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여행자 오소희 산문집
오소희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좀처럼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나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난다.

욕실 창에 매달려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욕조 안에 두 발을 디딘 내가 웃기기도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출 풍경은 새벽 산울 올라서도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나는 우리 집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많은 이유를 하나씩 찿아가고 있다. 집은 어느새 나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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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통해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창을 사이에 두고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한 경계에 서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음이 그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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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저마다의 창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각자가 원하는 시간에만 창을 열고 창을 통해 무엇인가와 소통한다는 것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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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저자 오소희, 아시는 분은 많이 아시던데 나는 여행자의 피가 없는 사람이라서인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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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에세이를 쓰시고, 세살 아이와 함께 세계 일주라는 장르를 개척한 여행작가로 이미 많은 책을 내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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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는 김민철의 이름을 먼저 가슴에 새겼었다. 프롤로그를 시작하며 그때 좋았던 설레고 좋았던 점들이 여기에 이어져 있고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어와 멋진 시간이 될 것임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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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의 얘기들을 듣고 취향이 담긴 집 얘기를 들으며 행복을 떠올리다가 책의 뒤표지에 남겨진 김민철의 소개 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좋다고 느낀 것들에는 맥락이 있다는 증명을 받기라도 한 듯이 통하는 작가 사이에 끼어 있는 내가 괜히 반갑고 반가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화처럼 누군가의

또 다른 삶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내 순간을 사는 것이다.”

p178 당신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

내 몸은 비록 일상의 틀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지만 생각만큼은 언제나 여행자가 될 수 있지 많을까~ 하던 참에 만나게 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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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들은,

나를 여행이 아닌 것으로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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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들이 계속 여행을 다닌 얘기만 했다면 샘나고 배 아파서라도 여행 에세이에 가까이 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는 천상 집순이고 지역의 경계를 넘는 일은 더욱더 없어졌으므로 위로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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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코로나는 여행을 멈추게 했고,

다른 여행이 탄생하게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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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여행이 아니라도 여행처럼 의미를 부여하고, 더욱이 여행이라면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시선을 즐기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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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많은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초심을 기억하게 해준다면 한 권의 책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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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로 많은 곳으로 다니기를 좋아했던 저자가 자기만의 집을 짓고 이사를 했을 무렵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늘 떠남과 머묾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는데, 강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저자는 덕분에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여러 사유들을 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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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자신이 떠났던 여행지에서 느꼈던 소중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떠나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했고, 떠나보지 않은 집순이인 내게도 그 행복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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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창문에서 바라보면

하루치의 포옹과 인사말, 가족의 살냄새와 바브고 성가시고 그러나 보람찬 돌봄.

그것을 어서 돌아가 최대한 누리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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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며 온통 자기 마음대로 꾸민 공간들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 읽고 쓰는 공간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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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실은 나도 내 책을 읽고 싶었음을 고백하고 남편처럼 자기 일에 충분히 빠져 지내며 집안일은 모른 척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워했음을 고백하는 몇 문장으로 내 마음도 여기에 담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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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추억을 수시로 바라볼 수 있게

과감히 집을 꾸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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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는 그런 추억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몸을 던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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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집에서 나는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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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간단한 고백으로 여행이 왜 시작되었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짐작한다.

행복하지 않은 집에서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에 뭔가가 잘못되었다면

아이에게만은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싶었을 마음이 보였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집을 지으며, 써둔 메모들이 집과 여행을 동시에 오가는 이 책을 탄생시켰다. 외로움이 복받치는 여행과 오롯이 내 마음대로 탄생한 집이 말해주는 것들은 나를 다시 지어올리는 일이 되었다..

집은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가장 장대한 여행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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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삶을 담는 그릇이며

우리는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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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일으며 늘 마음에 걸려서 뼈를 때리는 한 마디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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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은 끝내 모르는 것이다

못 가보는 것은 끝내 못 가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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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이 뻔하게 아는 것도 꼭 해보고 고생해봐야 납득이 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경험으로 알아갔어야 마땅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가득하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데 못한 것들이 세상 99%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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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할 거라면 떠나지 않고도 행복하길 바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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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향, 내가 가장 즐거운 시간, 열심히 사는 동력을 얻는 것들을

내 가까이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충분히 더 좋은 시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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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을 여기로 오게 한 것들

처음으로 집을 짓는 사람은

꿈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크다.

그 크기를 점점 줄여가는 동안 집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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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집

집을 지으며 집 안에 꼭 두고 싶었던

공간은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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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인가

2020년

다시, 돌고 돌아서 부암동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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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전세살이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서러움에 빠져보았을 것이다.

이렇게나 집이 많은데 내 집이 없나?




똑같이 집을 박차고 나온 여행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잔잔히 달래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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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나도 그랬어.

떠날 수밖에 없었지.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


그런데 더는 기대를 낮출 수 없었지.

더 바랄 수밖에 없었지.

떠나고 싶어 홀연히 떠나왔지만

떠났다고 딱히 변한 것은 없는 떠난 자리들을, 여행자들은 조금씩 그리워하거나

원망하거나 그저 하룻밤 잊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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