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85
장옥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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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에 대한 진술. 그게 너무 선뜩했다.


- 손차양하고
눈앞에 펼쳐진 먼지의 길을 바라본다
아득하다
알지 못할 그곳은 아직도 멀다 - 시인의 말

- <항아리>
항아리를 들고 서 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입이 없는 사람이었다

둥근 배가 슬펐다 항아리처럼 슬픈 얼굴이었다 항아리인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이었다

안을 수도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웃는 듯 우는 듯 금간 얼굴에 물비린내가 슬쩍 묻어났다 (전문)

-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다
그젠 삼십 년 입은 바지를 버렸다
옷을 버리는 일은 슬프다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한 일이다 - 일요일이다 중

- 하루를 비스듬히 걸었다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그리운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강ㄹ이었다 슬픔이 우니 기쁨도 따라 울었다 감정이 안개처럼 퍼져 모든 게 모호했다 - 비스듬히 다만 비스듬히 중

- 생
그 한마디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 어안이 벙벙하다 중

2023. feb.

#사람이없었다고한다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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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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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단편 SF.

역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드는 단편들이다. 유사한 소재의 다른 소설들과의 차별점은 역시 미야베 미유키 인가 싶다.
SF지만 인간의 감성적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뭐 다른 SF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임은 마찬가지지만.

심리 메커니즘에 입각한 마더법이 적용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엄마의 법률>
오랜시간 함께 해온 로봇과의 마지막 인사를 담은 <안녕의 의식>
죽음의 경위로 사람을 분류해 다시 살려낸 세상의 이야기 <보안관의 내일>

이 세편이 가장 흥미로웠다.

- 나라는 인간을 좌우하는 요소는 ‘누가 낳아줬나’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누가 키웠나’다. - 55, 엄마의 법률

- “..... 뭐라던가요?”
왜 내가 이런 걸 물을까.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닌가.
“언제나 그렇게, 수화로 하먼과 이야기했나요?”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을, 왜 나는 물을까.
“그만 돌아가래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여자애는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그 말뿐이에요?”
대답이 없었다. 하먼을 바라본 채 새로 흐르는 눈물로 뺨을 적시면서 여자애가 말했다. “기초기억 보존은 포기하겠어요. 이제, 하먼을 보내주세요.”
“왜 또 갑자기?”
“본인이 그걸 원하니까요.”
여자애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고 양손을 움직여, 조금 전 하먼이 했던 동작을 그대로 해 보였다.
“하먼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를, 죽게, 해주세요.”
...... 나를 죽게 해주세요. - 187, 안녕의 의식

- 이 세계에서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로봇이 어울린다. 아니라면 다들 저렇게, 저 여자애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려 할 리 없다.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로봇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해서, 원통해서......
나는 때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지만. - 194, 안녕의 의식

- 이곳에 신은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 - 447, 보안관의 내일

2023. feb.

#안녕의의식 #미야베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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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개의 힘 1~2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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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정말이지 목줄에라도 매인듯 멱살잡혀 마지막까지 내달리게 하는 이야기다.

마약 범죄 스릴러라는 것에 딱히 매력을 못느끼지만,
재미가 탁월하다는 추천을 받아 사두었던 책.

어쨌거나 해피엔딩이 되기 힘들 마약 전쟁이야기라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이 쫄깃한 심장을 부여잡게 된다.

아트 켈러, 아단 바레라, 칼란, 노라 헤이든 주요 캐릭터 네명의 시작부터가 극적이어서 클라이막스가 쭉 이어져 가는 기분이었달까.
애정을 갖게되는 캐릭터들의 생사여부에 감정의 기복이 널을 뛰었다.

초반에는 인명표를 확인하며 읽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만, 이야기속 너무나도 잘 녹아들어있는 캐릭터라 금방 몰입할 수 있다.

미국인은 멕시코의 작전에 조언자로 참가할 뿐이라고 여기던 풋내기 수사관 아트 켈러가 이 모든 마약의 굴레가 힘의 논리, 돈의 논리, 사상의 논리로 조직되는 거대한 음모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알고는 있지만 현실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고 마음이 답답하다.
결국 악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달리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지...
작은 정의의 실현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인지...

