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부터의 생존자들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6
이시형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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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갑자기 생겨났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 허를 찌르듯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선뜻 이것의 존재를 인장하기 어려웠다...

파멸로부터의 생존자들 - 이시형 SF 장편소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로라처럼 아름다운 이것. 새로 생겨난 어떤 것을 길게 설명하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스무 고개처럼 아주 관념적이었다.

저자도 말했지만, 이 소설은 인간 본성에 대해 은유적이고 풍자적이다. 소설 속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의 많은 이슈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소통과 단절을 보여 주었다.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다 알지만 개인과 집단의 이익 추구로 풀 수 없게 된 실타래를 풀고 싶어 한다.

공동체 속에서 살면서 상처받고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 불신과 절망 이후의 소통이 주는 연대. 무엇이 인간적이고 무엇이 인간성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지 생각한다.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지금 닥친 상황에 대한 지루한 탁상공론을 지나 중반 이후 저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시작하면서 이 소설은 내게서 커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읽고 끝 페이지를 본 나를 자축하기도 하고, 영화였다면 박수로 클로징 하지 않았을까~~ 하고 여운을 전하고 싶다.

SF 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여러 이유들을 역시나 포함하고 있는 그래비티 16번째, 장르소설로 앞선 단편보다 몰입도와 완성도에 손뼉 친다.

 

인간의 이기심, 욕망, 편가르기, 담합, 안전욕구 등은 공동의 적이 생긴 이후에 함께 살기 위한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잠잠해졌으나 그것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잠재적 위험이었다.

공동의 적은 적을 동지로 만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엄청난 도마뱀 무리와 베일에 싸인 정체와 싸워야 했지만, 현실에선 그 대상이 지금 같은 바이러스 질병이나, 환경파괴의 결과들, 남북문제들이 될 수 있다.

동시성을 가진 네트워크 환경이 소설 속 도매뱀 무리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인 만큼 긴박한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이지만 나는 소설 <페스트>를 대하듯 인간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 소설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나 <종의 기원>, <만들어진 신>, <코스모스>, <걸리버 여행기>등의 저서들이 떠오르며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갈등에 맞서는 인간 본성에 대해 빠져들기도 했다.

시간에 쫓겨 여러 번 책을 펴고 덮으며 읽었지만 그때마다 생생했고 바로 몰입이 되는 만큼 글로만 표현했어도 전해지는 바가 많았다.

전투신에 대해 배경지식이 적어 현장 묘사들이 어색하게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잘 읽히고 훌륭히 상상되며 마지막 장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했다. 반전을 거듭하는 장면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고조되는 긴장감에 400페이지 소설을 이틀에 나누어 읽었다.

장 ㆍ벽ㆍ이ㆍ생ㆍ기ㆍ고

인류를 갈등의 파멸로 치닫게 했던

장벽 이후 드러난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어느 날 생겨난 높은 오로라 같은 장벽에 의해 대한민국은 가로 3.8선보다 높은 세로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남북의 단절을 넘어 길게 동서로 나뉘게 된 이 높고 아름다운 장벽으로 교류가 끊기고 물자 수송이 끊기고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를 적이라는 이름하에 두고 이기적인 집단이 되어간다.

무서운 순간들이었다. 같은 나라라고 볼 수도 없게 다른 생각으로 서로를 향해 총알을 퍼붓기도 하며 주고 죽이기를 반복하며 서로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간이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듯이 인간은 절박하게 살고자 했지만 모두 전쟁터다.

또 ㆍ다ㆍ른 ㆍ적

그 장벽이 가져온 문제가 전부일 거라는 생각을 뒤엎으며 생겨난 공공의 적, 장벽이 까맣게 변해가고 그 안에서 그놈들이 기어 나왔다. 하나, 둘에서 시작해서 이제 모든 곳을 덮었다.

그래도 아름다움다웠던 장벽은 인간의 실수로 검게 변하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더 큰 위기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대하던 사람들은 다시 살기 위해 합동작전으로 점점 거대해지는 도마뱀 무리와 대응해야 했다.

반전과 의심이 거듭되면서 도마뱀 무리와의 싸움은 허상에 불과할 뿐이고, 인간이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갑자기 생겨났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 허를 찌르듯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선뜻 이것의 존재를 인장하기 어려웠다...

소설의 도입이 가리키는 이것?

아무리 인간이... 노력해도 ...

인간의 결말은 똑같아...

이젠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군...

p330

인간의 갈등과 변화를 보여주는 풍자들은 나 스스로와 우리를 생각하게 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등지고 한 치의 기준에 따라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된다. 이것이 참 단순하지 않은 어려운 문제라는 것에 동의했고 희생 없이 거저 얻어지는 소통도 아니라는 것으로 영원히 인간의 숙제로 남는다.

"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답답하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다른 것보다 인간끼리의 갈등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파충류들과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대처하면 되지만 인간은 여러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그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니 쉬운 게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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