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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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에 앞서 뇌과학을 담은 책을 만났었다. 특히나 우리의 의식을 통한 경험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 책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의식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의사를 찾는다.

그렇게 뇌신경 전문의가 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의사이자 저자 헨리 마시는 수많은 케이스의 뇌 수술을 하며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깨어나지 못하거나 언어장애나 반신 장애를 남기는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는 의식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아서 치료에 대한 상의는 대부분 그 가족들과 나누어야 한다.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 중 누군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했다면 아마도 담당 의사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의사의 말이 주는 뉘앙스가 위험스럽다거나 혹은 아주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할게 없다는 말은 아주 크고 의미 있게 들린다. 절망적이거나 혹은 희망적이어서 어쩐지 환자나 가족들의 마음도 닮아간다. 이 모든 과정과 절차, 앞으로의 일들까지 의사가 성의 있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길 기대하지만 큰 병원의 이름난 의사들은 너무 바빠서 사실 그럴 여유가 없다. 듣고 싶은 말들은 고사하고 꼭 들어야 할 말들조차 듣기 힘들다. 의료사고가 나면 그제야 분쟁이 된다.

 

 

 

더 나아지기 위해 또 살기 위해 병원을 찾지만 더 나빠지거나 죽는 경우도 있다. 누구도 잘못도 아닌 원인들로 죽기도 한다.

 

 

<한 줄 평>

이 책에서는 그곳에서

생략된 모든 것을 본다.

 

 

이 책 < 괜찮은 죽음>은 정말 솔직한 책이다.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죽음에 대해, 생사가 나뉘는 사투의 현장에서의 실수와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기도가 가득하다.

 

때론 환자의 실낱같은 희망을 위해 가망 없는 수술이라 하더라도 해야 하거나 간절히 원하더라도 수술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섬세하게 활자화되어있다.

 

책에 등장하는 25가지 에피소드에는 뇌 수술로 목숨을 건진 사람, 세상을 떠난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든 외과 의사의

마음 한구석엔

공동묘지가 있다

 

환자들에겐 각자

아파온 역사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른 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을 담았던 책 <숨결이 바람 될 때>가 자연스레 떠올랐고, 국내에서는 미처 읽지 못한 책 외과의사 이국종 님의 <골든아워>를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자가 돈만큼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흔치 않은 의사선생님. 그분이 자꾸 생각난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되어주신 분들의 노고를 엄숙하게 떠올리며 환자와 가족들을 함께 위로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1.5kg의 뇌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에게 환자의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의사의 손길 한 번에 환자는 죽다 살아날 수도 있지만 언어능력을 잃거나 팔다리가 마비될 수도 있다. 이때 믿어야 할 건 오직 의사의 통찰뿐이다. 그런 점에서 헨리 마시는 망설임 없이 신뢰할 수 있는 의사 중 한 명이다. 그가 단지 신경외과의 최고 권위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 주어지는 삶과 죽음, 우리는 대부분 삶에 더 치중한다.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을지 평생에 걸쳐 애쓰는 반면 죽음은 우리에게 항상 외면당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죽음이 참 괜찮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순간,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이 시작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 ‘멋진 삶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결국 이 책이 말하는 모든 것이다.




p 156

소아과의 뇌 전문 외과 의사로 수련을 했을 때, 나는 내 아들이 있었던 수술실과 또 같은 수술실에서 한 아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 상사이자 아들의 목숨을 구해준 바로 그 외과 의사가 수술에 실패해서였다.

안달복달하고 화를 내는 가족들의 짜증과 분노는 세상 모든 의사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때문에 나 자신이 그런 가족의 역할을 했던 경험은 의사로서 받아야 할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p 156

30여 년의 여정을 대표한 글이다. 극적으로 환자를 살려낸 미담뿐 아니라 아찔할 만큼 솔직한 저자의 뼈아픈 실수담은 우리로 하여금 괜찮은 죽음을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 나와 내 주변의 죽음을 성찰해 보는 순간, '살아 있음'이 가진 힘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렇게 병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간절해지는 동시에 만약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겁먹지 않고 지혜롭게 살피고 믿고 기다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헨리 마시 Henry Marsh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섬세한 문필가이다

그를 두고 사람들은 이런 타이틀을 붙이곤 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본 삶과 죽음, 그에 대한 깨달음을 써 내려간 데뷔작 《참 괜찮은 죽음》 덕분이다. 이 책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럿 수상하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국내외 방송상을 수상한 〈 Your Life in Their Hands 〉와 〈 The English Surgeon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시한폭탄을 멈추는 전선을 잘 골라야 하는 것처럼, 혈관도 잘 골라야 한다. 잘못 잘랐다간 갑자기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 순간 나는 그동안 쌓아온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모조리 사라져 백지 상태가 돼버린 것만 같다. 혈관 하나를 자를 때마다 두려움으로 온몸이 떨릴 지경이다. 가슴 아프지만 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이런 강렬한 불안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 불안을 무릅쓰고 계속 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모든 외과 의사의 마음 한구석엔 공동묘지가 있다」중에서

 

 

 

내가 굳이 수술을 집도하려는 이유는 헬렌의 가족들에게 이제 그녀가 죽을 시간이 됐다고 말할 용기를 못 낼 것 같기 때문이다. 암 전문가들이 값비싼 최신 신약이 환자를 몇 개월만 더 살려도 큰 성공이라고 하는 마당에, 의사로서 ‘고작 몇 개월’이라는 말로 가족들에게 수술을 하지 말자고 말할 용기가 내겐 없다. (...)

 

외과 의사는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환자에게서 실낱같은 희망까지 빼앗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문에 낙관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희망과 현실 상시의 외줄 타기」중에서

 

 

 

괜찮은 죽음의 조건은 무엇일까?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참 괜찮은 죽음」중에서




차례에서 보이는 병명들을 아프게 본다. 이 이름들을 잘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과정과 마지막 모습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을테고 너무 아프지 않게 이 글을 만나봤으면 하는 책이다.







( 책을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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