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 신화 속에 감추어진 기이한 사랑의 이야기들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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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만난 것은 국민학교 - 지금이야 초등학교지만,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으니- 때였다.
그것도 지금 나오는 책처럼 날렵하고 장정도 예쁜 그런 책이 아니라 삼촌인가 이모인가가 보다가 두고 간 세로 글씨의 누리끼리한 책이었다.
우리 어릴 적엔 읽을 것들이 그리 풍족하지 않아서 어떤 아이는 과일을 싼 신문지마저 읽고 지낼 정도였으니,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고, 동네의 친구들 책도 거의 다 읽고, 부잣집 친구에게 빌려 온 책들로 시간을 보내던 내겐 그 책은 참말로 단비 같았다.
일단은 두꺼웠다. 그리고 책을 펼쳐보니 글씨가 아주 깨알 같았다.
"아, 이거면 한참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그 책에 자를 대면서 읽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거기서 처음으로 만난 신들은 흔히 알고 있던 신과는 너무 달랐다.
무슨 신들이 그리 싸우고 샘 내고 속이는지......
신은 위대하고 자애롭고 인간을 사랑한다던데,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달랐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완독하면서 공책에 메모를 하면서 읽었다.
가계도를 그리느라 공책에 여기저기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나, 끝내 그 가계도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어찌나 이름도 복잡하고 혼인관계도 지저분한지 - 그 때 생각에-  도저히 그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책은 지금도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꼭 권한다.
서양 문화를 이루는 양대 축이므로 성경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갖는 특징은 다시말할 필요 없이 유명하다. 신들의 인간적인 모습 - 사랑, 질투, 시기, 음모 등-과 권력 투쟁과 그럼에도 인간을 향한 신들의 끝없는 사랑은 서양 예술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열쇠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 최복현님은 이 책 <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사랑이라는 안경으로 골라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열아홉 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골라서 전한다.
무엇이든, 심지어 인간의 운명까지도 맘대로 할만큼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신들도 사랑 앞에선 한 없이 나약한 모습을 하고 만다.
올림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을 얻기 위하여 황소로 변해서 에우로페를 만나고 반인반수의 괴물로도 변신하여 안티오페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사랑때문에 하게 된 맹세로 사랑하는 여인 세멜레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트로이의 멸망을 부른 파리스와 헬레네의 비극, 20년간 남편을 기다린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사랑, 신들까지도 감동시킨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이별, 인간에게 고통을 선사한 판도라와 에피메테우스, 지상에 겨울을 가져온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등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이야기 뿐아니라, 거대한 신화의 갈피마다 숨겨져 있던 은밀한 사랑이야기들은 이 책에서 제 빛을 맘껏 발한다.

 

신들의 세계에서조차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많은 사건들을 보노라니,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얼마나 큰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화에의 반영은 결국은 인간의 관심의 크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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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
수잔 캔들 지음, 이문희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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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제인 마플"이라는 이름과 "애거서 크리스티, 그녀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진 이야기" 라는  책표지의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의 우상이었다.
지금도 그 붉은색 표지의 문고판형 추리 소설들이 기억이 난다. 한 권이라도 빠뜨릴세라 메모해가며 읽던 기억들이 내겐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애거서의 실종과 리즈의 죽음의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한 제목으로 보이는 <그리고 제인마플이 죽었다>는  애거서의 이름에 대한 기대로 이 소설을 들었다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초반의 어수선하고 느슨한 전개는 읽는이의 흥미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수 많은 설명없는 등장 인물, 또는 한 사람에 대한 지난친 설명들은 뒤로 가면서도 그 사람을 파악하지 못해서 앞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


이혼 경력이 있는 30대 후반의 주인공 쎄쎄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기를 쓴다.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애거서의 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결혼을 준비 중이고 딸 애니는 아기를 낳으려고 하며 전남편은 자신의 애인과 예비 장모를 데리고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회계사의 권유로 애거서의 후손이라는 이안 크리스티라는 사람이 짓는 테마빌리지 크리스티 타운에서 개장 축하 행사 때 창작 연극<살인사건의 티파티>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연극에 자신의 친구와 댄스교습소의 직원들과 정원사 등 자신과 연관있는 사람들을 출연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행사 당일 제인 마플 역을  맡은 댄스교습소의 리즈가 연극이 시작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알려진다. 독살이었다.

