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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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언가를 배우는 데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것만 한 게 없다. 물론 굳이 그렇게 경험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들고 마음도 다치기 쉽다는 함정이 있지만,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겪음으로써 내면에 축적되는 인생의 노하우가 분명하게 자리할 것이다.

 

뉴욕으로 입성한 티아.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면서 자기만의 푸드 칼럼을 쓰고 싶었다. 한때는 지역 신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간절히 바라는 건 헬렌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헬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헬렌에게 그녀가 만든 음식을 맛보여주고, 대학원 실습수업을 헬렌의 밑에서 해낼 기회가. 하지만 인생 어디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기만 하랴. 우연히 푸드 칼럼니스트 마이클을 알게 된 티아의 인생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노선을 튼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된 티아는 미각을 잃은 마이클의 숨은 장금이가 된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미각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며, 섬세한 감각으로 음식의 맛을 표현한다. 그렇게 마이클과 같이 다니면서 유명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고, 그녀만의 감정으로 별점을 준다. 명품을 몸에 휘감고,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에 서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마이클의 칼럼 대필 작가 같은 역할을 하면서...

 

특별 손님(Personne Extraordinaire).

피곤했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서 자고 싶지 않았다. 새소리가 들리고 짙푸른 태양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을 때 나는 이곳 뉴욕에서 내가 열렬하게 매달릴 무언가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지식, 권력, 방향, 그리고 목표를 찾았다. 나는 간절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104페이지)

 

티아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숙지하던 것 중의 하나, 특별 손님. 누구나 그런 생각 하고 살지 않을까? 존중받고, 대접받는 삶을 꿈꾸지 않을까? 꼭 높은 곳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위치에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 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티아의 선택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이미 인생의 복선처럼 눈치를 채고 있었으면서도, 은근히 응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남들보다 조금 더, 라고 바라는 삶을...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다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난다. 처음 티아가 레스토랑에 들어가려고 대기 줄에 섰을 때, 한참을 기다렸다가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는 순서를 기다리며 음식점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티아가 마이클과 함께 다니면서 레스토랑의 VIP 대접을 받으며 음식을 먹을 때를 보면, 세상은 줄을 선 순서와 다르게 입장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평범하게 입은 옷과 명품을 걸친 몸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티아는 두 세계를 경험한다. 친구를 사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소소하게 나누는 일상과 특별손님 대접을 받으며 우아함을 보여야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사는 일.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는 있다. 티아는 대학원 수료보다는 당장에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는다. 물론 그 기회는 현실의 순간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녀가 간절하게 바랐던 헬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길의 과정일 뿐이니까. 그렇게 믿고 나아갔다. 이대로 가는 길이 당연하고 나쁜 건 아니라는 판단에 그녀가 선택한 대로 현실을 누렸다. 그대로 가는 게 정말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은 계속 생기지만 안도의 답을 끌어오려 애쓰기도 한다. 괜찮을 거라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하면서.

 

패션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왜 그런 겉치레와 허세에 의지해야 할까?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것일까? 마치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각각의 옷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진입로가 된다. 옷이 나에게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 (200페이지)

 

리뷰를 쓰면 더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건 확실했다. 그 힘을 남용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그날은 내 개인적인 고통이 너무 심했고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여기에 사람들의 삶이 걸려 있다. 이 리뷰를 시작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379페이지)

 

단지 뉴욕이 아니어도 경험하게 되는, 우리 사는 동안 언젠가 한 번은 겪을 일을 티아에게 봤다.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서 오늘도 티아 같은 모습으로 사는 젊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나아가고 싶고, 오르고 싶은 것을 위해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일. 그 선택으로 얻고 싶은 거를 위해 애쓰는 동안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녀는 오래된 연인 엘리엇과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고, 새로운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는 이용당한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절망한다. 글을 믿고 신뢰했던 마이클에게서는 티아 자신이 '쓰임'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도시에서의 삶을 꿈꾸었던 시간이 오히려 더 아름다울 정도로, 도시는 맵고 쓴맛이 강했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짠맛을 더했고, 순간적인 로맨스로 달콤하기도 했지만 역시 끝 맛은 썼다. 이제 결정해야만 한다. 계속 쓴맛을 보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쳐야 할지, 인생의 맛을 바꾸기 위해 틀린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선택을 해야 할지를...

