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 21세기의 정치 키워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유튜브 역시 포퓰리즘의 강화에 한몫을 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정치는 포퓰리즘이 상수이다. 인류사에서 최초로 포퓰리즘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 세력은 파시스트들이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파시즘의 과거는 절대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일사분란한 정치적 행동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드러낸 극단적 폭력성은 많은 이들에게 독재에 대한 환멸을 확고하게 자리 잡게 했다. 포퓰리즘과 파시즘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는 독재자의 인정 여부이다. 포퓰리즘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긴 하지만, 그 지도자가 독재를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강력한 지도자가 입안의 혀처럼 굴기 바란다. 자신들의 지지를 받고 집권한 지도자가 독재를 할 경우에는 탄핵시켜버린다. 

종종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혼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가 확고한 정치적 대의를 갖는다고 한다면 포퓰리즘은 대의를 갖지 않는다. 물론 포퓰리즘도 절대다수의 대중을 위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대중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전제로 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 추상적 대상은 기득권 엘리트라는 대상을 설정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포퓰리즘의 대중은 그러므로 기득권 엘리트와 짝패를 이루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포퓰리즘은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그 지평 위에서 형성되는 원한 감정(resentment)의 산물이다. 물론 20세기 이후 민주주의는 일정하게 포퓰리즘과 함께 뒤섞여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바로 이런 모습을 띠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매체를 통해 형성되어 있는 성과가 없다면 유튜브 역시 이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성제도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이 있기에 시청자들은 유튜브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유튜브가 기존의 매체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다만 기존의 매체를 통해 만들어졌던 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지식과 정보생산, 그리고 소비의 헤게모니가 유튜브로 옮겨올 것은 확실하다. 유튜브와 유사한 플랫폼이 넷플릭스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영화라는 일정한 장르에 부합하는 영상물을 제공한다. 유튜브는 이를 넘어 자기의 영화를 업로드해서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다. 유튜브가 대세가 되는 시대에 영화의 완성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보려고 관객들은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영화관에 간다. 구매체와 신매체는 공존하겠지만, 주도권을 쥐는 매체는 신매체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우리는 변화의 와중에 있다. 앞선 매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유튜브에 이르러 결정적 변화가 생겼다. 이 결정적 변화는 완전한 1인 미디어의 구현이다. 누구든 진짜 같은 영상물을 만들어 보급할 수 있다. 방송국 시청률보다 더 정확하게 ‘구독자 수’가 공개되는 투명한 세계가 유튜브이다. 방송인의 인기도가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완벽한 감시의 시스템이다. 이 디스토피아의 세계야말로 기술이 만들어놓은 다크 유토피아의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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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루 A cousin of human being 에서 퍼온 박철의 시인데, 나에겐 시 보다 블로그 주인의 평이 흥미로웠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이 시의 타자는 뭘까. 이 시와 긴장하고 있는 질서는?  쑥국새, 나무 같은 자연 따위도 영진설비나, 럭키슈퍼 같은 자연과 다를 게 없다. 나무니 숲이, 시의 타자로 중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시적인 주체 같은 건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아니, 그런 자리 따위가 그곳에는 없다. 시적 긴장이 과연 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정치 지형도처럼 철저하게 사회적 산물이며, 근대적 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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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사회 비판적이라고해서 좋은 사람,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또한편 친절, 배려, 신뢰,사랑과 같은 구체적 삶의 태도가 진정한 진보를 식별하는 지표가 된다고 믿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진정한 진보라는 표현도 싫고, 무엇보다 이놈의 '진보'라는 표현 자체가 품고 있는 고약한 지점, 정치적 상상력보다 윤리가 앞선다는 암묵적 전제 자체가 싫다. 먼저 사람이 돼야지 같은 개똥철학에서 진보/보수의 수사법은 과연 얼마나 멀리 있을까?

 

이 진보/보수라는 윤리적 표현, 백번 양보해도 '정치공학'적 표현을 정치적 가치 판단이라고 호도하는 모든 표현, 행동, 권유가 나는 몹시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성격이 개차반이라도 노동의 가치, 노동자라는 주체를 복원하거나 방어하는데 힘쓰는 사람은 좌파고, 안 친절, 안 배려 안 사랑해도 여성의 주체화에 기여하고 있다면 여성주의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보/보수의 구분법은 정치적으로 졸라 무기력한데, 정치공학적 게임으로 이를 벌충하는 정치적 지진아들에게 제공되는 환타지에 가깝다. (물론 그 환타지 게임은 다양한 대의 정치의 이해관계를 위해 기획되었지만, 결정적으로 어떤 정치 주체도 생산하지 못한다) 그 비슷한 버전으로 휴머니즘 등등 여러가지 자매품들이 있고.

