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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다들 그렇겠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자신이 전생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어떤 윤회의 고리를 통해서 현세에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사람들과 이번 생에서 처음 만난 것일까?
혹은 나는 왜 이런 사람들 틈에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인생이 진짜 딱 한번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이 삶을 갖기 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고, 다음 생에서도 다른 어떤 사람으로 나는 살아갈 것을 믿고 싶다.
이 책 <타임슬립>은 그런 나의 은밀한 소망을 확인시켜준다.
2001년 9월 12일에 프리터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오지마 겐타는 그의 취미 활동인 서핑을 하러 근처의 바다로 나간다.
사랑하는 미나미가 있는 그는 아직은 그녀를 책임질 능력도 없다. 그래서 몰래 대입 공부를 하지만, 쉽진 않다.
그리고 그는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1944년 9월 12일 가즈미가우라 해군 항공대 전투기 조종사인 이시바 고이치는 첫 단독 비행 훈련 중 사고를 만나서 바다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 때 어딘가 시간계의 균열이 생기고 그들은 뒤바뀐 것이다.
바로 자신의 전생과 후생으로......
노는 것 좋아하고 콜라를 좋아하고 가볍기만 한 겐타는 처음엔 자신이 떨어진 곳을 몰래카메라 세트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차츰 그는 시간 이동을 인정할 수 밖엔 없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패배한 전쟁에 참전 중인 군인이고 게다가 가미카제 특공대라지 않은가.
얻어 맞고 이리저리 채이는 과정에서 겐타는 어느 덧 조금씩 군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이없어하지만, 그 와중에 사랑하는 미나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한다.
한편 결핵으로 죽은 동생 요시코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행으로 늘 가슴이 아파지만, 충성스런 황국의 군인인 고이치는 자신이 떨어진 세계를 이해하느라 힘이 든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미나미는 점점 더 그에게 큰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길을 찾으면서 그는 자신이 참전한 전쟁이 패배로 끝난다는 믿지 못할 소식에 경악한다.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조국의 50년 후의 모습이 이렇게 타락한 세상이라는 것에 또 다시 절망한다.
그리고 운명은 또다시 그들이 만날 날을 정한다.
1945년 8월 15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던 겐타와 2002년 8월 15일이 되기를 기다리던 고이치는 오키나와의 한 작은 섬 앞바다에서 또 다시 교차한다.
날라리였던 겐타는 미나미의 할아버지 대신 죽음을 향해 달리는 어뢰를 타고, 미나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고이치는 서프보드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손에 들자마자 바로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50여년의 세월을 교차하면서 겐타와 고이치가 책임을 가진 어른으로, 그리고 사랑을 아는 행복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전쟁 중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목숨을 거는 인간의 광기를 이 소설은 보여준다.
집단적인 최면으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의 본질을 생각지 않은 채 달려가는 무모한 청춘들의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나라의 지금의 모습이 과연 그들이 바라던 빛나는 조국인지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다가 그 전쟁의 대상이 우리였음을 감안할 때,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학은 실로 보편적이어서 작가가 제기한 문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