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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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탈옥한 살인범인 슬림할아버지는 엘리와 한살 많은 형 오거스트의 베이비시터였다. 어쩌다 이런 환경으로 아이들을 앙육하게 되었을까? 의아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행운에 가까웠다.

슬림할아버지는 이 아이들 특히 엘리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지지자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교도소 탈옥 과정과 처참한 감방 생활에 관한 것이었지만 세상을 보는 눈을 엘리에게 열어주었다.

슬림할아버지는 엘리가 '아이의 몸에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엘리가 어려운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엘리에게 많은 간접경험들을 제공하며 빅뱅과 같은 역활을 해준 평생의 친구이자 은인이 된다.

슬림할아버지가 엘리와 교감을 나누던 초반부터 나는 바로 밑줄을 그으며 문장들을 수집했고,어떤 소설에서도 받지 못했던 감동들이 이어졌다.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는 짧은 되새김들이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그렇게 672 페이지나 되는 대장정을 5일에 걸쳐 정말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천천히 읽었다.

교도소에 있는 알렉스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써보라던 슬림아저씨의 권유로 엘리는 수감자와 펜발을 하게되는데 아래는 그중 한 내용이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요. 알렉스. 세상의 모든 문제,세상의 모든 범죄는 누군가의 아빠로부터 시작됐을지도 몰라요. 강도,강간,테러,아벨을 해치는 카인, 전부 다 아빠들이 원인이잖아요. 엄마들일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엿같은 엄마는 그전에 엿같은 아빠의 딸이었으니까요."

어린 엘리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모두 어른들의 잘못이 있었다. 그것들이 주는 파급효과는 아이들을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했고 그래서 책이 출간된 호주내에서만도 50만부가 판매되고, 4개부문의 상을 휩쓸고 문학상도 받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세계 34개국에서 번역되어 읽히고 있고, 내게도 이제껏 읽은 소설 중 최고의 책이 되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소설 전체가 엘리의 특별함으로 다양한 시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점과, 한 순간은 영원처럼 늘리고 또 어떤 시간은 빨리 흐르게 하면서 시간을 조정하는 듯한 글들이 이 소설의 매력이자 특별함이다.

현재 엘리가 12살인 시점에서 4년전을 회상하는 듯 이어가는 전개는 엄마와 라일 아저씨의 마약쟁이 모습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이 세밀했고 그만큼 아이에게 잔인하고 끔찍했다.

헤로인에 중독된 마약 거래상인 엄마와 엄마의 애인 라일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 일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형과 나는 태양이자 하늘이며

우리를 훈훈하게 데워주는

엄마의 미소를 기다린다

마약에 중독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결코 정상적이거나 행복할 수가 없지만, 엘리와 오거스트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 최악의 경험들을 그냥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약에 취한 엄마는 있는 듯 없는 듯 몽롱했고, 썪어가는 시체처럼 소파에 묶여 있었다.

라일은 엄마를 헤로인 중독자로 만들었고, 다시 약을 끊게 하기 위해 엄마를 피의방에 감금했다.

어린 엘리와 형 오거스트는 울부짓는 엄마를 문 밖에서 진정시키위해 엄마가 즐겨 듣던 노래를 틀고, 엄마에게 다 괜찮아질거라고 소리쳐야 했다.

"엄마가 그 작은방에서 어떤 싸움을 벌였든 간에 우린 엄마가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때론 거칠게 화내는 이 남자 라일에게 맞는 날도 있지만 라일의 목소리에는 사랑이 느껴졌고 그런 감정이 있는한 아이들은 누구보다 라일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바닥인줄 알았던 일상은 차츰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마약과 함께 반복되는 불행은 엄마와 라일이 마약거래상으로 일을 하면서 타스티스 브로즈와 그의 잔인한 부하 이완 크롤과 엮이며 더욱더 지옥으로 치달았고 그 속에서 엘리는 말을 잃은 형과 함께 스스로 성장해야 했다.


은 엘리의 전부였고, 엄마였고,아빠였으며 엄마를 길잃은 새끼 사슴처럼 돌보는 보호자였다. 어른들은 부모의 역활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 소설 스토리가 정말 방대하다.