 

인턴십 처음부터 기쁘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해볼걸.

인내심을 갖고 헬렌을 기다릴걸.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들을 사귈걸.

처음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나 시시하게만 느껴졌었지만 이제 나는 이렇게 뻔하고 평범한 생활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걸 알았다. (469페이지)

 

맛으로 배우는 인생 경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소설이다. 다양한 메뉴의 음식들, 멋스러운 패션의 향연은 소설의 맛을 다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큰 도시로 나아가고자 하는 젊은 인생들의 몸부림이기도 하고, 경험으로만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세상살이이기도 했다. 티아가 겪은 뉴욕에서의 시간이 자기 삶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준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비록 인생의 쓴맛을 먼저 경험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녀가 다른 기준의 삶을 선택하면서 바뀔 인생의 맛을 기대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각자가 바라는 맛'을 향해 가는 것과 같을 테니까.

 

"우리 원래 맨날 망치잖아. 남들 때문에 망하기도 하고. 그게 인간이고 인생의 사이클이야. 더럽게 짜증나지만 어쩌겠어. 너는 다시 위로 올라가게 될 거야. 네가 그럴 사람이란 건 나도 알아." (45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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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21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것도 있었지만 쓴맛을 먼저 보았군요 한번에 올라가기보다 한단계씩 올라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좋은 일에는 안 좋은 일이 따른다고 생각한 듯해요 쉽게 얻는 거라고 해야겠군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된다는 것도 없지만, 그게 더 마음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선

구단씨 2018-04-23 00:13   좋아요 0 | URL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
쓴맛과 동시에 사는 맛을 배우는 듯한?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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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무속신앙이라고 해야만 이해가 조금 될 법한 이야기다. 혼이 몸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일, 살을 맞은 사람의 기이한 행동이 보여주는 호러의 극치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시작부터 독자의 눈을 사로잡더니, 기어코 끝 페이지까지 넘기게 하는 힘을 가졌다. 무엇보다, 어쩌다 보니 이 소설을 밤에만 계속 읽게 되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을 정도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공의 인생 어디로 흘러갈지,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기이한 행동과 상황들의 끝을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공포 영화는 못 보는데, 이 소설은 공포 영화의 활자판이었다.

 

 

다흥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조윤식은 초상집에 빠지지 않고 방문한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고 경조사는 특히 더 외면했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초상집에 계속 나타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남의 슬픔에 공감하려 한다면서 좋게 보기도 했고, 안 하던 짓을 한다고 의아하게 여기면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그가 갑자기 왜 초상집을 찾아다니는지 아는 사람은 윤식과 그의 숨겨진 애인이자 동료 교사인 영희뿐이다.

 

윤식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하나 있다. 존재 자체가 흉물인 새엄마 정금옥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평생 감옥에서 썩을 줄 알았던 새엄마가 출소하여 윤식을 찾아온다. 윤식의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에 함께하려는 새엄마 때문에 윤식은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고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그 고통을 없애려면 새엄마를 사라지게 하는 것뿐이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때 윤식의 애인 이영희는 윤식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과학적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무속의 힘을 빌려서 윤식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보라고 말이다. 눈까지 가리고 찾아간 산속 그들(?)의 지시대로 윤식은 모두 4번, 상갓집에 찾아가 지시받은 대로 의식을 거행한다.

 

