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맞는 말에 공감하며 읽는 재미.

웹툰의 개연성, 현실의 재구성에 대한 글에서는 얼마전에 읽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에서 언급된 부분이 연상되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오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 현실과의 긴장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런것들이 왜 간과될까 생각.

그리고 플스4... 가 남았다. 왜 플스 이런거라고 아무도 나한테 말 안했을까? ㅋㅋ

-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오히려 많은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페미니스트여야 하는가 아닌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되는가 아닌가, 이것은 페미니즘을 개인이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는 문제처럼 다룬다. 이건 가짜 논의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에, 성별 피부색 성적 지향 등 생득적인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여성이라 돈을 덜 받고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포기해야 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에 반대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확장된 규칙이 아니라, 인간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엄하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한 줌의 도덕이다. - 18

- 웹툰 특유의 핍진성은 묘사된 현실에 대한 반성적 전유를 거치지 않을 때 자칫 세상의 통념들을 재생산 하는데 그치게 된다. 현실에 일진이 있으니 일진이 나오고, 현실에 폭력이 있으니 폭력이 나오며, 현실에 여성혐오가 있으니 여성혐오가 나온다. 많은 경우 핍진성과 재현의 윤리 사이에 반목이 생기는 건 그래서다. - 94

- 시기상조라는 말은 언제나 실천적 반동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급작스럽지 않게 모두가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변화를 추구하자는 조심스러움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시기상조라는 말은 그 느린 변화의 첫 걸음조차 가로막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태반이란 점이다. - 161

- 법철학 저서인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위르겐 하버마스는 페미니즘 법이론을 다루며 “아무리 맥락에 민감한 법적 규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동시에 정치적 공론장에서 여성의 지위를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정치적 의사소통 형식에의 참여를 확대시키지 않는다면, 자율적인 사적 생활을 위한 평등한 권리는 적절히 구체화될 수 없다. 정치적 의사소통은 평등한 지위를 결정하는 유관 적합한 측면을 명료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166

- 이 모든 이야기는 품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 폭력의 공모인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어떤 차별적 뉘앙스를 문제의식 없이 웃고 소비했을지라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게 아니다. 사실 그 때도 틀렸다. - 258

2019. jun.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9-06-1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핍진성 이야기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hellas 2019-06-15 19:36   좋아요 1 | URL
맞아요 개연성만 따지고 사유가 없으면 그게 왜 문화고 예술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