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거미의 계략>의 원작소설은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이다. 원작자 루이스 보르헤스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플롯을 차용하여 그의 소설의 한 특징인 '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를 펼쳐낸다. 즉 예수의 죽음은 소설에서 영웅이자 배신자인 아토스 마냐니의 죽음과 동일하며 동시에 아토스 마냐니의 아들은 부활한 예수와 동일하다.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즘 체제에 저항하는 영웅 아토스. 그는 무솔리니를 암살하려고 계획했지만 결국 미수에 그치고 처형당한다. 동시에 아토스는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영화는 그의 죽은 아토스의 아들이 시의 초청으로 방문연설을 하게되고, 아버지 생전 연인이던 집시 여인의 권유로 미스터리에 쌓인 아버지의 죽음을 풀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에서 영웅 아토스 마냐니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동일하다. 그리고 원작자인 보르헤스는 한 인간 속엔 모든 사람의 것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어떤 위대한 인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에겐 동시에 배신자적인 면모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아토스 마냐니는 애초에 파시스트 두목을 살해하려고 계획했지만 계획이 무산되자 스스로 밀고자가 되어 처형당하기로 한다. 단지 일개 암살자 노릇에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당함으로써 영원한 영웅이 되고자 한것이다. 

그러니까 아토스 마냐니 한 개인에게는 영웅과 배신자라는 두 가지 전혀 상반적인 위상이 존재하는거다. 아이러니치고는 참 지독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인간들처럼 한 인간은 결코 단일한게 아니다. 다중적인, 또 전혀 상반적인 성향을 동시에 함께 갖고 있으니 말이다.

보르헤스를 따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다시 따져보자. 예수는 분명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위대한 희생자이고, 이로부터 기독교는 탄생되었으며 그는 영원히 인류를 구원한 영웅, 아니 신의 아들이자 신 자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보르헤스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 죽음을 스스로 기획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제국 치하의 유태민족 구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류 구원이라는 미망하에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택한다. 그래서 동료이자 제자인 유다에게 자신을 밀고하라고 부탁한, 그 자신의 기획에 의한 사건이었다. 즉 예수는 결코 유태민족의 영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엄청난 명예욕(내지는 인류사랑)에 사로잡힌 자였다. 한편 '예수의 거대한 명예욕(내지는 인류 사랑)'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영화가 있는데,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영화화 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예수 최후의 유혹>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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