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면의 방 - 우울의 심연에서 쓰다
메리 크리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0월
평점 :
<내면의 방>- 치유에세이 심리학
에필로그를 시작하며 바로 밑줄을 긋기 시작한다. 그녀가 되돌리고 싶어했던 순간들이다. 현실을 부정한 탓에 미처 치료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일들을 경험으로 알려준다.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자신 역시 도와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렸다고 고백한다.
심리상담자가 내담자를 통해 들은 고통들이 아니라 직접 겪어낸 일들이기에 그 아픔을 마주하고 헤쳐나온 저자로부터 많은 분들이 도움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이 책은 자살에 대해 아주 직접적이다.
자살을 시도했던 자신과 주변의 모든 모습을 이렇게 상세히 기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연구했고, 자신의 흔적을 찾아 다녔고 많은 이들로부터 증언받았다.
그속에 내 모습이 보인다면, 분명 나를 이해하고 나 스스로를 돕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얼마전 나는 가족사의 미묘한 감정을 얘기하며 이것이 나의 감정의 밑바닥이라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얘기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감정에 솔직해져 본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 그 글로 인해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나와 나누어 주시는 감사한 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받은 치유는 이책이 주는 치유와 비슷하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회를 얻었음을 말하고 싶다.
아픔의 종류가 무엇이건 사람은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내 안의 우물이 그렇게 어둡고 깊게 느껴지더니 이 책을 대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우물이 참 얕다는 생각으로 차라리 행복에 가까움을 느끼며 모든 것이 뒤짚이고 있다.
감정의 고통에 레벨이 있다면 자식을 잃은 아픔이 단연코 최고의 고통이라고 알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 유가족의 아픔이 그렇고, 많은 이유로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들은 가슴에 고통을 묻고 산다.
저자 역시 출산후 2주만에 심장질환으로 아이를 잃고서 자신의 임신과정의 어떤 실수가 원인일거라는 자책으로 우울증이 깊어가고 자살충동에 휩싸이고 급기야 자신도 모르게 실행한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 두 장
출산을 앞둔 베이비샤워 파티에서 베냇가운을 들고 태어날 아이를 축복하며 친구들과 행복해 보이는 사진 한 장과 13년 뒤 이혼과 재혼을 거쳐 생후 9개월의 아이와 찍은 사진. 그 시간 사이에 있었던 많은 아픔을 보며 함께 했다.
책은 아이를 잃은 슬픔만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태양 같았고, 태양을 잃은 우주는 주변 사람들과 일상을 정상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것의 궤도가 빗나가고 있다.
그녀가 아이를 낳으려고 병원을 간 날과 자살시도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 위해 간 날 사이의 100여일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 상태였다.
일반적이지 않게 그녀의 목에 선명하게 남은 상처에 대해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이제껏의 모든 고통들은 한꺼번에 되살아 난다. 그리고 이 책의 원 제목이 '흉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303 그러나 내 흉터는 내 정체성의 흔적이 이니다. 나는 그런 행동으로 나를 몰아간 정신 상태와 나를 동일시할 수 없다. 이 흉터는 나를 규정하는 두 가지 정신적 상처를 상징한다. 아이를 잃은 것과 나 자신을 잃은 것. 이 흉터는 내 과거의 토대가 된 병의 흔적이다...
숨기고 싶은 자신의 깊은 아픔을 드러낸다는 것이 보통의 각오로는 힘든 일이고, 아픔은 아픔을 낳아 더 숨기고 싶은 덧난 상처가 되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세상 밖으로 꺼내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저자에게 감사하다.
정신병과 자살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된 사람들이 결국 수치심에 놓이고 낙인이 찍히는 것을 저자는 원치 않는다. 우울증을 앓으며 최악의 순간들을 경험해본 내부자의 관점. 그것이 우리에게 약이 되고 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생 최악의 시기를 굳이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돕고자 한다.
자살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해도 우리는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도와 주세요" 할 수 있는 용기를 책을 통해 마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