점집에 찾아갈 때의 기분. 윤식의 바람을 들었을 때, 윤식이 영희의 조언대로 그 산속을 찾아가 비책을 듣고 왔을 때는 그랬다. 우리의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는 일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처럼 들렸다. 종교를 갖고 기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일을 들어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정도로 여겼다. 근데 윤식이 산에서 받아온 비책을 하나씩 실행에 옮길 때마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어지고, 그 죽음이 너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서 더 섬뜩했다. 정말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의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가? 그게 가능하다면 윤식이 산으로 찾아가서 만났던 그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여기까지만 보면 윤식이란 인물이 천하의 못된 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하늘 아래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바라며 간절하게 빈단 말인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해가며, 무속의 힘을 빌려 가며 발을 구른다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봐야할 것은 단순히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왜 그는 새엄마의 죽음을 바라게 되었는지, 누군가는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런 행동으로 일어나는 일이 무슨 힘을 가졌는지, 하는 것이다. 뭐랄까. 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는 동안 한 번쯤은 떠올리고 바랐던 일일지도 모를 순간에 어떤 힘이 비집고 들어와 우리 삶을 난도질하는지 보게 하는 것 같은... 이럴 때 적용해도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막상 간절함이 이성을 누르고야 말았을 때는 얻고 잃는 법칙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도 모른 채로 간절한 기도만 계속 하게 될 뿐이다.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 점집이라고 가볼까 하고 주저하는 순간들, 망설이다가 기어코 점집 문을 한번 두드려보기도 하는 일. 얼마나 간절하면 그럴까 하다가도, 이런 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절망도 동시에 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기어코 한번 시도해보고야 마는 순간도 있을 테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가야만 하는 순간의 힘일 발휘하는 때다.

 

소재가 특이해서 읽으면서도 낯설고 생소했지만, 미스터리 소설로 읽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 소설이 주는 공포는 온 집안의 불을 켜놓고 잠이 들고 싶을 정도였다. 읽다가 멈추고 엄마가 있는 방으로 가서 같이 자고 싶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면 기이한 행동이라고밖에 설명될 수 없는 일이,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어 세상 흐름의 이치를 혼란에 빠트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상식적인 말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고, 한 사람의 인생의 어디쯤에서 시작된 일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이치까지. 죽음으로 이 세상을 건너갔다고 믿는 존재들이 산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저주, 혼, 빙의, 악, 살, 사탄, 복수 등. 말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치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공포를 극대화한다. (원래 말이 안 통하는 상대가 가장 어려운 법. ^^) 초자연적인 현상과 극한으로 치닫는 인간의 고통이 만나 현실의 한 장면을 만든다.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나 하나씩 드러나는 각자의 감춰진 배경들이 소설을 더 흥미롭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너무 판을 크게 벌인 듯한 느낌도 든다. 처음에 이미 회차 계약이 완료된 드라마가 연장하는 느낌? 그러면서 바로 보일 것 같은 관계에서 자꾸 벗어나고, 더 큰 그물에 걸린 것만 같은 혼란은 계속된다. 그럴 때마다 자꾸 또 하나의 세상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 없는 것만 같고 무서움은 더 커지지만, 그만큼 늘어지는 듯한 분위기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급하게 마무리되는 듯한 결말에 좀 아쉽기도 하다는...

 

소설로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공포 영화도 잘 못 보는 나에게는 눈을 꼭 감고 글자를 읽어야만 하는 것처럼 힘들었던 소설이었다. 다른 의미로 보면, 현실과 신앙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오는 혼란과 갈등까지 아우르는 이 소설이 저주나 공포의 근원을 묻기도 하고, 신앙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숙제까지 남기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이 일으키는 감정들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보게 하면서,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이 만드는 공포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장르를 만나는 호기심도 웬만큼은 충족시켜주고, 소설로의 흥미도 괜찮았다.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상황들에 자꾸만 오싹해지는 기분까지, 갑작스레 밀려오는 더위에 즐기기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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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2018-04-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데도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소설, 작품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네요, 정말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구단씨 2018-04-04 14:31   좋아요 0 | URL
읽다 보면 여기저기 좀 허술하고 부족한 느낌도 있었는데요.
공포감은 진짜 대단했었어요. (물론 제가 느끼는 기준이 그랬던 거죠. 워낙 무서운 걸 못 봐서... ^^)
밤에 읽기 힘든 소설이었어요.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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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와 그 일당들(?)에 관해 선입견이 있었다. 한없이 가볍고 또 가벼워서 이들이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을 담아올 수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덤벼들 수는 없으니, 그냥 한번 가볍게 웃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특히 이 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살펴보다가 이게 무슨 말장난 같은 질문인가 싶은 노파심도 있었고, 진지한 질문을 담은 소제목에서는 얘들이 무슨 답이나 제대로 줄 수나 있겠나 싶은 기대가 사라진 마음이 더 컸다. 막상 다 읽고 보니, 나는 정말 얘들을 잘 몰랐던 거라는 걸 알겠더라. 가벼워서 홀가분해지고 무거워서 진지해지고 싶을 때. 보노보노의 상담소의 문을 활짝 열어보시라.

