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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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면이라도 계속 같은 장면같고, 다른 이야기를 해도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산문.

베를린 외곽의 호숫가와 숲속 정원을 가진 오두막에서 고요하고 치열하게 여러 계절을 보내는 순간들.

조금이나마 배수아 작가를 이해해 보려고 고른 산문이었다.
그러나 뭘 더 이해한 것 같진 않다.
그저 고요함에 동요되었다.

- 처음에는 순간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그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이 되었다. 글은 모든 순간에 있었다. - 8

- 하나의 문학작품이 또다른 작품을 연상시키는 방식은 개인의 독서 경험에 기반한 우연이다. - 21

- 한 권의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나는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잊기 때문이다. - 31

- 아무것도 심지 않고 아무것도 가꾸지 않았던 우리는 기적을 마주친 사람처럼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구인가, 이 숨겨진 정원에 낙원의 씨앗을 뿌려둔 이는. 그것은 저절로 탄생하고 저절로 사라지는 생명이었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연히 지나치던 행복한 나그네에 불과했다. - 40

- 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 숲에서 방향을 잃은 채 오직 낙엽을 헤치며 가는 중이다. 그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그러나 나는 내 공포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
내 글은 아무도 모르게 달아나는 중이다. ‘글자 그대로 읽히는 것’으로부터. - 49

- 그 순간 문득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운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 - 숲안쪽- 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 82

- 프로페셔널한 번역가라면 언어의 전이 그 자체에 집중할 줄 알고 그것을 이루어냄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나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프로페셔널한 번역가였던 적이 없다. 나는 오직 번역을 시도하는 독자였을 뿐이다. - 119

2023. may.

#작별들순간들 #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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