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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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47세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17세의 고아 아가씨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54통의 편지로 구성돼 있다.

4월 8일

더 없이 귀한 나의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어제 난 행복했어요, 극도로 행복했어요,

더없이 행복했어요!

책을 다 읽고 다시 돌아와 이 첫 편지의 시작을 보자니 더없이 가슴이 아프다. 이것이 이 남자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라 그것을 표현하기가 내겐 매우 어렵다.

그가 바란 행복은 오직 바르바라를 도우며 행복을 바라는 것 뿐이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앉아서 일할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나는 알 수가 있지요. 그곳에서 당신이 날 생각하고 날 기억하고, 또 당신이 건강하고 즐겁다는 것을.

누군가를 향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했을 때에 우리는 사랑이라고 답하게 된다.

먼 친척이라서 돌본다지만 특별한 애정이다. 중년이 넘은 남자와 이제 곧 여인이 될 소녀이기에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기위해 가까운 거리이지만 편지로 주고 받은 54통의 편지로 이 소설이 이렇게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이 놀라웠다.

바르바라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카르 제부스킨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바르바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극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봄에 시작한 편지는 질은 가을로 넘어가며 좌절과 절망을 얘기해야 했다.

부성애적인 사랑으로 끝없이 서로를 걱정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에 반해서 지독하게 가난한 현실은 아프다.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수모와 수치는 참 이상하다.

바르바나 역시 그저 살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맡아 열심히 해야했지만 몸이 점점 약해져서 일마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까?

누구의 잘못 입니까?

돈은 대체 무엇입니까?

누가 우릴 귀히 여겨주고

존중이란걸 해준단 말입니까?

200년이 지난 현대의 우리의 모습과도 멀지 않은 익숙함이 올라와 책을 읽는 나는 아직도 슬프다.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라는 권유에, 차도 못마실 형편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을 죄스럽게 스끼는 어느 장면이 있는데,

자신에게 베인 가난의 찌질함을 미안해 하는 인물의 모습이 너무 아팠다.

마카르 제부스킨은 자기가 이미 절박한 순간임에도 더 절박해보이는 그를 도우려 자기가 가진 적은 돈이지만 전부를 주고 만다.

서로의 위기에 도움이 되었던 사람역시 형편이 더 나아서 돕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가난이 주는 질병까지 늘 함께 하여서 점점 약해지는 몸과 야윈 모습으로 그려질 때는 그 가난이 가슴을 찢고 들어왔다.

18세기, 페스트에서 보았던 광경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축축하고 눅눅한 거리에서 옷은 헤어져 여기 저기 덧대어져 있고 부츠도 밑창이 훤히 뚫여 살이 드러나고 진창에 굴러 더러워진 채로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민과 사랑이 이 소설을 고전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게 깊은 한숨을 남겨버린 가난한 사람들은 그 내용에 관해서라면 무수히 많은 글이 있으니 생략하더라도 문장이 준 가난의 묘사를 만나고 나면 좀 달리 보이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쉽게 걸리는 감기로 잃는 사람들을 보며 그 절망감이 또 온 도시를 뒤덮고 있음에 무거웠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해한 거에요.

내가 뭘 원했는지,

내 가슴이 뭘 원했는지!

p 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백치,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시키의 책을 시작하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이 생기는 책이고 오래전 읽은 죄와 벌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p 134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편지에 쓰시기를 저한테 털어놓는게 겁이 났다고, 다 말해버리면 저와의 우정을 잃을까 봐 겁이 났고, 제가 병중에 있을 때는 도울 방법이 없어 절망스러웠고, 저를 보살피시려고, 병원에 안 보내시려고 가진 걸 전부 팔았으며, 돈도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리셨고, 주인 여자와는 매일 껄끄러운 일을 겪으신다고 하셨죠.

하지만 이 모든 걸 숨기신 것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어요. 이젠 제가 다 알아버렸으니까요. 당신은 양심상 제가 알도록 할 순 없으셨던 거예요. 당신이 처한 불행한 상황의 원인이 저라는것을요. 그런데 이젠 당신의 행동이 저를 갑절로 더 힘들게하고 있어요. 저는 정말 충격에 빠졌어요,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아아, 나의 친구님!

불행은 전염병이에요.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야 해요,

더 심하게 전염되지 않으려면!

예전에 홀로 소박하게 사실 땐 겪지 않았던 불행을 제가 가지고 온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저를 죽도록 괴롭게 합니다.

가난이 전염병이니 자기에게서 멀어지라고 말하는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난이 사슬이 되고, 바다의 이안류를 만난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다로 끌려 들어가 는 위험에 처하는 모습들이 책에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도 연민과 동정 사랑을 베푸는 사람 이 있어 왠일인지 아름답다.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가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은 바로 인권이자 인간애라고 생각하며 다시 복기해 본다.


p 144 축약

가난한 사람들은 까탈스러워요

가난한 사람은 걸레보다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존중이란 걸 받을 수 없어요

가난한 사람들은 전부 까발겨지고

감춰야 할 게 있어도 안되고

자존심 같은 것도 절대 안돼요

가난한 사람들은 왜 이걸 알고 있고

이런 것만 생각할까요?

