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중독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결코 정상적이거나 행복할 수가 없지만, 엘리와 오거스트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 최악의 경험들을 그냥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약에 취한 엄마는 있는 듯 없는 듯 몽롱했고, 썪어가는 시체처럼 소파에 묶여 있었다.
라일은 엄마를 헤로인 중독자로 만들었고, 다시 약을 끊게 하기 위해 엄마를 피의방에 감금했다.
어린 엘리와 형 오거스트는 울부짓는 엄마를 문 밖에서 진정시키위해 엄마가 즐겨 듣던 노래를 틀고, 엄마에게 다 괜찮아질거라고 소리쳐야 했다.
"엄마가 그 작은방에서 어떤 싸움을 벌였든 간에 우린 엄마가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때론 거칠게 화내는 이 남자 라일에게 맞는 날도 있지만 라일의 목소리에는 사랑이 느껴졌고 그런 감정이 있는한 아이들은 누구보다 라일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바닥인줄 알았던 일상은 차츰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마약과 함께 반복되는 불행은 엄마와 라일이 마약거래상으로 일을 하면서 타스티스 브로즈와 그의 잔인한 부하 이완 크롤과 엮이며 더욱더 지옥으로 치달았고 그 속에서 엘리는 말을 잃은 형과 함께 스스로 성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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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엘리의 전부였고, 엄마였고,아빠였으며 엄마를 길잃은 새끼 사슴처럼 돌보는 보호자였다. 어른들은 부모의 역활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 소설 스토리가 정말 방대하다.
공항장애가 있던 친아빠가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면서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친아빠는 책만 읽는 도피자로 살았다. 후에 엄마가 위기에 처하자 엄마를 돌보며 지난일을 용서빌고 싶어하는 모습과 아빠로써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 안도가 되기도 했다. 최악이었지만 뒤늦게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아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이 책의 두께만큼 만들어준 이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5%도 풀지 못한 이 소설의 스토리를 뒤로하고 최고의 장면을 꼽자면,
엘리가 교도소에 수감된 엄마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숨어 들었던 장면이다.
엄마게게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다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하기 위한 엘리의 사랑에 목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두번째 명장면은 536 페이지의 기적같은 감사함을 맞는 순간인데 그 감동을 위해 스포일러를 아껴둔다. 내가 얼마나 엘리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는지를 그 완벽한 선물에 대한 기쁨으로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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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
형은 몸짓으로 말한다.
달 웅덩이
우주를 삼킨 소년
형은 나보다 한 살 많고
모든 사람보다 한 살 많다.
우주보다 한살이 많고
내일을 볼줄 안다
답을 알고 있다
의문들에 대한 답
엘리와 오거스트는 죽었다가 되돌아온다.
우주를 삼킨 아이
너의 마지막은 죽은 솔새
케이틀린 스파이스
예지력이 있는 듯한 오거스트의 신비로움을 따라다는 말들이 이 소설 전체를 이어주고 있다.
말을 하지 않고 형이 허공에 손으로 쓰는 글자들에 묘하게 이끌리게하는 알쏭달쏭한 키워드들이 독자를 정말 타이트하게 잡아끄는 소설이었고, 장면 장면의 묘사가 훌륭해서 읽은 독자들은 모두 같은 영화장면을 본 것처럼 같은 영상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보여주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679페이지 까지 오는 동안의 한 순간도 끊김 없이 오래 남는 것 같다.
하얗기만 하던 두꺼운 책의 엽날이 밑줄과 메모로 회색빛이 된 것을 보고 이 책을 통과한 나는 많은 희열을 느낀다.
어느 책보다 이 책을 소중히 읽어내고 나니, 내게 내공이 쌓였다는 생각도 든다. 굉장한 상상력과 연상력과 마법같은 문장력을 여러모로 느끼게 되는 정말 대단한 책이었다. 저자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소설이라서인지 그 감정의 깊이가 깊다는 것이 느켜진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포인트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옮기면 좋을지 난감하다.
엘리와 슬림할아버지
나노급으로 정교한 소설속에 정교한 인물들 이었고, 아마 지금껏 내가 읽은 소설중에서도 가장 섬세하다고 느낀다. 슬림할아버지는 악을 대표하는 살인범으로 등장했지만 누명을 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이다.
유일하게 엘리와 오거스트를 챙겨주고,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어떤 어른이 될지를 신경써주며 모든걸 믿어 준 한 사람으로 엘리를 끝까지 책임지려한 슬림할아버지는 친부모와 사랑하는 가족이 다하지 못한 사랑으로 엘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시간에 침몰하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쓰는 법을 일깨워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
후반부 엘리가 19살이 되고 돌아가신 슬림할아버지에게 하는 독백같은 부분들에서 울컥했다. 너무 힘들게 얻은 일상임을 알기에 더욱더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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