주요 인물 네명을 제외하고 가장 애정한 캐릭터는, 후안 신부와 라모스였다.

-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 정작 문제 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세상에서 점잖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 망할 놈의 전쟁.
빌어먹을 개망나니 같은 전쟁. - 26

- 그날 밤 두 사람은 맹렬하게 논쟁했다. 스카키가 베트콩 암살을 ‘하느님의 일’로 여기는 모습을 보고 아트는 오싹해졌다. 공산주의는 교회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 무신론이라고 스카키는 되풀이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교회를 지키는 일이라 죄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무라고 해명했다.- 41

-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저 아단 바레라가 ‘좋은 녀석’이었다는 사실뿐이다. 아단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 속에 무엇이 잠재되어 있었든......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 - 55

- 아트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후안 신부에게 건넸다. 지난달 봉급이었다.
“약 사는 데 보태세요.”
“주님의 은총이 있을 것이네.”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상관없어. 신은 자네를 믿거든.”
아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신은 어리석군요.’ - 106

- 소식통 추파르가 아트에게 넘겨준 정보는 국경 업무를 보는 모든 법집행 정부기관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아트에게 정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하지만 모두 아트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했다. 신세? 맙소사. 그들은 아트를 ‘사랑’했다. 마약 단속국은 지역 협조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협조를 바란다면 아트 켈러와 잘 지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아니, 아트 켈러는 급속히 ‘인토카블레’가 되고 있었다. - 239

- 칼란은 신화를 들으며 자랐다.
쿠컬린,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울프 톤, 로디 맥콜리, 패드릭 피어스, 제임스 코널리, 숀 사우스, 숀 배리, 존 케네디, 바비 케네디, 블러디 선데이.
그 신화들은 모두 피투성이로 잔혹하게 끝났다. - 442

- 저의 주요 관심사는 복음이 지금 현재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은 다음이 아니고요. - 57

- 칼란은 처음에 에스코바르와 다른 코카인 왕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 카르텔의 회원들이 엄청난 코카인 돈을 부동산과 대목장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부 좌파들 때문에 토지 분포 계획이 뒤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158

- 후안 신부는 하나를 꺼내 절반쯤 들어봤다.
줄담배를 피우며 테이프를 듣고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회의 메모들, 세로의 쪽지들, 이름, 날짜, 장소. 15년 동안의 부정부패 기록이었다. 아니, 단순한 부정부패가 아니었다. 부정부패가 통탄할 수준일 뿐이라면 이 사건은 엄청났다. 엄청나다는 말로도 모자란 일이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들이 저지른 일은, 한마디로 말해서 ‘마약 밀매자들에게 나라를 팔아치운’일이었다. - 186

- NAFTA. 북미자유(마약)무역협정이다.
신이 자유무역을 베풀었다. - 314

- 언젠가 당신에게 세상 모든 것이 정치로 보일 때가 올 것이오. 그리고 행동이 당신의 주머니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올 것이오. - 333

2023. feb.

#개의힘 #돈윈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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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2-11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엔딩크레딧, 재밌게 읽었어요. (책 더 사고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샘 솟아요) 이제 개의 힘, 파워 오브 도그 (동제이서?) 따라 읽을래요.

hellas 2023-02-11 14:17   좋아요 0 | URL
멱살 잡혀 끌려가실거예요 ㅋㅋ
 
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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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찾은 좋은 작가.

민음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딱히 작품이나 작가때문에 읽는다니 보다는 뭔가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읽기 좋은 시리즈다.
원래 좋아하던 작가의 중편을 만날수도 있고 이렇게 새로운(나만 몰랐던 것 뿐이지만) 좋은 작가를 만나기도 한다.

눈을 떼지 못하고 한숨에 전력질주로 읽은 소설이 오랫만이었다.


