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시장으로 깊은 인상이 남은 김성중 작가의 길지 않은 장편이다.어느 날 갑자기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시간, 무엇인가 명백하게 어긋난 시간’(11)이 인류에게 주어진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백년이라는 시간의 유예는 인간에게는 형벌일 뿐이다. 상상해보자면 아득하고 막연한 기분이 들게하는 설정이어서 끝맺임이 어떨지 매우 궁금해하며 읽었다. 상상력과 재현되는 이미지에는 만족했지만, 결말을 만족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를 이입하여 생각해봐도 커다란 구멍같은 결말이 보일 뿐이다. 다른 얘기...판타지나 미래 배경의 이야기에는 낙원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에는 언제나 ‘장악’이라는 핵심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습관에서 엇나가려는 지점과 그저 수용하려는 지점에 대한 원인과 결과일 것이다.이 이야기에도 필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등장하는데, 그 곳이 조금 더 궁금했다. -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종말이 온 거야.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던 나 혼자 내버려두고 온 세상이 사라져버린 것이지. 그가 말해주었다. 부도덕하고 폭력으로 가득찬 이 세계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집은 치우기보다 이사를 가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인간은 텅 빈 집에 창궐하는 개미나 바퀴벌레 같은 존재가 돼버렸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안타깝구나. - 14- 백년의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되기에 바빠 옆에서 진짜 신이 걸어다니는 걸을 알지 못했다. 무관심하고 무력한 신들이 도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이슬라처럼. - 15- 습관과 광기 중 어느 것이 백년의 인간을 차지하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 37- 수면과 수평을 이룰 수 있다면 나머지 세상도 어떻게든 잘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같은 것. - 562019. a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