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입니다
원장경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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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각 장의 도입부는 익숙하게 만날 수 있고 나를 닮아있는 보통 사람을 말하고 있는데 이 도입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장

나는 가장이다. 한 가장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한 회사의 직원이고, 한 나라의 국민이자, 한 노부부의 유일한 자식이며, 두 아이의 유일한 아빠이다.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다.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발버둥 치는, 그런 뻔한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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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가장을 좋아했다. 월급이 필요한 사람이고, 더 부려 먹어도 되니까. 내 값싼 비굴함은 상습적 야근만큼이나 당연했다. 연봉 계약서는 21세기 노비 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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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파서도, 앓아누워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 회사 다녀야 하고 월급 받아야 한다.

예기치 못한 차 사고를 당했고 분명 죽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살아 있다. 동시에 어떤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으로 감염자들도 생겼다. 피부색이 변하고 힘이 비정상적으로 세져서 극도로 위험하고 이성을 잃은 채 사람을 공격하고 깨물어 전염시킨다. 이상한 건 '나'도 그들과 외형적으로 마찬가지지만 '나'는 분명 그들과 다르다.

'나'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의지대로 행동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괴물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며 '인간'이고자 사투를 벌인다.

나는... 이 좀비들과 달리 인간입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인간입니다.

그러면서 독자도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나는 이 괴물과 다른 진짜 인간이 맞는가?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하고 묻게 된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이 주고받았다.

내가 '살아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물음이 내면에 일었다. 오늘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돌아와 비굴한 나를 마주하고 있다면 강하게 공감하게 될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 소설을 통해 마주하면 좋겠다.

이 소설은 좀비 같은 괴물이 나온다는 이유로 SF 호러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가족을 그린 생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눈뜨면 또 똑같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해를 구하며 아무리 말을 던져도 내 안에서만 울릴 뿐 내 말을 들어주거나, 알아듣거나 이해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주인공이 마주한 감염자들과 같다. 회사 상사가 아니라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을 오이사에게 쥐 죽은 듯 복종해야 하는 '나'는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반갑지 않은 동료라서 은근히 따돌림받았다.

주변에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죽고 싶어질까? 내일도 지옥 같던 오늘과 같다면 죽고 싶을까? 먹고살기 위해 본능만을 채우고 산다면 죽은 것처럼 느껴질까?

그런 마음을 대변하기 위한 소설이라면 더욱 눈여겨보고 싶다.



소설이기에 모든 스토리를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조금만 더 얘기하자면 화자인 나에겐 어쩔 수 없는 두 개의 선택지만이 있어 보인다. 인간성을 누르고 동물적인 본능을 강하게 만들어서 어쨌거나 살아남거나, 아니면 인간성을 키워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고 내 목숨을 거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 둘 다 쉽지 않다. 우리의 인간생활은 그 사이 어느 지점을 개척해 내는 것이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으며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생각난다. 또 영화 <나는 살아있다>가 생각난다.

영화가 떠오르는 걸 보면 영상 시나리오 작가라는 이력이 보이는 것도 같다




오디션 프로를 볼 때 노래를 잘하는 건 알겠는데 매력이 부족해. 조금 더, 조금만 더 하고 뭔가가 나오기를 기대하게 될 때가 있는데 조금 아쉽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번 소설 [나는 인간입니다]가 그랬다. 조금 아쉽다. 주인공의 독백이 차지하는 자리가 커서 주변 인물 캐릭터를 만나가는 재미가 조금 빠져있지 않았나~ 그래서 풍성하게 마무리 짓지는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애정 어린 아쉬움이 든다. 시나리오는 좋은데 살짝 디테일한 연출이 아쉽다.





그래비티 북스의 SF 시리즈를 이어가보려 나름 애쓰고 있다. SF 장르소설을 만나다 보면 인간이 비틀어 놓은 이 세상이 더 잘 보이곤 한다. 인간성을 잃은 지금의 오류는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 미래가 되어도 오류로 남는 것 같다. 인류가 존재하고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고자 애쓰기 때문인듯하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인간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어느새 읽어보지 못한 그래비티의 소설들이 꽤 된다. SF 소설의 알려준 그래비티 북스 애정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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