왜? 그렇겠어요?

겪어봤거든요!

p 144


좋은 사람들은

황폐함 속에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행복이 절로 붙어다니는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걸까요?

p 187



p 194

지금은 우울감이 심하게 들어서

내 생각에 깊은 연민을 끼고 있어요.

비록, 이기씨, 이런 연민으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내 친근한 사람아,

인간은 아무 이유도 없이

자꾸만 저 자신을 망가뜨리고,

한낯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슨 나무 쪼가리보다 못한 존재로

자신을 등급 매기잖아요.

비교해서 표현을 해보자면,

나한테 구걸하던 그 가엾은 소년처럼

아마 나 자신도 겁에 질리고 내몰려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나도 중년이 되어 읽어보는 가난한 사람들은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pay it forward를 보게했다. 도움의 크기나 경중은 돈에 달린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절명의 순간에 그가 위기에서 건져지는 것은 생명이 건져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분은 나를 나자신으로 돌려 놓으셨어요.

그 행동으로 내 영혼을 부활시켰고,

내 인생을 엉원토록

달콤하게 만드셨어요.

p 207


p 206. 위기의 순간의 도움


아기씨. 내 말 잘 들어봐요, 아기씨.

맹세컨대, 비록 내가 불행의 혹독한 날들 속에서 당신과 당신의 재앙,

또 나 자신과 내 굴욕, 내 무능력을 보며 정신적인 고통으로 죽어갔어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맹세컨대,

100루블은 그리 귀하지 않아요.

각하께서 친히 이 지푸라기 같은 놈,

주정뱅이의 미천한 손을 잡고 악수해주신 것에 비하면요!

그로써 그분은 나를 나 자신으로 되돌려 놓으셨어요.

그 행동으로 내 영혼을 부활시키셨고,

내 인생을 영원토록 달콤하게 만드셨어요.

난 굳게 믿어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서

내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각하의 행복과 행운을 비는 기도는

하느님의 보좌에 상달될 겁니다...!




p 239

바르바나가 다 쓰지 못하고 떠난 편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더없이 귀한 분, 나의 친구, 나의은인, 나의 친근한 분!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고 행복하게지내세요. 절 기억해주세요.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께 임하시기를!

저도 늘 당신을 떠올리며 기도할게요..

이제 이 시절도 끝이 났네요!

지난날의 추억 중에서 즐거운 것들만 조금새 삶으로 가져가렵니다. 그러면 당신에 대한 추억이 더욱소중해질 것이고, 당신도 제 가슴속에 더욱 소중할 테니까요.

당신은 저의 유일한 친구세요. 이곳에서 저를 사랑해주신 분은 당신밖에 없었어요. 당신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 제가 다 보았고, 다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제 미소 하나만으로도, 제 편지 한 줄만으로도 행복해하셨어요. 이젠 저를 떨쳐내셔야 해요!

이곳에 어떻게 혼자 남아 계실까요!

누굴 보며 여기서 지내실까요..

착하고 더없이 귀한, 하나뿐인 내 친구님!

당신께 제 책과 자수틀, 쓰다 만 편지를 남깁니다.

쓰다 만 첫 두어 줄을 보실 때면

그다음은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읽어주세요.

당신이 제게서 듣고 싶었던,

또는 읽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요.

제가 당신께 썼을 법한 것들,

하지만 지금은 쓰지 못한 것들을요!

당신을 굳게 사랑했던 가엾은 바렌카를 기억해주세요.


<가난한 사람들>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감사히 일고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by 모든것이 좋아



아아, 나의 친구님! ​

불행은 전염병이에요. ​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야 해요,
더 심하게 전염되지 않으려면! - P134

지금은 우울감이 심하게 들어서 내 생각에 깊은 연민을 끼고 있어요.

비록, 아기씨, 이런 연민으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내 친근한 사람아,
인간은 아무 이유도 없이
자꾸만 저 자신을 망가뜨리고,
한낯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슨 나무 쪼가리보다 못한 존재로
자신을 등급 매기잖아요.

​비교해서 표현을 해보자면,나한테 구걸하던 그 가엾은 소년처럼

아마 나 자신도 겁에 질리고 내몰려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어요. - P194

그분은 나를 나자신으로 돌려 놓으셨어요.

그 행동으로 내 영혼을 부활시켰고,내 인생을 엉원토록 달콤하게 만드셨어요. - P206

이곳에 어떻게 혼자 남아 계실까요!
누굴 보며 여기서 지내실까요..
착하고 더없이 귀한, 하나뿐인 내 친구님!

당신께 제 책과 자수틀, 쓰다 만 편지를 남깁니다.
쓰다 만 첫 두어 줄을 보실 때면 그다음은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읽어주세요.

​당신이 제게서 듣고 싶었던, 또는 읽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요.

제가 당신께 썼을 법한 것들,하지만 지금은 쓰지 못한 것들을요!​

당신을 굳게 사랑했던 가엾은 바렌카를 기억해주세요.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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