- 돈이 없으면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이상한 나라. 그 이상한 나라에 자꾸 자신만 혼자 남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 27

- 사랑, 아니 슬픔 때문에 사람이 미칠 수도 있는 걸까? - 70

- 정희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는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맷집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나운 운명이 정희에게 남긴 것은 트라우마와 두려움, 그리고 그녀 자신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초라한 자기 연민뿐이었다. - 82

- 정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도 확률적으로도 희박했다. 그녀의 삶이 그런 판타지로 작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희는 문득 억울해졌다. 어째서지? 한 번쯤은 그래도 되잖아. 인생에 딱 한 번쯤은. - 122

-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투박한 진심에 감동하는 것보다 공들인 형식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알맹이 없는 말과 행동, 순도 100퍼센트의 가식에는 더 지독한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을 검열하며 애쓰는 건 욕 먹을 일이 아니었다. 남에게 여과 없이 드러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진심을 간직하기 어렵다면 그걸 감추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 179

- 좀 더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뭘 어디까지 얼마나 준비해야 했을까. 그걸, 기다려 줬을까. 정희는 그런 식의 낙관이나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녀가 뭔가를 기대하고, 결국 실망하고, 체념했다가 다시 어떤 실마리를 찾아 더듬거리는 동안 진실이 멀리멀리 달아날 것만 같았다. 끊임없이 그녀를 덮쳐 오는 사나운 인생의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를 공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알고 싶었다. - 332

- 의신은 흐려지고, 의지는 산산이 흩어지고, 희망은 전부 바닥에 떨어져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철식이 록혜에게 말했었다. 마음속에 못 하나만 박아. 그럼 다시 하나, 둘 걸 수 있다. 떨어진 것을 먼저, 흩어진 것을 그다음에, 나중에는 흐려진 것도 붙잡아 걸 수 있게 된다고...... - 357

2022. aug.

#가장나쁜일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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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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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시대에 만들어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던 로봇이 모래에 파묻혀 있다 랑에게 발견되어 고고가 된다.
인간의 탐욕으로 망가져 버린 49세기엔, 남아 있는 사람들 조차 점점 사라져간다. 파편처럼 흩어져 겨우 연명하는 삶이 끝나면 더 이상 그 뒤를 이어나갈 사람이 없기 때문.
결국 로봇인 고고만 남아있는 쓸쓸한 세계가 이 이야기이다.

내내 쓸쓸하다. 고고의 여정이 길고 지난하지 않길 바란 작가의 마음이 백분 이해된다.


- 현인류는 이전 인류를 증오한다. 그럼과 동시에 선망한다. 반짝이던 문명의 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을, 49세기가 존재하리라 믿지 않았을, 어쩌면 그때를 생각할 필요도 없던 시대를. - 33

- ‘나는 이게 더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이걸 고고가 가져.’
‘마음에 드는 걸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마음에 드느 걸 선물해야 해. 그래야 너한테 준 걸 내가 보고 싶어서 자꾸 너를 보러 오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랑은 내게 내민 조개껍질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나는 랑이 준 조개껍질을 받아 다시 랑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그럼 랑이 이걸 가져야지. 나도 이게 마음에 들거든.’ - 41

- “자네가 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은 줄 아나?”
“우주에는 기본적인 법칙이 존재하는데 생명이 많은 변수를 만들어 가능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지.”
“인간도 아는 게 없어서야.”
버진이 웃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 64

- 여러 의미로 대단한지 않나? 인간이 망친 세상에서 살면서 인간을 믿는다는 게. - 70

- “네가 감정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 머쓱해서 아니야? 하지만 이제 누구도 너의 감정을 우습다고 말하지 않아. 너는 내가 보기에 꼭 인간 같아.”
“아니. 나는 내...... 인간이 되기...... 원하는 게 아니다.”
“아아, 미안. 맞아, 굳이 인간일 필요는 없지.” - 134

- 고고의 여정이 너무 길고 지난하지 않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고고는 삶의 목적을 잃고 떠나지만 메마른 사막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나누고 희망을 봅니다. 상실된 마음의 여정도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짧은 여정을 엮어 보냅니다. - 작가의 말

2023. feb.

#랑과나의사막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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