 

본때를 보여주는 방법 없을까요? 취업은 왜 하는 건가요? 고양이 똥 냄새가 심해요.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대요. 개복치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살 빼는 법을 알려주세요. 입 냄새가 나요. 도저히 토마토를 못 먹겠어요. 다크서클이 안 없어져요.

 

이런 질문을 보면, 질문자는 보노보노 상담소에 웃음을 전달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각각의 분야 전문가에게 찾아가 상담받으면서 치료하는 게 답이거나, 아니면 질문 자체가 좀 어이없어 보이는 것도 많았다. 본때를 보여주는 방법? 고양이 똥 냄새가 심한데 어떻게 하라는 거지? 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데, 보노보노 상담소는 끝까지 그 답을 찾아주려 애쓴다. 정답이 있는 해결 방법이 아니라, ‘나는 이랬는데?’ 하는 그들만의 경험들이 자꾸 튀어나온다. 뭐 별거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한 바퀴 뛴 것처럼 스르르 고민의 ‘고’자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반면에 누구나의 인생에서 한 번쯤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싶은 질문들 앞에서는, 보노보노의 긍정적인 말투에서 전해져오는 안심 같은 게 있었다.

 

되고 싶은 걸 어떻게 찾으면 될까요?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게 됩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운 이유는 뭘까요? 일에서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인생이 두 번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은 하는 게 좋을까요?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요?

 

어렴풋하게라도 한 번씩 생각했던 질문들, 어느 날 갑자기 묵직한 무게로 다가와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생각들, 누군가에게 꺼내놓고 말하기 어려워서 주저하기에 더 담게 되는 고민들. 누군가가 들으면 너무 사소하다고, 고민 같지도 않아서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문을 닫게 될지도 모를... 일상의 그런 많은 고민거리를 보노보노 앞에 풀어놓으니, 고민을 꺼내놓으면서 조금 후련해지고, 보노보노 일당의 만담 같은 상담 시간에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뭣이라? 이거 별거 아니었잖아?!

 

포로리 : 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걸까?

보노보노 : 누가?

포로리 : 흐음......

보노보노 : 부모님하고 친구들이?

포로리 : 분명 자기 자신일걸. (17페이지, 인생을 땡땡이 치고 싶어요.)

 

노보노 : 하지만 애 같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

포로리 : 앗, 그럴지도 몰라.

보노보노 : 행복하다면 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는 거 아냐?

포로리 : 오오, 보노보노 예리하네. 다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어른이 되는 건가?

보노보노 : 힘든 일이 있으면 왜 어른이 되는 걸까?

포로리 : 힘든 일이란, 자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거니까.

(171~172페이지,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좋은 사람들만 고민을 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우리가 하는 고민의 무겁고 가벼움을 떠나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얘들의 말에 안심이 된다. 우울하고 슬펐던 순간들이 자리했던 마음 한구석에 편안함이 내려앉는다. 괴로운 생각만 하니 괴롭기만 한 기억이 남는 것 같아서 마음을 조금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긍정의 자세가 생긴다. 살면서 겪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해야 할까. 슬픔에 익숙해지려면 제대로 슬퍼해야 한다고, 얼버무리지 않고 그냥 달래거나 하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슬픔에 익숙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보노보노와 포로리의 대화에서 진중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결혼하니 다른 게 보인다는 포로리의 누나 도로리의 말로 해결의 답을 대신 전하기도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완벽하지 않아서, 서툴러서 더 마음이 가는 보노보노 상담소에 머물고만 싶다. 문득 이 순간, 엉터리 같은 나의 고민도 하나 던져주면서 답을 듣고 싶기도 하단 말이다.

