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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한 일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2
호시 신이치 지음 / 지식여행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한 남자가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우연히 UFO를 목격한다.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확실한 원반 모양의 그 비행 물체에서 몸에 딱 달라붙는 은색 유니폼을 입고 푸른 빛 얼굴을 한 외계 생물체가 나타난다.
그 남자와 우주인은 아무런 불편없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그 우주인은 자신이 어느 별 생물인지, 그 별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 별 사람들이 먹는 움식이나 좋아하는 놀이 조차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자신이 인간들의 상상력의 소산물이라고 한다. 인간들은 우주 비행물체의 겉모습을 상상할 뿐 그 안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아서 안의 모습은 말해줄 수가 없단다.
" 사념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하겠군요. 많은 인류가 UFO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본 사람도 있고, 봤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통점은 늘어갑니다. 다른 모양을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한다는 의론의 대립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부정론은 펼치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렇게 되면 출현하지 않을 수 없지요. 강력한 수요가 있으면 결국 그것은 채워집니다. 이것이 인류가 지닌 습성입니다. 능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 본문 19쪽
세상은 모두 인간이 지닌 사념의 산물이라고 한다. 피라미드에서 텔레비전까지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우주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UFO에게 부여된 역할은 인구 폭발의 억제이고, 그래서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고 평균이하의 하위 그룹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은 인간의 사념의 산물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실체라고 믿고 알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력일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가끔은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실제일까? 이것만이 진짜 세상일까? 하는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 땐 단지 내가 가진 것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과연 실체라는 것이 있을까?
하나의 인간은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 우리는 과연 스스로 온전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친구로 엄마로 존재하는 내가 아닌, 하나의 완벽한 존재라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2권인 이 책 <의뢰한 일>은 쇼트쇼트 시리즈라는 명성답게 짧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220여 쪽에 들어간 30편으 이야기는 전에 읽었던 <도둑회사>와는 다르게 미래사회나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당시의 현실이 배경이 되는 것이 많았다.
30편의 이야기 모두 독특하고 신기했으나, 나는 위에 언급한 <밤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컴퓨터는 누구의 상상력인가?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