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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에 그다지 큰 기대도 혐오도 없지만 왜인지 한동안 그의 책은 안 읽어왔다.
이 책은 분량도 상당해서 괜히 골랐다가 재미가 없으면 끝까지 읽어내야하는 고역을 치룰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책도 망설임도 없이 폭력을 일삼는 친구의 남편을 제거한다 라는 범죄물이 딱히 끌린 것도 아니고....
여하튼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그간 그의 책을 읽지 않았던것 처럼,
이렇다 할 이유없이 왠지 읽어보고 싶어져서.. 선택.
이 전에 두권 정도 읽어본 작가라 스타일이 대충 어떤지는 알고 있었고,
예상대로 가독성있게 술술 읽혔다.
그리고 삼분의 일쯤 읽었을 때는 뭔가 허를 찌르는 줄거리를 예상하기도 했었지만,
작가는 그 정도로 이야기를 베베꼬지는 않았구나. 하는 실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낄 무렵.
후반부로 갈수록 이게 점점 스릴있어진다.
그래서 꽤 즐겁게 책을 덮게 되는 이야기.
띠지에 실린 여자들의 하드보일드 어쩌구 하는 일본반응은 솔직히 과장이고.
하드보일드라기 보다는 일종의 환타지, 대리만족, 복수물 정도라고 하고 싶다.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이 어디까지 무기력해지고 자존감을 잃어가는지에 대한 심리는 조금 피상적으로 다루어졌지만,
뭐 이 이야기는 복수가 중요하니까.
캐릭터의 구성으로 봐도 능동적인 인물은 모두 여자인 점도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가나코와 나오미도 그렇지만, 시누이인 요코와 줄거리에 열쇠역할을 톡톡히 하는 리아케미까지.
역시나 요즘의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하여 읽히는 부분이 많은 점도...
역시 후덥지근한 여름엔 죽이는 이야기가 재밌는 걸까. :0
2015. Aug.
나오미는 이혼을 권할 생각이었다. 가정 폭력이 당사자들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님을 봐서 알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광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당사자들에게만 맡겨놓는다는 것은 방치나 다름없는 일이다. -p. 45
"가나코가 바라는 건 뭐야?"
나오미가 묻자 가나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고 말했다.
"밤이면 꼬박꼬박 잠을 자고 맛있는 물만 먹을 수 있으면 돼."
"뭐야, 맛있는 물이라는 게."
"써. 물이. 처음에는 입속이 갈라져 따끔따끔 아팠는데 그게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쓰게 느껴져."
"그래...... 틀림없이 정신적인 문제일 거야."
맛있는 물이라. 나오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가나코는 평범한 일상조차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잃은 그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탈출할 기운도 빼앗겼다. 남편의 폭력에 의해.
더욱더 가나코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그녀를 외면하면 자신은 평생 자책감에 사로잡혀 살게 될 것이다.
나오미의 목 안에서 미칠 것 같은 초조함이 치밀어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p. 124
"잠깐만, 진심이야?" 가나코는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나도 모르겠지만 너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그러니까 다쓰로씨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나오미가 솔직하게 말하자 가나코는 할 말을 잃은 채 전화 너머에서 침만 삼켰다.
"나도 굳은 의지가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뭔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힘들어서, 힘들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어."
"왜? 내 문제잖아."
"맞아. 그래서 나도 설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주된 이유는 네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기 때문이야."
"나 때문이라고?"
"그래. 가나코 때문이야. 네가 경찰에 달려가거나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면 나도 조금은 편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짓을 하면 내가 죽는다고."
"그렇지? 그래서 네 남편이 사라져주는 수밖에 없는 거야." -p.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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