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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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280페이지)

 

어김없이 입시한파가 찾아왔다. 이상하다, 이 계절은.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포근하다고 느끼는 어떤 날들이었다가, 갑자기 입시와 함께 겨울의 추위를 뽐낸다. 겨울에 밀리기 싫어서 버티고 있던 가을은, 오늘을 기점으로 그 계절의 힘을 잃고 이후의 시간을 겨울에 양도한 것 같다. 평화적인 약속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입시의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제 겨울 따위는 지나가버린 계절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려운 고비가 한번 넘어갔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시간이 와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나 다짐 같은 게 굳어지지 않을까. 오래 전, 어렵고 힘들고 가슴 아팠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제는 평범한 일상처럼 꺼내놓는 저자의 마음이 그랬을 것 같다. 슬픔을 마주했던 어떤 순간 건너왔으니, 이제는 이 이야기를 제법 담담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스스로 보내는, 비슷한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보내는 고요한, 참 괜찮은 위로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니 전작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 글로 작가를 처음 만난 게 됐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작가가 걸어온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개천, 용, 식당에 딸린 단칸방. 어떤 환경의 성장이었는지 가늠해보면서, 가난이 옷처럼 피부를 덮고 있었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낸다. 집이 아닌 방에서 살았던 가족들,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정해진 시간표처럼 저자는 성장했다. 성공을 꿈꾸지만, 실패가 어깨를 짓누르던 시절도 버텨냈다. 아니, 그렇게 흘러갔다고 해야 더 맞으려나?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은 가난도 버리고 싶고, 가진 것 없이 가족을 건사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저자는 그 이해를 넘어설 수 없을 때 그 가족과 다른 일상을 꿈꾸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때 나에게 간절했다가 버려진 생각이었기에, 저자의 글에서 느끼는 그대로를 나도 모르게 대입하면서 읽고 있었다.

 

좋았던 것보다 나빴던 것들이 많은 기억이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던 인생의 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을 통과한 저자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비관이 가득한 삶일까, 아니면 무한 긍정으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에너지일까? 이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게 있다. 인제 와서 그 시절의 슬픔이나 기쁨을 복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감정들이 남긴 현실을 바라본다. 슬픔은 저자가 버텨온 흔적이고, 기쁨은 그 이면의 슬픔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나고 보면 그래도 괜찮았던 기억이 자리하고, 그 정도면 몹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기억이 새롭게 새겨진다. 하지만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고 말한다. 슬픔이 뒤에 가려진 기쁨을 생각하는 것보다, 그 시절에 겪었던 슬픔의 각인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 버텨왔다고 토닥거리면서도, 다시 그 시간을 버텨야 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이다.

 

