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 밴드부 활동을 한 이후 30여년간의 공백을 딛고 다시 트럼펫을 시작한지 13년여. 연주활동을 재개하는 동안 초창기 1년, 잠시 쉬었다가 2년쯤 개인레슨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렇게 트럼펫 연주 활동은 계속됐고, 와중에 4년쯤 트럼펫 앙상블에서 시향 샘으로부터 앙상블 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빅밴드 3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10년째를 하면서 드문드문이나마 개인레슨과 앙상블 지도를 받은거다.    

여기까지가 일단 내 트럼펫 연주경력이다. 물론 이런 경력만으로 실력을 가늠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니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 않은데 문제는 단원으로서의 실력이다.

행여 노년축에 드는 내가 실력이 떨어져 단원들에게 누가 되는건 아닐까. 이런 실력으로 계속 버틸수 있을까 등등 걱정이 된다.

어제 관파트 특별연습이 있었다. 연습도중 지휘자님이 개인레슨을 권유했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권유를 한적 있는데 벌써 두 번째이니 그냥 건성으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흘려버릴수도 없고 내심 고민이 되었다.

프로든 아마든 연주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줄기찬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아마추어는 개인연습뿐 아니라 레슨이 동시에 요구된다. 대체 아마추어의 연주 기량은 어디까지가 적당할까. 

탁월하게 잘한다면야 아무 걱정 없겠지만 실력이 어중간한 나로서는 대체 어느 정도 해야 문제없는지, 단원 생활을 하는동안 줄곧 부딪치는 고민꺼리다.  

또 하나, 노년기에 접어든 나로서는 현실적으로 트럼펫 하나에만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없다. 따라서 우선 당장 경제적 여건도 여건이려니와 시간과 열정을 어떻게 분배해야할지 따져봐야 한다. 젊은시절이면 몰라도 열정과 시간이 무한정 쏟아지는게 아니니 말이다. 

물론 "아마추어의 특권은 즐김에 있다. 따라서 현재상태로 즐길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다." 라는 내 나름의 결론과 답은 이미 있다. 하지만 나 혼자 즐긴다고 될일이 아니다. 가령 반주기 틀어놓고 골방에서 혼자 연주하는것도 아니고, 40여명 규모의 단체활동인 오케스트라인데 독립군마냥 혼자서 달린다고 될게 아니라는거다. 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반나절 궁리 끝에 다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냥 개인 연습으로 가자. 대신 하루 2시간 꼬박 연습을 하자. 그리고 과거 레슨 받을때 지적받은 부분을 꼼꼼히 떠올리며 마구잡이 연습이 아니라 생각하는 연습을 하자. 독서, 영화, 글쓰기 등 해야할게 많은 나로서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음악 하나에만 올인할 수 없다. 개인지도를 받으면 연주기량은 분명 훨씬 좋아질게고 나름의 기쁨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기량의 향상이란 끝도 없는 고난의 행군과도 같은 것이니 이정도로 만족하자.

 

여기까지 써놓고 내가 쓴글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문장 하나. "노인의 지혜란 이미 나이들어 힘빠지고 뜨겁던 열정이 모두 소진된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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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   -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란 여인숙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초라함
몇 가지 순간적인 깨달음들이
뜻밖의 손님으로 찾아온다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하라
그들이 한 무리의 슬픔이라서
그대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
가구들을 다 없애더라도
여전히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여 대접하라
아마도 그는 새로운 상쾌함을 위해
그대를 청소해주는 것일테니


 

 

 

 

 

 

 

 

- 자신에게 모멸감이 들면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하고 질문 해보는 자세가 필요해요. 사실 모든 모멸감이 다 정당한 게 아니거든요. 종종 지체 높은 사람들 중에서 별것 아닌 것에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엉뚱한 데에 자존심을 걸었다가 그게 충족이 안 되면 스스로가 화나는 거지요.

- 그렇담 모멸감의 근원을 먼저 파악해야겠네요?

- 점검해봐야죠. 나의 부풀려진 자아나 허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많은 경우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어요. 딱 잘라 애기할 수도 없을뿐더러 사람마다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다를테니까요.