 

“교복 이후로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어요. 집에서 잠옷으로 입거나 동네 마실 다닐 때 추레한 원피스 입은 거 말고는, 외출용으로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치마였어요. 그런 제가 큰맘 먹고 원피스를 한 벌 샀는데요. 아니 글쎄, 이 원피스 허리가 고무 밴딩으로 되어있는 거예요. ㅠㅠ 그래서인지 살이 쪄서 두꺼운 허리가 더 두드러져 보이더라고요. 거울을 보는데 너무 슬펐어요. 치마 입기를 포기하고 이 원피스를 반품해야 할까요? 아니면 두툼한 허리 도드라지게 그냥 입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허리 고무줄을 뜯어내고 입어야 할까요? 지금 너무 고민돼서 종일 이 원피스만 보고 있어요...”

 

포로리 : 오오. 그럼 그걸로 해결이네. 토마토를 먹으려면 한 달 전부터 결심한 다음 여러 번 머릿속으로 토마토의 맛과 식감을 떠올린다. 그거야말로 ‘맛있는 음식의 맛’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점점 먹고 싶어지더라도 조금 더 기다리면서 참다가, 한 달 지났을 때 토마토를 먹어본다. 그러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마, 맛있다’ !! 그리고 당신은 토마토와 사랑에 빠집니다. (262페이지, 도저히 토마토를 못 먹겠어요.)

 

아마도 보노보노는 이런 답을 줄 것 같다.

니가 이 원피스를 보면서 입고 싶다고 생각하던 처음 그때는 생각해 봐. 뭣 때문에 이 원피스가 입고 싶었어? 그냥 이 원피스의 디자인 그대로 선택했던 거 아냐? 그럼 그냥 입어봐. 입다 보면 튀어나온 뱃살을 보는 것도 둔해질 거고. 혹시 알아? 그 뱃살 보기가 부담스러워서 저절로 다이어트 욕구가 생길지? 그것도 괜찮지 않아? 너 항상 살 빼고 싶어 했잖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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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0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노보노 상담소에 물어보고 싶어요 별거 아닌 것도 함께 생각하려고 한다니...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죠 어떤 건 말하기가 참 어렵기도 하네요 누구한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조금 나은 거군요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니...


희선

구단씨 2018-04-02 14:32   좋아요 1 | URL
저도 비슷해요...
이런 저런 걱정에 말하지도 못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답이 없이 시간만 흘러보내기도 합니다.
근데 또 얘네들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라도 계속 생각하는 게 나은 건가 싶기도 해서 조금 위로가 됩니다. ^^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지 너무 오래 되었는데,

그런데도 습관처럼 책을 옆에 쌓아두고, 신간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냥 계속 기웃기웃...

언제 읽을지 모를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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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18-04-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내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어요.ㅋ
언제쯤 미친듯이 책이 읽힐까....그날을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구단씨 2018-04-06 21:33   좋아요 0 | URL
그런 증상 반년이 훨씬 넘었어요. ㅎㅎㅎ
한번 바뀐 습관이 쉽게 변하지가 않네요.
재밌는 책 읽고 싶어요.....

노란장미 2018-04-0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됐네요.ㅋ
요즘엔 한달에 두권도 근근히 읽어요.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는 열심히 사대서 ㅜㅜ 슬프네요.
언젠가는 읽겠거니;;;;;;;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무심한 관계였을 것 같다. 서점상과 이름 없는 작가. 굳이 관심두지 않아도 되는 사이. 책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딱 거기까지만인 관계.  아니, 그냥 아무 의미를 두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책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장사꾼, 책이 필요해 구매하려는 소비자. 무엇이 더 필요한 관계일 수가 없지 않은가.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가 인터넷서점의 창을 열고 책을 주문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책값을 지불하고 서점은 책을 배송해주고. 각자의 목적에 맞게 그 자리에서 요구하거나 책임 의무를 다하면 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조금 특이한 관계가 눈길을 끈다. 책 구매로 시작된 단순한(?) 편지가, 어느 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주고받는, 애정을 담은 무게를 가지게 된 거다.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인 걸까?