저자의 문장들 속에서 겹치는 많은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감정이 요동쳤다. 같은 그림이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의 흔적들이었다. 여섯 식구가 한방에서 자다 보니 키가 큰 저자는 다른 식구들의 발밑에서 잤다. 다섯 가족과 직각이 된 저자의 누운 모습을 상상해본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난다. 그 비슷한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우리 집도 저자의 가족 잠자리와 비슷했다. 한 방에 여섯 명 이상이 저자의 가족과 같은 구도로 잠을 잤었다. 다행히 방은 아주 비좁지 않았지만, 모든 가족이 한방에서 자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겨울의 어느 날이었던가. 추우니까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상하게 그날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던가 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도둑이 들었고, 도둑은 우리 집의 어디선가 훔쳐 갈 물건을 찾고 있었을 테지. 그런데 아마 도둑은 그 방에서 식구들이 그런 구도로 잠을 자는 줄 몰랐을 것이다. 살금살금 걸어가서 집안을 뒤져야 하는데, 여기저기 튀어나온 머리와 발을 밟느라 깬 가족들의 비명에, 도둑은 제대로 털지도 못하고 도망갔다. 도망가다가 넘어진 도둑을 잡겠다고 어린 나는 내복 바람으로 도둑을 쫓으며 뛰어갔는데, 결국은 놓쳤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무서웠는데도, 그때만 생각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방 한 칸에 콩나물시루처럼 꽉 차 있던 가족들 때문에 도둑이 그냥 도망가게 된 거니까. 하긴, 도둑은 그날 그대로 우리 집을 뒤졌어도 가져갈 게 하나도 없어서 허탕을 쳤을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발견한 가계부에서 아버지의 일상을 읽는다. 검소한 가격으로 커피 한잔을 마셨겠지. '임대'로 마련한 집을 정성껏 손보는 기쁨도 누리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그 모든 행동이 저자의 기억에 있다. 방에서 방으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마련한 집에 온 가족이 들뜨지는 않았을까. 가난 때문에 힘들고 단칸방 생활이 여섯 식구에게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 아버지의 소박한 가계부를 보고 부러웠다. 가난에 힘들었겠지만, 그 슬픔을 가리는 기쁨이 바로 아버지의 기록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도 저자의 성장 환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세월을 지나왔다. 가난했고, 육 남매를 키우는 엄마의 일상은 힘들고 찡그린 표정으로 굳어졌다. 엄마가 한밤중에 옆집에 가서 돈을 빌리는 것도 일상이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내가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열권이 넘는 노트를 보고 참 허무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적었는지는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면서 찾아보니 열권이 넘는 노트가 있었다는 것만 안다. 저자의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도 그날그날 당신의 지출과 이야기를 적었다.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고, 얼마를 지출했고, 병원에 갔고, 약을 샀고... 노트에 기록된 건 특별할 게 없었다. 일기와 가계부의 중간쯤 되는 이야기였다. 간략한 일정과 사용한 돈의 기록이 전부였다. 이상한 건, 아버지의 노트를 보고서도 아버지의 하루를 지켜본 애틋함 같은 건 없었다는 거다. 오롯이 아버지만의 하루였고, 지출이었고, 기록이었다. 아버지 자신 외의 가족에게 사용한 건 시간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버지 살아계실 때도 가까웠던 적이 없는 부녀 사이였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자기만 생각하는 건 참 한결같으시구나. 그런 아버지에게 한 가지 고마운 건,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3~4년의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일들이다. 병원 생활, 건강보험공단에 관련된 것이나 그 외의 아버지가 벌여놓은 일을 처리하고 서류를 만들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던 시간,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아서 계속 전화와 발품을 팔아야 했던 일들, 그리고 여러 가지. 그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그때 알게 된 것들이 요즘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그래도 나쁘지 않다. 알아두어서 좋은 게 더 많았으니까.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앞으로 사용하게 될 일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아프기만 한 기억을 뒤로하면 저자의 오늘이 있게 한 '책'의 시작이 있다. 두려움을 이기려고, 빚쟁이들의 고음을 듣지 않으려고 파고든 책에서 저자의 작가로의 인생이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거, 그런 곳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은가. 자기만의 방처럼, 너덜너덜한 마음 기워줄 수 있게 숨어들 수 있는 곳. 저자에게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대신 '책'이 그녀만의 방이 되어 위로해주고 꿈을 키우게 했다. 누가 불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처음에는 두려움을 이기려 고개를 숙이고 글자만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점점 그 글자 속으로, 문장에 빠져드는 표정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괜히 흐뭇해진다. 꿈을 꾸다가도 바뀌고 어긋나고 노선을 변경할 수도 있지만, 책에 빠져든 어린 소녀는 지금 작가가 되어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어려운 시간 잘 견뎠다고, 잘 커 주었다고, 다행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오지랖 넓은 동네 아줌마의 마음이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60페이지)

 

저자의 가족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을 지내면서 보이는 사회적 이슈도 빼놓지 않는다. 엄마와 아내로 동시에 작가로 살아가는 일의 고충, 작가라는 이름에 맞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갈등하고 힘들어지는 마음, 문단 내 성폭력과 미투, 사회적 계급이 만든 현실의 고통 등을 언급하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 저자가 부딪히고 겪어온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세상의 차별과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슬픔에 공감을 얹는다. 슬픈데도 마음껏 울 수도 없고, 누군가의 위로가 아닌 혐오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일들. 살면서 겪는 많은 아픔에 주눅 들고 좌절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자기 실패를 고정화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각자의 경험이 감히 타인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글에서 느끼는 '안다'는 의미를 되새길 수는 있다.