공항장애가 있던 친아빠가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면서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친아빠는 책만 읽는 도피자로 살았다. 후에 엄마가 위기에 처하자 엄마를 돌보며 지난일을 용서빌고 싶어하는 모습과 아빠로써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 안도가 되기도 했다. 최악이었지만 뒤늦게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아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이 책의 두께만큼 만들어준 이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5%도 풀지 못한 이 소설의 스토리를 뒤로하고 최고의 장면을 꼽자면,​

엘리가 교도소에 수감된 엄마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숨어 들었던 장면이다.

엄마게게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다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하기 위한 엘리의 사랑에 목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두번째 명장면은 536 페이지의 기적같은 감사함을 맞는 순간인데 그 감동을 위해 스포일러를 아껴둔다. 내가 얼마나 엘리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는지를 그 완벽한 선물에 대한 기쁨으로 알게되었다.

그리고 ...

형은 몸짓으로 말한다.

달 웅덩이

우주를 삼킨 소년

형은 나보다 한 살 많고

모든 사람보다 한 살 많다.

우주보다 한살이 많고

내일을 볼줄 안다

답을 알고 있다

의문들에 대한 답

엘리와 오거스트는 죽었다가 되돌아온다.

우주를 삼킨 아이

너의 마지막은 죽은 솔새

케이틀린 스파이스

예지력이 있는 듯한 오거스트의 신비로움을 따라다는 말들이 이 소설 전체를 이어주고 있다.

말을 하지 않고 형이 허공에 손으로 쓰는 글자들에 묘하게 이끌리게하는 알쏭달쏭한 키워드들이 독자를 정말 타이트하게 잡아끄는 소설이었고, 장면 장면의 묘사가 훌륭해서 읽은 독자들은 모두 같은 영화장면을 본 것처럼 같은 영상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보여주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679페이지 까지 오는 동안의 한 순간도 끊김 없이 오래 남는 것 같다.

하얗기만 하던 두꺼운 책의 엽날이 밑줄과 메모로 회색빛이 된 것을 보고 이 책을 통과한 나는 많은 희열을 느낀다.

어느 책보다 이 책을 소중히 읽어내고 나니, 내게 내공이 쌓였다는 생각도 든다. 굉장한 상상력과 연상력과 마법같은 문장력을 여러모로 느끼게 되는 정말 대단한 책이었다. 저자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소설이라서인지 그 감정의 깊이가 깊다는 것이 느켜진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포인트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옮기면 좋을지 난감하다.

엘리와 슬림할아버지

나노급으로 정교한 소설속에 정교한 인물들 이었고, 아마 지금껏 내가 읽은 소설중에서도 가장 섬세하다고 느낀다. 슬림할아버지는 악을 대표하는 살인범으로 등장했지만 누명을 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이다.

유일하게 엘리와 오거스트를 챙겨주고,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어떤 어른이 될지를 신경써주며 모든걸 믿어 준 한 사람으로 엘리를 끝까지 책임지려한 슬림할아버지는 친부모와 사랑하는 가족이 다하지 못한 사랑으로 엘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시간에 침몰하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쓰는 법을 일깨워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

후반부 엘리가 19살이 되고 돌아가신 슬림할아버지에게 하는 독백같은 부분들에서 울컥했다. 너무 힘들게 얻은 일상임을 알기에 더욱더 소중했다.


스릴러 공포소설이라해도 토를 달지 못할 정도로 잔인했던 엘리의 주변 배경들로 가슴 아팠고, 엄청난 섬세함을 보게 된 <우주를 삼킨 소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라일 아저씨가 미딛이문으로 나가자 나도뒤따른다.그 순간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염려가,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사랑이 느껴졌고, 그런 감정이 있는 곳이라면 난 어디든 따라갈 작정이다. - P99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요. 알렉스. 세상의 모든 문제,세상의 모든 범죄는 누군가의 아빠로부터 시작됐을지도 몰라요. 강도,강간,테러,아벨을 해치는 카인, 전부 다 아빠들이 원인이잖아요. 엄마들일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엿같은 엄마는 그전에 엿같은 아빠의 딸이었으니까요 - P121

슬림 할아버지는 우리 인생이라는 대작 영화속의 이런 순간에 대해 항상 얘기한다.다차원적인 인생.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생.

이런 관점의 순간들을 모두 합하면 단 하나의 순간안에 스쳐 지나가는 영원에 가까운 무언가를 포착하할 수 있을지 모른다.아니면 영원 비슷한 것에라도.

이 순간을 나처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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