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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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무속신앙이라고 해야만 이해가 조금 될 법한 이야기다. 혼이 몸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일, 살을 맞은 사람의 기이한 행동이 보여주는 호러의 극치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시작부터 독자의 눈을 사로잡더니, 기어코 끝 페이지까지 넘기게 하는 힘을 가졌다. 무엇보다, 어쩌다 보니 이 소설을 밤에만 계속 읽게 되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을 정도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공의 인생 어디로 흘러갈지,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기이한 행동과 상황들의 끝을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공포 영화는 못 보는데, 이 소설은 공포 영화의 활자판이었다.

 

 

다흥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조윤식은 초상집에 빠지지 않고 방문한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고 경조사는 특히 더 외면했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초상집에 계속 나타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남의 슬픔에 공감하려 한다면서 좋게 보기도 했고, 안 하던 짓을 한다고 의아하게 여기면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그가 갑자기 왜 초상집을 찾아다니는지 아는 사람은 윤식과 그의 숨겨진 애인이자 동료 교사인 영희뿐이다.

 

윤식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하나 있다. 존재 자체가 흉물인 새엄마 정금옥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평생 감옥에서 썩을 줄 알았던 새엄마가 출소하여 윤식을 찾아온다. 윤식의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에 함께하려는 새엄마 때문에 윤식은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고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그 고통을 없애려면 새엄마를 사라지게 하는 것뿐이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때 윤식의 애인 이영희는 윤식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과학적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무속의 힘을 빌려서 윤식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보라고 말이다. 눈까지 가리고 찾아간 산속 그들(?)의 지시대로 윤식은 모두 4번, 상갓집에 찾아가 지시받은 대로 의식을 거행한다.

 

점집에 찾아갈 때의 기분. 윤식의 바람을 들었을 때, 윤식이 영희의 조언대로 그 산속을 찾아가 비책을 듣고 왔을 때는 그랬다. 우리의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는 일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처럼 들렸다. 종교를 갖고 기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일을 들어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정도로 여겼다. 근데 윤식이 산에서 받아온 비책을 하나씩 실행에 옮길 때마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어지고, 그 죽음이 너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서 더 섬뜩했다. 정말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의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가? 그게 가능하다면 윤식이 산으로 찾아가서 만났던 그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여기까지만 보면 윤식이란 인물이 천하의 못된 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하늘 아래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바라며 간절하게 빈단 말인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해가며, 무속의 힘을 빌려 가며 발을 구른다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봐야할 것은 단순히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왜 그는 새엄마의 죽음을 바라게 되었는지, 누군가는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런 행동으로 일어나는 일이 무슨 힘을 가졌는지, 하는 것이다. 뭐랄까. 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는 동안 한 번쯤은 떠올리고 바랐던 일일지도 모를 순간에 어떤 힘이 비집고 들어와 우리 삶을 난도질하는지 보게 하는 것 같은... 이럴 때 적용해도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막상 간절함이 이성을 누르고야 말았을 때는 얻고 잃는 법칙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도 모른 채로 간절한 기도만 계속 하게 될 뿐이다.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 점집이라고 가볼까 하고 주저하는 순간들, 망설이다가 기어코 점집 문을 한번 두드려보기도 하는 일. 얼마나 간절하면 그럴까 하다가도, 이런 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절망도 동시에 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기어코 한번 시도해보고야 마는 순간도 있을 테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가야만 하는 순간의 힘일 발휘하는 때다.

 

소재가 특이해서 읽으면서도 낯설고 생소했지만, 미스터리 소설로 읽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 소설이 주는 공포는 온 집안의 불을 켜놓고 잠이 들고 싶을 정도였다. 읽다가 멈추고 엄마가 있는 방으로 가서 같이 자고 싶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면 기이한 행동이라고밖에 설명될 수 없는 일이,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어 세상 흐름의 이치를 혼란에 빠트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상식적인 말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고, 한 사람의 인생의 어디쯤에서 시작된 일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이치까지. 죽음으로 이 세상을 건너갔다고 믿는 존재들이 산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저주, 혼, 빙의, 악, 살, 사탄, 복수 등. 말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치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공포를 극대화한다. (원래 말이 안 통하는 상대가 가장 어려운 법. ^^) 초자연적인 현상과 극한으로 치닫는 인간의 고통이 만나 현실의 한 장면을 만든다.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나 하나씩 드러나는 각자의 감춰진 배경들이 소설을 더 흥미롭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너무 판을 크게 벌인 듯한 느낌도 든다. 처음에 이미 회차 계약이 완료된 드라마가 연장하는 느낌? 그러면서 바로 보일 것 같은 관계에서 자꾸 벗어나고, 더 큰 그물에 걸린 것만 같은 혼란은 계속된다. 그럴 때마다 자꾸 또 하나의 세상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 없는 것만 같고 무서움은 더 커지지만, 그만큼 늘어지는 듯한 분위기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급하게 마무리되는 듯한 결말에 좀 아쉽기도 하다는...

 

소설로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공포 영화도 잘 못 보는 나에게는 눈을 꼭 감고 글자를 읽어야만 하는 것처럼 힘들었던 소설이었다. 다른 의미로 보면, 현실과 신앙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오는 혼란과 갈등까지 아우르는 이 소설이 저주나 공포의 근원을 묻기도 하고, 신앙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숙제까지 남기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이 일으키는 감정들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보게 하면서,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이 만드는 공포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장르를 만나는 호기심도 웬만큼은 충족시켜주고, 소설로의 흥미도 괜찮았다.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상황들에 자꾸만 오싹해지는 기분까지, 갑작스레 밀려오는 더위에 즐기기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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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4-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데도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소설, 작품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네요, 정말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구단씨 2018-04-04 14:31   좋아요 0 | URL
읽다 보면 여기저기 좀 허술하고 부족한 느낌도 있었는데요.
공포감은 진짜 대단했었어요. (물론 제가 느끼는 기준이 그랬던 거죠. 워낙 무서운 걸 못 봐서... ^^)
밤에 읽기 힘든 소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