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루 A cousin of human being 에서 퍼온 박철의 시인데, 나에겐 시 보다 블로그 주인의 평이 흥미로웠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이 시의 타자는 뭘까. 이 시와 긴장하고 있는 질서는?  쑥국새, 나무 같은 자연 따위도 영진설비나, 럭키슈퍼 같은 자연과 다를 게 없다. 나무니 숲이, 시의 타자로 중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시적인 주체 같은 건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아니, 그런 자리 따위가 그곳에는 없다. 시적 긴장이 과연 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정치 지형도처럼 철저하게 사회적 산물이며, 근대적 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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