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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ㅣ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평점 :
이 책, 북스피어에서 나온 이 책.. 박람강기 프로젝트 3번.
진짜 재밌다. 장르 소설가의 뜻밖의 에세이를 소개한다가 모토인 이 프로젝트. 매우 추천한다.
뭐... 찰스 디킨스나 미야베 미유키에게 큰 관심이 없어 그렇지 -싫어한다는 뜻은 아님, 막 어쩔줄 모르게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
조금만 더 좋아했더라면 그것도 당장 샀을 정도로...
챈들러는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 법한 그 경로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40년대 활동한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가다.
그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다 구매해 책장에 꼿아두었지만,
날 잡고 쭉 읽어야 겠다는 애매한 기준을 세운 덕에 아직까지 읽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게 본격적인 소설은 뒤로 밀리고 어느날 우연히 집어든 이 서간집이 나를 빵 터지게 하고 만 것.
냉소적인 말투로 츤츤대는 것이 어찌나 재미진지, 어찌나 위트가 넘치는 지, 매력적인 인물 그 자체 아닌가 말이다.
헤밍웨이에 관한 그의 사견은 큭큭 웃음이... (심지어 살짝 동의해 주고 싶은 구석도 있고...) 나고야 말았고.
고양이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는 거의 이 남자를 사랑할 지경이었으며,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어찌나 섬세하고 심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측은 하기도...
마지막에 편집 후기 마저도 호감.:)
언젠가 당신이, 내 편지들에 출판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던 일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군요. 새삼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 기억이 틀렸다면 편지들을 다 없애야겠다 싶어서죠. 당신 친구 하나가 나를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자`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 제법 겸손한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가 옳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작가들이란 모두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입니다. 마음과 영혼을 소진하며 글을 쓰다 보면 결국 자기 안으로 파고들게 되니까. 최근에는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칭찬을 너무 많이 듣는 데다, 너무 외로운 삶을 살고 있고, 이제 다른 어떤 희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p. 12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력 따위를 원하는 걸까요? 그게 왜 중요해요? 그리고 왜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논해야만 합니까? 그저 지루할 뿐인 것을. 나는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에서, 너무 오래전이라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싶은 언젠가 태어났습니다. - p. 13
우리집 거실에는 전망 창이 있어서 만 너머 남쪽으로 포인트 로마와 샌디에이고의 서쪽 지역이 보이고, 밤이면 불빛이 길게 늘어선 해안선이 마치 무릎 위에 드리워지는 듯합니다. 우리 라디오 작가가 한번 나를 만나러 여기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 창 앞에 앉아서는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며 울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여기 살고, 아주 지긋지긋해요. -p. 55
나는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은가? 나는 노벨 문학상을 타고 싶은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야. 도대체 말이죠. 이류급 작가들한테 노벨상을 남발하니 나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스웨덴까지 가야 하고 차려입어야 하고 연설도 해야 하고. 노벨 문학상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요? 흥, 아니죠. -p. 61
애초에 작가한테, `독자는 신경쓰지마라. 그저 쓰고 싶은 것을 써라`라고 조언한 멍청이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작가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 하지 않아요. 어떤 효과를 재연하거나 표현하길 원하지요. -p. 65
필립 말로와 나는 상류층 사람들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그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그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입니다. -p. 169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p.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