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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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실패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비참하다기 보다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매혹적인 실패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 이후는 생각하게 되지 않는 환상성이 있기 때문일까.

표제작인 국경시장은 어느 팟캐스트에서 성우들의 낭독연기로 들었던 기억이 얼핏 난다. 그때도 무척이나 매혹되었었지만. 뭐랄까. 이미 남들이 연기해 버린 후라서 완결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아 김성중작가의 다른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가 되지 않았었다.

책으로 묶여 나와 이제야 글로 체화하니 작가가 눈에 들어온다. 좋아하게 될 것 같다. :)

국경 시장
평화로운 배낭여행객의 추억담처럼 시작해 기묘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단편.
기억을 소진하면서도 끝없이 소유하려는 무참한 욕망. 실제로 이 국경시장이 어딘가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것만 같다.


2015. Jun.

해가 저물면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저녁 무렵의 개들은 이방인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지만 나무 열매를 먹어 입술이 검게 물든 아이들이 개들의 목줄을 끌어당겼다. 이 시간이면 마을은 허물 벗는 뱀 눈처럼 부옇고 탁한 어둠 속에 가라앉고, 길에는 오직 내 자전거 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게 좋았다. 습도가 너무 높아 사람이나 짐승이나 축 늘어져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꼭 맞는 리듬이었다. - p. 12. 국경시장 중

"다리를 고치는데 얼마나 들까요? 저한테는 비늘이 아주 많은데."
"나는 이대로가 좋아."
음식은 내려놓은 걸인는 모욕이라도 받은듯 노기 띤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함은 대단한 자산이야. 시장 상인들이 번갈아가며 잘 돌봐주거든. 침구도 바꿔주고 먹을 것도 쟁반 가득 날라다 준다네. 보름에 한번 시장으로 나오면 이렇게 고급 요리도 맛보고 말야. 그런데 걸을 수 있게 되면...... 끔찍해! 안락한 습관에서 쫓겨나 갑자기 생활인이 되어야 하다니. 그건 기적이 아니라 재앙이야."
이 기묘한 논리에 나는 역겨움과 찬탄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마음껏 나태하면서도 비난 받지 않는 지위를 획득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내가 바라는 삶이기도 한데 나는 그처럼 과감할 수 없다. 하긴 `내가 바라는 삶` 같은 게 있기나 할까? 나는 절망에 고착되어 있으면서도 절망을 누리는 것이 좋았고, 그런 자신에게 또 다른 절망을 느꼈다. - p. 24. 국경시장 중

`참을 수 없이 지겨웠다`라......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인물이 내뱉을 법한 대사 아닌가? 그들은 격렬히 혐오하는 무엇으로 자기 성정을 드러내는데 주변과 도시에 저주를 퍼부어대면서 산책하곤 한다. 미워하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법이다. 좋아하는 것만 봐선 도저히 알 수 없는 본질 말이다. - p. 66. 관념 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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