 

또 하나, 쎄쎄의 이야기와 교차되는 것은 남편에게 이혼 요구를 받은 애거서의 자발적 실종 과정이다.
남편에게 실망한 애거서는 차를 몰고 나선다.
그리고 벼랑 위에 차를 세워 두고 그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11일 후 교외의 한 휴양지 호텔에서 그녀는 발견되지만, 스스로 11일 간의 기억을 지워버린 듯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그 둘의 교차점은 내가 보기엔 두 여인의 실종 혹은 죽음이다.
애거서는 남편의 배신으로 인한 충격으로 스스로 실종된다.
리즈는 남편의 배신에 대한 경종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 루가 자신이 죽기 직전에 구해 줄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루는 시간을 놓쳤다.

 

작가는 이 둘을 이야기의 연결 고리로 선택했다.
그리고 연이은 두 살인 사건을 쎄쎄가 풀어간다.
그러나, 어딘지 그 풀이 과정은 미스 마플보다는 한없이 어색하고 아둔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두서없고 어수선한 인물들의 남발과 필연성 없는 사건 전개와 우연한 해결, 틈틈이 끼어드는 전 남편과의 에피소드나 새 애인과의 시간들은 시간에서 독자의 관심을 멀어지게 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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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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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들 그렇겠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자신이 전생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어떤 윤회의 고리를 통해서 현세에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사람들과 이번 생에서 처음 만난 것일까?
혹은 나는 왜 이런 사람들 틈에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인생이 진짜 딱 한번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이 삶을 갖기 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고, 다음 생에서도 다른 어떤 사람으로 나는 살아갈 것을 믿고 싶다.

 

이 책 <타임슬립>은 그런 나의 은밀한 소망을 확인시켜준다.

 

2001년 9월 12일에 프리터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오지마 겐타는 그의 취미 활동인 서핑을 하러 근처의 바다로 나간다.
사랑하는 미나미가 있는 그는 아직은 그녀를 책임질 능력도 없다. 그래서 몰래 대입 공부를 하지만, 쉽진 않다.
그리고 그는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1944년 9월 12일 가즈미가우라 해군 항공대 전투기 조종사인 이시바 고이치는 첫 단독 비행 훈련 중 사고를 만나서 바다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 때 어딘가 시간계의 균열이 생기고 그들은 뒤바뀐 것이다.

바로 자신의 전생과 후생으로......

 

노는 것 좋아하고 콜라를 좋아하고 가볍기만 한 겐타는 처음엔 자신이 떨어진 곳을 몰래카메라 세트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차츰 그는 시간 이동을 인정할 수 밖엔 없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패배한 전쟁에 참전 중인 군인이고 게다가 가미카제 특공대라지 않은가.
얻어 맞고 이리저리 채이는 과정에서 겐타는 어느 덧 조금씩 군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이없어하지만, 그 와중에 사랑하는 미나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한다.

 

한편 결핵으로 죽은 동생 요시코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행으로 늘 가슴이 아파지만, 충성스런 황국의 군인인 고이치는 자신이 떨어진 세계를 이해하느라 힘이 든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미나미는 점점 더 그에게 큰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길을 찾으면서 그는 자신이 참전한 전쟁이 패배로 끝난다는 믿지 못할 소식에 경악한다.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조국의 50년 후의 모습이 이렇게 타락한 세상이라는 것에 또 다시 절망한다.

 

그리고 운명은 또다시 그들이 만날 날을 정한다.
1945년 8월 15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던 겐타와 2002년 8월 15일이 되기를 기다리던 고이치는 오키나와의 한 작은 섬 앞바다에서 또 다시 교차한다.
날라리였던 겐타는 미나미의 할아버지 대신 죽음을 향해 달리는 어뢰를 타고, 미나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고이치는 서프보드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손에 들자마자 바로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50여년의 세월을 교차하면서 겐타와 고이치가 책임을 가진 어른으로, 그리고 사랑을 아는 행복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전쟁 중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목숨을 거는 인간의 광기를 이 소설은 보여준다.
집단적인 최면으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의 본질을 생각지 않은 채 달려가는 무모한 청춘들의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나라의 지금의 모습이 과연 그들이 바라던 빛나는 조국인지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다가 그 전쟁의 대상이 우리였음을 감안할 때,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학은 실로 보편적이어서 작가가 제기한 문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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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한 일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2
호시 신이치 지음 / 지식여행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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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남자가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우연히 UFO를 목격한다.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확실한 원반 모양의 그 비행 물체에서 몸에 딱 달라붙는 은색 유니폼을 입고 푸른 빛 얼굴을 한  외계 생물체가 나타난다.
그 남자와 우주인은 아무런 불편없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그 우주인은 자신이 어느 별 생물인지, 그 별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 별 사람들이 먹는 움식이나 좋아하는 놀이 조차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자신이 인간들의 상상력의 소산물이라고 한다. 인간들은 우주 비행물체의 겉모습을 상상할 뿐 그 안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아서 안의 모습은 말해줄 수가 없단다.

