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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청소, 이곳 저곳 수리하랴 고시텔관리, 식사 준비에다 차량운행, 거기다 짬짬이 손주 돌보기까지.....다람쥐 챗바퀴돌듯 되풀이 되는 일상을 벗어나려면 역시 집을 떠나야한다. 요즘 서산 처가에 자주간다. 오늘도 간다. 여하튼 집을 벗어나면 복잡한 업무를 잊을 수 있다. 단 하루지만 챙겨야할 것들. 연습용 포켓트럼펫, 노트북, 존 치버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등등. 나열하고보니 한 달쯤 여행떠나는 것 같다. 설사 무인도에 갈지라도 트럼펫과 노트북, 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들만 있다면 무료하지 않을테니.....혹 천국이 있다면 음악과 글쓰기, 뭔가 읽을꺼리는 있지 않을까? 아! 커피도.....하지만 이것들이 없다면 그곳이 설사 낙원이라해도 단연 거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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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천국을 그리워해야할까.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나. 그렇다면 이곳을 당장 천국으로 바꾸는 수밖에. 사실 내가 원하는 천국은 다른게 아니다. 트럼펫 연주, 음악, 책읽기, 글쓰기, 영화감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또 언제든 커피를 마실수 있는 곳.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시간이 널널해야하는데 도무지 현실은 그렇지 않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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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열정이 식은 탓일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영화에서 멀어졌다. 트럼펫 연습하려고 옥상 컨테이너 서재에 갈때마다 서가에 쌓인 디브이디를 보면 조바심이 났다. 최근들어 다시 영화를 가까이 한건 아들 지훈이가 생일 선물로 사준 노트북이 계기였다. 다음은 감상할 목록들. 허우 샤오시엔 <비정성시>, 홍상수의 영화들, 테오 앙겔로풀로스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 피에로 파올로 파졸리니 <살로 소돔 120일>,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르소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거미의 계략>등.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짧게나마 감상기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쪼록 이번 기회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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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세계문학을 읽으면서도 정작 우리문학, 특히 이광수 이후 60년대 이전까지의 소설작품들은 대부분 외면했다. 작품 제목과 작가 이름이 워낙 낯익다 보니 읽지 않았는데도 마치 읽은양 착각된것도 한 이유다. 최근 다시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은건 '문학과지성사' 판 한국문학전집 때문이다.
내가 가진 한국문학전집은 80년대 동아출판사에서 출간된 100권짜리 한국문학대계였다. 아마 이 판본이 가장 정본에 가깝지않나 생각되는데,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신뢰할만한 새로운 전집을 출간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에 첫 권으로 염상섭의 <삼대>가 출간된 이후 현재 48권까지 나왔다. 이 전집의 특징은 지금까지 나온 판본 중 가장 정평있는 텍스트를 저본으로해서 새롭게 편집한 점이다. 당연히 편집자들은 작품마다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는데 작품 말미의 편집자 작품해설이라든가, 작가 연보를 실려있고, 그동안의 연구성과 중 주요한 작품론, 작가론 등이 수록된 점이다. 일단 채만식의 <탁류>와 염상섭의 <삼대> 이광수의 <유정>을 동시에 읽고있다. 기왕 시작한거 가능하면 이미 출간된 전체 48권을 모두 통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