 

이름 없는 작가 헬렌은 채링크로스가의 고서점으로 메일을 보낸다. 구매하려는 책 목록을 적어 보내고 책의 재고 여부를 묻는다. 헬렌은 적당한 서점에 금액을 지불하고 의뢰한 책을 배송받는다. 서점상 프랭크는 헬렌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고, 헬렌은 계속 구하는 책을 프랭크에게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주문서와 영수증에 불과할 그들의 편지가 점점 색깔을 달리한다. 헬렌은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료품을 프랭크의 서점에 보내주고, 프랭크는 헬렌의 선물에 고마워한다. 전쟁 때문에 사람들은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이다. 프랭크의 가족은 식료품을 배급받으며 생활했고, 헬렌은 미국의 식품 문화를 그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자고 약속한 건 없다. 누가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다. 점점 그들의 사이에 서점상과 고객이라는 관계 이외의 것이 자리하기 시작한 거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걸까? 저절로 누군가에게 향하는 마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쌓이는 어떤 마음. 혹시나 하는 상상을 했다. 헬렌과 프랭크는 편지로 마음을 쌓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 이런 설정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서 머문 이야기다. 두 사람의 편지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프랭크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남자라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로맨스가 없다고 해도 아쉽거나 이상할 게 없었다. 이들의 편지에는 오롯이 책이 가득했다. 헬렌이 찾는 책, 그 책을 또 열심히 구하려는 프랭크와 서점 직원들. 한 번씩 오가는 선물에 인사와 답례를 하는 편지들이 또 이어지는 반복. 책으로 시작된 편지에 다른 마음이 끼어들면서 그들의 편지는 더 뜨거워진다. 사람 사이의 온기가 그대로 실려 오는 느낌이다.

 

이런 인연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묻고 있다가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답에 나의 물음은 우문이 되었다. 새 책이 아닌, 헌책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이 전해진다. 오래된 종이, 헌책 특유의 냄새를 맡는 것만 같다. 클릭 한 번에 결제가 되고 배송이 되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감각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갑자기 아날로그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언젠가 오래된 절판본을 애타게 찾았던 경험도 있었기에, 어느 판매자에게 간절한 문의를 한 적도 있었기에, 헬렌과 프랭크 사이의 편지가 더 애틋하다.

 

책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깔렸고, 그 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서점상과 독자의 이야기. 머릿속으로 그들이 편지를 쓰고, 책을 읽고, 책을 찾아다니는 장면을 수도 없이 그리면 읽게 된다. 책에 대한 로망이나 서가의 먼지가 일으키는 기침 따위 상관없이도, 한 번쯤은 나도 그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책으로 이어지는 어떤 낭만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책이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감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누군가, 채링크로스 84번가를 걷다가 이 서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들어갈 것 같다. 그 책 냄새에 이끌려, 누군가 간절히 찾는 책을 수배하고 있을 서점 직원을 떠올리며...

 

이름 없는 작가와 서점상이 주고받은 편지 묶음에, 페이지 수도 적은 이 책이, 막상 구입한 나도 놀랐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개정판까지 나오게 되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정너'였다.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휴대폰만 열어도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고, 검색 한 번에 그 책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의 편함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래도 퀴퀴한 책 냄새가 주는 무언가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이 알지 않은가. 이 얇은 책이 전하는 감성은 그런 거다. 처음 책을 접하면서 느낀 그 감각을, 그 정서를, 그 애정을 새록새록 하게 만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말이다. 오늘날 사라진 책의 낭만을 찾아가게 하는 이 짧은 순간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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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0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과 영국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도 감동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에도 헌책방은 있었을 텐데 헬렌은 영국 책방에 편지를 쓰고 책을 사기도 했네요 편지로 이런저런 말을 나누어서 좋았던 거겠지요 이건 그 시대였기에 할 수 있었겠습니다 여기 실린 편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해도 여기 쌓인 시간은 길지요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나누다니... 프랭크가 갑자기 죽은 뒤에는 연락이 끊겨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희선

구단씨 2018-04-02 14:35   좋아요 1 | URL
글쵸? ^^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로도 거리감이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멀리 떨어진 두 나라에서 오가는 편지에 정이 뚝뚝 묻어나서 감동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