" 사념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하겠군요. 많은 인류가 UFO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본 사람도 있고, 봤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통점은 늘어갑니다. 다른 모양을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한다는 의론의 대립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부정론은 펼치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렇게 되면 출현하지 않을 수 없지요. 강력한 수요가 있으면 결국 그것은 채워집니다. 이것이 인류가 지닌 습성입니다. 능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 본문 19쪽


세상은 모두 인간이 지닌 사념의 산물이라고 한다. 피라미드에서 텔레비전까지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우주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UFO에게 부여된 역할은 인구 폭발의 억제이고, 그래서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고 평균이하의 하위 그룹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은 인간의 사념의 산물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실체라고 믿고 알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력일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가끔은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실제일까? 이것만이 진짜 세상일까? 하는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 땐 단지 내가 가진 것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과연 실체라는 것이 있을까?
하나의 인간은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 우리는 과연 스스로 온전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친구로 엄마로 존재하는 내가 아닌, 하나의 완벽한 존재라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2권인 이 책 <의뢰한 일>은 쇼트쇼트 시리즈라는 명성답게 짧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220여 쪽에 들어간 30편으 이야기는 전에 읽었던 <도둑회사>와는 다르게 미래사회나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당시의 현실이 배경이 되는 것이 많았다. 
30편의 이야기 모두 독특하고 신기했으나, 나는 위에 언급한 <밤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컴퓨터는 누구의 상상력인가?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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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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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힘들고 굴곡이 잇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보기엔 말쩡할 지 몰라도 세상에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들 부러워하는 직업에 화목한 가정을 가진 듯 보여도 그들은 그 나름대로 고통이 ㅣㅅ다는 것을 알 나이다.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엔 내겐 그다지 힘든 일은 없었다.
스스로를 "Lucky girl"이러고 부를 만큼 원하는 일은 다 이루어지곤 했다.
시험을 보면 합격은 당연한 것이었고 무언가를 갖고 싶을 땐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만만하게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내게 아이의 병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것도 작은 병이 아니었기에 더욱 힘들었다.
다니던 직장을 쉬면서 아이를 돌보았고 그리고 드디어 수술을 시켰다.
11개월의 어린 아이.
유난히 작고 힘이 없어서 키우는 데는 어렵진 않았지만 주위를 안타깝게 하던 그 아이가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던 장면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
 
머리카락으로부터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쓴 붕대로 만든 모자가  너무 잘 어울리던 내 아기.마취과 의사가 번쩍 안아들고 들어가던 그 얼굴. 우리를 향해서 흔들던 작은 손을 말이다.
그리고 여러 시간이 흐른 후 의사가 나왔다.
"수술이 잘 되었습니다."
아, 하느님. 그 의사가 그 순간 하느님으로 보였다.
정말로 정말로 너무나 존경스럽고 감사했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는 지금은 내 몸에 병이 생겨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약을 먹는다.
긴 시간에 걸친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마나면 단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엔 잊어버리고 당황하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 못해서 이젠 수첩에 적어가지고 들어간다.
그리고 의사의 한 마디에 절망하기도 하고 희망을 갖기도 한다.
 
의사는 내겐 하느님이었다.
 
그런데 이 책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은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한다.
가뜩이나 잊혀질만하면 터지는 의료사고들 때문에 의학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시점이라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평생 병원엘 드나들지 않아도 될 만하면 모를까 지금 우리 곁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맡기고 있는가.
비록 바다 건너 독일의 책이지만 비단 독일 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수 많은 의사들은 이 책을 읽고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이 책에 나오는 의사들의 매너리즘,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무례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사자들이 그 위험을 감지하지 않으려한다면 공염불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무조건 의학을 신봉하고 의사를 신적인 존재로 믿고 있는우리에게도 자성의 기회를 준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들도 사람인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처음 묻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들에겐 늘 듣는 질문일 것이고 하루 종일 어쩌면 평생을 우울한 환자와 불안해하는 보호자들 틈에서 그들도 행복하지만은 않으리라.
의사들 사이엔 그들의 일이 중노동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실제 그들은 인술이 아닌 기술을 펼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인술을 펼치기엔 환자가 너무 많은 탓이다.
그러나 밀려드는 환자로 인한 괴로움은 오히려 행복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환자가 없어서 문을 닫는 병원도 있으니 밀이다.
의료계에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가보다.
 
이 책에 그런 말이 있다. "환자만 없었다면 의학은 훌륭한 학문이었을지도 몰라."
교사들끼리의 농담으로 "학생들이 없다면 이나라 교육은 더욱 발전했을지도 몰라."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안다. 환자가 없는 병원이란 학생이 없는 학교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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