모습,

방배에서 달빛에 취한 모습,

소 타고 나뭇짐 진 모습,

길 가운데서 서로 만난 모습,

비구니가 기생을 맞이하는 모습,

길거리 탁발하는 스님과 지나가는 기생들

정선, 김희겸, 김홍도, 신윤복




❤️ 교과서에서 만났던 익숙한 그림들이기도 한데요. 교과서 너머에서 이렇게 만나보는

조선의 화가와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네요.


궁궐에서 만나는 성대한 잔치

❤️ 숙종과 영조 임금의 시대. 궁궐 안팎의 잔치와 연회 모습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옛 그림의 사사롭고 성대한 매력을 담아 누구나 가볍게 방문해서 즐기는 미술관입니다.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 17세기 이전까진 조선 그림의 주인공이

 조선 사람이 아니었다고?

중국 생각으로 살던 시절에 그린 풍속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생각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풍속화 속 주인공들이 모두 조선인으로 바뀌었다. 남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보다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이를 진경풍속이라 부른다.

진경풍속의 주인공은 양반 혹은 평민이다. 

진경풍속은 선비 화가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처음 담으면서 시작되었고 소재를 평민들의 삶까지 넓히면서 완성되었다. 즉 양반 풍속으로 시작해 평민 풍속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진경풍속의 원조는 

진경산수의 창시자인 겸재 정선이다.

❤️ 조선시대 풍속화가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에게 정치의 방향을 알렸다고?

조선 그림의 양대 산맥인 산수화와 풍속화를 모두 조선화시킨 화가가 겸재 정선이다. 정선의 진경풍속은 십 년 후배인 관아재 조영석에게로 이어진다. 조영석은 정선에게서 양반 풍속을 이어받아 이를 평민 풍속으로까지 넓히며 진경풍속을 완성했다. 정선과 조영석은 모두 성리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었다. 새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만이 새것을 만든다.

조영석이 완성한 진경풍속은 다음 세대 화원화가 손끝에서 대미를 맞이하였다. 이를 대표하는 화가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다. 김홍도는 평민 풍속의 종결자이고 신윤복은 양반 풍속의 끝판왕이다. 김홍도 풍속화는 성리학 사회가 궁극으로 도달하려는 이상 사회가 그림으로 표현된 것으로 태평성대를 이룬 조선 군주에게 백성들의 평안한 삶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자료였다. 반면 신윤복 풍속화는 양반들의 놀이 문화를 통해 문화 절정기의 호사스러움을 드러내었다. 김홍도 풍속화는 노동의 보람으로 넘치고 신윤복 풍속화는 놀이의 흥겨움으로 가득하다.

어느 시대건 문화 자부심은 사람들 얼굴에 드러난다. 조선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문화 자부심이 가득했던 시절을 일곱 명의 화가가 남긴 풍속화로 만나보자.

 


​(출판사를 통해 책을 무상으로 지원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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