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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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함께 읽은 <돌봄이 돌보는 세계>처럼 '돌봄사회'에 대한 필요성을 영국 작가를 통해 세계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책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돌봄의 오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미래 주력 산업이 우주 산업이라고 말들 하지만 국가를 건강하고 건실하게 견양함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돌봄'이라는 주제가 더 큰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해도 내일의 내 딸과 아들을 생각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베스트~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돌봄이 필수적인 것임을 깨달았고 돌봄에 접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악몽이 되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있을까? 

병상과 의료 장비가 있을까?

무서울 때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을까?

집에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게 절박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 

먹을 것을 가져다줄 사람이 있을까? 

누구한테 약을 가져다 달라고 하지? 

한편 코로나19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진실도 명백히 드러냈다. 청소 노동자, 슈퍼마켓 점원, 간병인 등 저임금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얼마나 필수적인지 말이다. 우리가 어찌어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고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면, 즉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들 덕분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돌봄에 의해 헝성된 존재다.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돌봄을 받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편안함, 식사, 청결 등과 관련된 기본적인 필요를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보살핌도 받겠지만 분명히 상당 부분은 모르는 사람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돌봄 이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의 노동 - 서문 중에서

❤️ 페스트라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조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맡은 일을 말없이 해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무난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본다. 내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하고 일상이 멈춘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일까? 

❤️ '돌봄사회'의 도래에 페미니즘 운동이 가져온 영향이 지대했음을 재차 느낀다. 여성이 보수가 있는 일을 선택하며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오롯이 여성의 몫이었다. 일과 육아, 가사를 모두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여야 했던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나보다는 어머니들의 삶이었고, 그 어머니 덕분에 내가 지금 이만큼 산다.

❤️ 남성의 노동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따른다고 여겨졌다면

여성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 심장이다.'

p 52

여성은 먼저 노동자였고 그다음에야 엄마였다. 아니면 엄마가 아니고 노동자이기만 했다. 모성은 부차적인 일이 되었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일이지만 마치 여가활동처럼 여유시간에 하는 일로 밀려난 것이다. 

1980년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을지 모르지만 무보수 돌봄 경제를 앙상하게 만들었고, 여기에서 중대한 간극이 생겼다. 여성들은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을 각자 알아서 찾아야 했고 그러지 못하면 비난을 받았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이 딜레마의 유일한 해법으로 여성이 수행하는 무보수 돌봄 노동의 가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여성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종합적인 공공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 책 속에 인용된 책들과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접하는 동안 역사를 함께 보는 경험 또한 특별했다. 언제고 이 책들을 읽게 된다면 분명 돌봄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 분명했다. 




서문

대부분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고, 특히 여성이라면 수개월 혹은 수년간 지난하고 지치는 돌봄 노동에 관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돌봄 관계에는 의존성, 취약성, 친밀성, 위험, 분노, 충족감 등 쉽지 않은 이슈가 얽히고설킨다.

영국에서 18세 미만 아동 중약 18만 명이 돌봄 제공자다. 더 일반적으로는 육아를 통해 돌봄 노동을 본격적으로 경험하며, 배우자나 친구의 질병, 부모의 노환 등을 통해 돌봄 제공자 역할을 처음 경험하기도 한다.

"보수가 있는 경우와 무보수인 경우 모두에서 돌봄 노동의 방대한 부분이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내가 살아온 기간 내내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면서 가정 밖에서 일할 권리, 커리어를 추구할 권리, 재정적 독립성을 가질 권리를 주장해왔다.

그렇지만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여겨진다. 육아와 가사노동 부담도 여성이 더 많이 지고 있고 부모와 배우자를 돌보는 사람도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그와 동시에 상당수는 아직 10대인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55세 이상인 여성 절반 가까이가 손주를 정기적으로 돌보고 있다.

삶의 중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노년에 접어든 부모의 취약성이 커져가는 것을 절감하는 시기인 동시에 아직 어리거나 갓성인이 된 자녀의 필요도 여전히 챙겨야 하는 시기다.

샌드위치 케어러

여성에게 중년은 생애 중

가장 강도 높은

돌봄 노동의 시기가 될 수도 있다.


돌봄 노동의 성별화된 패턴은 가정뿐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도 명확하다.

돌봄 노동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문화적 가림막이 존재한다. 인간의 후생을 지탱해 주는 노동의 가치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뿌리 깊은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돌봄은 여전히 오프라인 활동이다.

목욕시키기, 식사시키기, 청소하기, 정리 정돈하기, 손잡아 주기, 지켜보기 등 너무나 많은 면에서 물리적으로 대상자의 곁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근접성이 돌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들러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누가 사는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말벗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가와 같은 점이 결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돌봄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맡겨지는 일일 수 없다.

(저자 매들린 번티의 말)

앞으로를 내다보면서 나는 내 딸과 아들이 무엇을 알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을 고통스럽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어떻게 미리 경고해 줄 수 있을지, 그리고 바라건대 어떻게 아이들이 그에 대비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또 돌봄이 가져다줄 어떤 풍성한 보상이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줄지도 생각해 본다. 돌봄에 대해 내 나름으로 내려본 다음과 같은 정의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돌봄이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루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유통되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모든 돌봄은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룬다. 얼마나 직면하기 싫든지 간에,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경험을 구성한다. 누구나 자신의 문화에 돌봄의 전통을 육성해야 할 이유가 있다. 모두의 삶이 그것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아주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은 이미 돌봄의 문화에 의존하고 있다.

서로에게 삶을 조금이나마

덜 고단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면

우리 삶이 무슨 의미겠어요?

조지 엘리엇 , 미들마치 중에서



(책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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