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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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우울하다. 단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채로 끝나버리다니.

새벽 찬공기에 더욱 쓸쓸해져 버린 독후 감상.

발췌한 부분을 보니 죄다 윤세오의 이야기. 그 어둡고 작은 세상안의 시점.
이 이야기에서 나는 그 시점에 사로잡혔었나 보다.


2015. Jun.

윤세오는 멈춰 서서 쇼핑백에 넣어둔 패딩 점퍼를 꺼냈다. 백화점에 갈 때 입은 옷이었다. 꽤나 두툼했지만 한기를 가라앉히는 것은 점퍼가 아니라 곧 집에 도착한다는 사실이었다. - p. 6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윤세오는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불편한 옷을 입고 딱딱한 침대 눕는 것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울음 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죽음에 대해 얘기 하는 일은 묵묵히 눈을 맞추거나 요란한 수돗물 소리에 울음소리를 섞는 것이었다. - p. 12

윤세오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세계에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였다. - p. 63

무엇보다 사람이란 본래 그럴 리 없는 일도 하는 존재였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거짓말을 일삼고 농락하고 사기치고 협박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 p. 78

악의가 악이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상상하고 품는 것만으로 악이 되는 걸까. 실행될 때 비로소 악이 될까, 실행하더라도 실패하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악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행동을 바꾸고 거처를 옮기고 생활을 바꾸게 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다면 악의는 환상이나 몽상인 걸까. 환상이나 몽상은 종종 현실을 바꾸기도 하니까. - p. 96

악의는 윤세오에게 할 일을 주었다.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게 했다. 기운 차려 움직이게 했다. 밥을 먹게 했고 누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다니게 했다. 고시원에서의 단출한 생활을 군말없이 꾸리게 했다. 덥고 어두운 밤 창도 없는 고시원에서 소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저 누워만 있는 시간을 견디게 했다.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 시간을 참게 했다. 재만 남은 157번지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 p. 100

노인의 말대로라면 윤세오는 늙어서 가슴이 제일 먼저 망가질 게 뻔했다. 악의를 품고 증오를 키우고 슬픔과 동거하느라 한시도 쉬지 못했으니까. - p.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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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6-1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작가 글이 다 어둡고 겁나죠. 하지만 기대합니다!

hellas 2015-06-18 13:22   좋아요 0 | URL
기대할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