 

정치는 상식, 도덕 같은 윤리에 개입해 그것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메트릭스라는 사실을 추궁하는 데 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면 여성주의도, 맑시즘도 사회적 관성, 상식, 도덕, 심지어 공동체의 윤리에 개입할 때 비로소 정치이고, 정치적 발화다. 그런데 진보/보수라는 수사는 이 같은 정치적 상상력, 의지를 너무자주 훼손한다.(...) " 

                                                                                          - 이글루  A cousin of human being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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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기타
김종구 지음 / 필라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학생시절 브라스밴드를 한 후로 30년가까이 트럼펫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시작한게 10년쯤. 지금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지만 지난 10년, 숙제 같이 늘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게 있다. 어떻게해야 연주를 잘 할 수 있지?

한겨레신문 편집인이자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김종구의 음악 에세이 <오후의 기타>(필라북스, 2019년)가 최근 출간되었다. 아마추어 연주자이니 필경 나와 비슷한 애환이 있지않을까? 더구나 책을 펴낼정도면 연주 실력이 상당한 수준일터여서 귀동량할 요량으로 조촌동 영풍문고로 달려갔다.
 
에세이 풍으로 쉽게 쓴 책이라 술술 재미있게 읽히고 어떤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악기를 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대체로 비슷하다. '어떻게해야 연주를 잘 할 수 있지?'

요즘 중년 남자들 사이에 색소폰 열풍이 일고있다. 나의 학창시절은 기타가 유행이어서 한번쯤 기타를 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정도였다. 당시는 쇠줄로 된 통기타로 건전가요니 싱얼롱 등을 주로 했고, 다른 쪽에서는 <장고><파이프 라인><상하이 트위스트> 등을 즐겨 배우고 연주했던 기억이 난다. <오후의 기타>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화<금지된 장난>의 주제가인 <로망스>는 세월이 가도 변치않는 명 연주곡이다.  

<오후의 기타> 덕분에 오랫만에 나르시소 예페스의 기타 연주 <알함브르의 회상>과 <아랑훼즈 협주곡>을 감상했다. 기타의 원조는 스페인이다. 작곡가 요아킨 로드리고, 유명 연주자인 안드레아 세고비아, 나르시소 예폐스 등 대부분 스페인 태생인데, 마침 원양어선 생활을 대서양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에서 한 탓에 기타 곡은 나에게 친근한 편이다.

책의 중간쯤에서 저자는 <카바티나>라는 곡을 거듭 언급한다. 기타 명곡인듯한데 곡명이 생소하다. 나 같은 기타 문외한은 대개 <로망스>나 <알함브르의 회상>정도는 안면이 있지만 <카바티나>는 좀 낯설다. 어떤 곡이지? 호기심이 일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니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의 연주가 있다.

연주를 듣고 알았는데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주제가다. 멜로디 첫 부분이 흘러나오자, 가만, 어데서 많이 듣던 곡이다. 그러니까 제목만 몰랐을뿐  멜로디는 이미 낯익다. 곡을 듣고 있자니 묘하게도 콧날이 찡하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2악장을 배경음악으로 쓴 <윈터 슬립>도 그렇더니......아마 두 곡 모두 잔잔한 분위기이며, 애상어린 선율 때문인것 같다. 

최근 내가 진행하는 독서회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더구나 회원들이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이라 토론작으로 <오후의 기타>는 더없이 안성맞춤일것 같으니 말이다.  저자가 언급한 기타 명곡도 함께 감상하고 책 토론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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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사람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오랜시절 밴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C형, 지금도 악단 활동을 하는 G씨. 나이가 엇비슷한 우리 셋은 주말이면 으레 회동이다. 오늘도 만났다. 대개는 C형이 불러모으는 편인데, 먼저 단골 순대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슬슬 사정동 악단 연습실이나 C형 집으로 간다. 그러곤 한산 소곡주 한 병 까놓고, 반주기에 맞춰 트럼펫 연주를 한다. 고향무정, 돌아와요 부산항에, 광화문 연가....끝없이 이어지는 가요 메들리. 셋 모두 악기를 하니 공통 화제는 시종일관 음악이다.

조만간 캄보밴드 하나 만들어 쿵쿨대회 열어보자고 했다. 봉동이 고향인 C형의 꿈이 하나 있으니 언젠가 시골 고향에서 쿵쿨대회를 열어보는 거란다. 까짓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들어 줄까. 그렇게 음악을 안주로 권커니 잣커니 하다보면 주말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G씨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인생 별것 없슈~".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제아무리 후벼파고, 요리조리 뒤집어본들 인생 별것 없다. 희로애락! 꺽어진 60중반 나이에 뭘 어쩌겠는가. 좋던 궂던 애달플것 없으니 술렁술렁 잘도 넘어간다. 

햇빛 따스한 주말 하오. 낮술 몇 잔에 불콰하니 흥남동 사거리 지나 신호등 앞. 룰루랄라~ 휘파람 낮게불며 골목길 돌아 이윽고 집에 도착한다. 한나절 사무실 지키던 아내왈. "종일 친구하고 놀다오니 좋기도 하것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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