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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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에 대한 무경험의 거리감을 단박에 깨준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였고, 그게 처음이라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다. 교보문고의 디 에디션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때 처음 이 사람은 누군데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김수영, 최근에 추가된 알베르 카뮈와 함께 있나 하면서도 쏙 걸러내고 빼버렸던 기억으로 여전히 빈번호의 책이 되어 있다. 아마도 나처럼 다자이 오사무를 이유 없이 건너뛴 사람들이 계신다면 어떤 경로로든지 꼭 챙기시길 당부드려야겠다.


다자이 오사무는 내게 '솔직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동경을 주었다. 가족에게 얽히고 나 자신에 얽힌 이야기들을 많이도 건드려 주었는데, 상처를 건드리는 바람에 쓰라린 만큼 또 새살이 차오르는 것도 확인했다. 사실 우리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야말로 소설로 써야 하는 이야기들인데, 그것에 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 재차 묻고 다시 들어둬야겠다.

<사양>에서 머릿속을 맴도는 짧은 몇 마디의 말이 있다.

1. 아~

2. 뱀

3. 나쁜 사람

4. 비밀

5. 자살

6. 혁명

<사양>을 말하기 위해 <인간실격>을 말하고 싶고, <인간 실격>을 말하다 보면 <사양>을 말하고 싶어진다. 하나씩 읽었

어도 거대하고 위대했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두 권째 읽고 보니 이제 10권이 읽고 싶어진다. 책장에 다자이 오사무 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싶다. 그 와중에 문예출판사 책이 표지도 예쁘고 사이즈도 좋아서 더욱 가슴 뿌듯하기까지 했다는 것까지 남겨 놓는다.

함께 <인간실격>을 읽고 그 후폭풍을 호되게 앓았던 독서 지기에게 이 책 <사양>도 전해야 하는데, 그 무거움과 후폭풍을 이제는 알기에 건네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날 반갑게 들려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줄거리 내용이 없는 리뷰를 써본다.

<사양>을 읽기 전엔 다자이 오사무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매우 공감한다.


아침 식탁에서 수프를 한 숟가락 뜨신 어머니가 "아" 하고 가는 신음 소리를 내셨다.

이 소설의 첫 문장 - 사양 / 다자이 오사무

뭔가 참을 수 없는 수치심에 사로잡힐 때 자기도 몰래 '아' 하는 가녀린 비명이 새어 나오는 법이다.

p 13



내게도 이런 순간이 있다. 남편에게서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가끔 '아' 했다가 "왜?" 하고 물으면 '아니야'로 덮어두는 수치심의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쉬이 말하기도 싫은 비밀이다.

'아'라는 말이 자자이 오사무의 모든 책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 짧은 낱글자 하나가 가장 순수하고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 이후에 또 내 마음속에 단단히 걸어둔 빗장을 열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를 만날 때마다 솔직해지고 싶고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에서 멀어진 자유를 누리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다자이 오사무의 책 속에 '나쁜 사람'이라고 꼬리표 붙은 사람들을 주인공 가즈코와 같은 이유로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에 나 역시 반기를 들 수가 없다. 그것이 혁명이라는 말에 동의했다.

휙 지나가며 읽어버린 <인간실격>의 한 문장을 가져와 본다. 왜냐하면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사양>의 주인공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이자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기 때문이고, 사양의 내용을 관통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여자들의 사랑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남자였다는 말입니다."

인간실격 p. 27

또 하나의 기쁨이랄까?

아니면 처리되지 않은 슬픔의 확인이랄까?

나는 <인가 실격>에서 결국 자살을 하는 그의 유서를 <사양>을 통해 보는 셈이 되었다.


<사양>에 대한 저의 감상은 만날 필요도 없이 그냥 만나시면 좋겠어요~~ <사양>을 먼저 읽고 인간실격 읽어도 좋습니다.

암튼 꼭 읽어야할 책같아서요

그래서요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by 모든 것이 좋아



아침 식탁에서 수프를 한 숟가락 뜨신 어머니가 "아" 하고 가는 신음 소리를 내셨다. - P7

뭔가 참을 수 없는 수치심에 사로잡힐 때 자기도 몰래 ‘아‘ 하는 가녀린 비명이 새어 나오는 법이다. - P13

아아, 돈이 없다는 것은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두려운, 비참한, 살아날 구멍 없는 지옥 같다는 걸 태어나 처음으로 깨닫고는 가슴속에서 뜨거움이 복받친다. 속이 꽉 메어와 울고 싶어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인생의 쓴맛이란 이런 느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나는 빳빳이 굳어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

- P26

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재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전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재밌는 시가 종전 직후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에 공감하게도 된다. 전쟁의 추억이란 건 말하기도, 듣기도 싫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주었는데도 진부하고 지루하다. - P44

그저 그렇게 허무하게 내 몸에 남은 건 이 지카타비 한 켤레뿐인 무상함이다.

- P50

"나 같은 것 없어지면 좋겠죠? 그래요. 나가지요. 저한테도 갈 데가 있다고요."

- P59

"아아, 가즈코의 그 비밀이 잘 여물어서 좋은 열매를 맺으면 좋겠구나. 난 매일 아침, 너희 아버지에게 가즈코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단다."

- P61

나는 이 털실 색깔 덕분에 비로소 ‘좋은 취향‘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된 것 같다. 좋은 취향. 어머니는 한겨울 눈을 머금은 하늘에 이 옅은 자주색이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될지 이미 아시고 일부러 손수 골라주셨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그걸 싫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였던 내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도록 맡겨주셨던 내어머니. 내가 이 색의 아름다움을 진정 깨닫게 되기까지, 무려 20년 동안이나 이 색에 대해 한마디도 더 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모르는 척 기다려주신 어머니. 정말이지 너무나 좋은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좋은 어머니를 나와 나오지 둘이서 속 썩이고 곤경에 빠뜨려 사그라들게 만들고, 급기야 이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말려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65

문장에 이르지 못하고 인간에 미치지 못하는 꼬락서니. 장난감 나팔 소리 높여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일본 제일의 바보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아직 양반이오. 부디 건재하시길! 잔을 들며 기원하는 애정은,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 P75

논리는 전적으로 논리에 대한 애정이다.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한 애정이 아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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