- 그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자기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져야  해요. 흔들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흔들리는 것을 문제 삼아요. 어차피 사람은 많은 순간 좌충우돌하고 때때로 모순적인 존재가 되잖아요. 그런 사실을 온전하게 끌어안아야 해요.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는 다릅니다. 나를 성찰하는거니까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너무 안 돼 있어요. 자기 스스로는 알잖아요. 우리가 남루하고 허름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예요. 그런데 그걸 서로 감추기 위해 가면무도회를 합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수는 없어요.

어빙 고프만이라는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해요. "모든 건 다 연출이다. 그런데 연출을 정해진 하나의 방식으로만 하니까 감정이 이상하게 표출된다." 

다양하게 자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해요. 어린아이 같은 자기,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자기도 섞여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걸 받아들이는 데가 많지 않으니, 우리는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계속 애쓰잖아요. 나의 허술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더 과시하고 위세를 부리죠. - 2019. 2. 16. 한겨레인터뷰/ 김찬호(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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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연주자의 실력은 연습량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맹렬한 연습도 기본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쓸데없이 땀만 낭비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기본기를 갖췄더래도 연습이 꾸준하지 않으면 별소용이 없다는게 나의 판단이다. 뭐니뭐니해도 연습량이 가장 중요하다는것.

올해 정기연주회은 난이도가 높은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결정되었다. 과거 1번과 5번을 연주한적이 있는데, 다른 때와 달리 걱정이 앞섰다. 지금까지 내가 해본 연주곡 중에서 아마 가장 어려운 곡일듯싶어서다. 비록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지만 정기연주회를 8회째 치룬 경험이 있고,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해보기도 했으니 이번에도 무난할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연주라는게 하면 할수록 어렵다더니 정말 그렇다.   

지난 두 달 나름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내 실력으로 감당하기에 벅찬 고음이며 끝도 없이 요구되는 엄청난 주력이 문제였다. 고심 끝에 레슨을 받아볼까 했지만 불경기에 레슨비도 문제려니와 설사 레슨을 받는다해도 실력이 단기간에 향상되지 않는다. 결국 연습만이 살길이다싶어 하루종일 틈만 나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금년 12월경 단원들만 무대에 서는 '협주곡의 밤'을 연다고 한다. 지난 연습때 희망자는 미리 준비하라는 지휘자님의 언질이 있었다. 물론 하고싶다해서 모두 무대에 설 수 없을테고, 수준급의 소수 단원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솔직히 현재 실력으로는 자신이 없지만 도전하는 맘으로 남은 10개월여를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내는 무대에 서는 어려움을 잘 알기에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말리지만 열심히 준비하면 뭔가 길이 있겠지. 만약 실력이 부족해서 무대에 설 수 없다해도 이런 기회를 통해 실력이 조금이라도 향상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오늘도 종일 트럼펫 연습을 하였다. 한동안 교향곡 7번만 연습하다 3주전부터 아르방 2권의 솔로곡과 듀엣곡을 함께 연습했는데, 어제부터 훔멜의 <트럼펫 협주곡 E♭장조> 제 1악장을 병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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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김진영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 중 46쪽 36번
 
절절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죽음을 앞둔 이 환자는 건강하던 평소 모습을 절박하게 소망한다. "내게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같은 상황이라면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어떤게 최선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것. 즐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읽고 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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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고한 철학자 김진영의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 2018년)에 실린 글 가운데서 89쪽에 실린 72번 글을 패러디한다. 원문은 환자로서의 삶과 정상적인 일상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내용인데, 아래 글은 원문 중 '환자의 삶'을 '딜레탕트'의 삶으로 바꿨다.

평생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딜레탕트로서의 내 삶은 특별한 사랑의 삶을 닮았다.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정상적인 러브 게임의 삶- 그의 삶은 일상의 삶과 딜레탕트의 삶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그는 두 삶 모두에게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불가능한 성실성은 오로지 두 삶의 정연한 분리를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 일상의 삶을 살 때 딜레탕트의 삶은 단호히 망각되어야 한다. 딜레탕트의 삶과 마주할 때 일상의 삶은 또한 단호하게 차단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두 삶 모두와 성실하고 책임 있는 부부 생활을 할 수 있다. 두 삶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 없이 늘 조용하고 무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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