 

당신의 슬픔을 안다고, 실패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험한 세상의 불합리와 그 세계의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아픔의 틈 속으로 들어온다. '나도 잘 알아' 이런 말은 꺼내지 않는다. 힘내라고 섣불리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저자의 가족 이야기와 사회생활, 더 크게는 세상을 겪고 바라보는 이야기를 꺼내놓기만 했다. 저자가 걸어온 시간이 문장이 되어 다가온 게 전부다. 묵묵히 그 문장들을 지켜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자기 기억을 보태거나 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그 이후에 다가올 또 다른 위로나 희망 같은 건 즐겁게 받으면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위로는 찾아다닐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굳이 찾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그저 어느 순간, 이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느 노래 가사 하나를 흥얼거리거나, 책 속의 한 문장,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 하나에 내 안에서 뭔가가 터진다면, 그게 위로가 아닐까? 우리는 타인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의 슬픔에 위로하는 방법을 다 알고 있지 않으니까.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 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182페이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의문이었다. 잘 짜인 구성과 스토리로 독자의 모든 감각을 빨아들이는 소설. 어떤 생각과 고민의 답을 찾아가게 하는 인문학 강의.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듯 듣게 하는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들.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산문으로 다가오는 저자의 글이 충분히 좋은 글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은 말 대부분을 삼키려고 애쓰기만 했던 내가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서 담아두었던 말들, 화가 나고 고통스러워서 꺼내기 싫은 말들, 불안한 내일이 더 힘들어질까 봐 감히 입방정 떨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자꾸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만 한다. 저자의 문장 하나하나에 내 기억과 생각을 꺼내면서 수다쟁이가 되고 싶어진다. 슬픔을 꺼내놓는 방법 하나를, 위로의 의미를 제대로 찾은 거 같다. 참 괜찮은 글이 내게로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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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고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을 갈아입고, 벗은 옷은 털어서 걸어놓거나 세탁기에 넣고, 손과 발을 씻는다. 그 후로 바로 샤워를 하거나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씻거나 하는 약간의 순서 차이만 있다. 들어와서 손을 씻는 행위는 개인이 지켜야 하는 기본 위생 중의 하나이며, 어렵지 않게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세균이 우리 몸에 침투하지 않게 위해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세균 감염의 무서움은 이미 여러 가지 사례로 경험했다. 과거 세계사 속에서 활약하던 페스트 같은 거 말이다. 위험한 병이기에 전염을 막을 한계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깨끗한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 전염 확률을 낮췄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과 사람에게 옮겨 다니면서 그 힘을 발휘하는 세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개인이 지켜야 할 기본 위생의 중요성 또한 잘 안다.

 

병을 옮기는 세균이 사람 몸에 침범했을 때 증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무증상 보균자'라고 부르는데, 이 책 <위험한 요리사 메리>에서 말하는 메리 맬런이 그러하다. 아일랜드 태생의 메리는 요리사다. 뉴욕의 상류층 가정에서 일했다. 우연인지 뭔지, 메리가 일하던 집의 사람들에게 단체 장티푸스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의 질병을 조사하던 사람들은 그 집의 환경을 보고 장티푸스 발병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병이 가까이 올 수 없을 정도의 깨끗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원인을 찾지 못한 장티푸스 사건이 희미해질 무렵, 조사관 조지 소퍼는 요리사 메리가 무증상 보균자일 것으로 의심한다. 집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생활한 메리만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메리는 소퍼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는 장티푸스에 걸린 적이 없다며 건강하다고 조사관들에게 저항했다. 소퍼의 말을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메리에 관한 더 많은 자료 수집이 필요했다. 그렇게 더 많은 조사를 하고 그동안 메리가 일했던 집들을 역으로 추적한 결과, 메리가 일했던 모든 집에서 장티푸스가 생겼고 그들 중에서는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소퍼의 말이 사실이 된 순간이다.

 

메리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장티푸스. 위험하고 전염이 되는 이 질병을 어떻게 치료하고 단속해야 하는가? 사실 치료 방법을 찾아내고 환자를 돌봐야 하는 건 의학의 문제다. 중요한 건 무증상 보균자인 메리를 대하는 보건 당국과 사람들의 방식이다. 메리는 자기가 병을 옮기지 않는다면서 보건 당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는 보건 당국은 장티푸스 제공자 메리를 체포하고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메리의 대소변과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해보니 그녀는 장티푸스 보균자였다. 메리가 요리사로 일하던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는 장티푸스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장티푸스에 관한 공포로 벌벌 떨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그녀는 두려운 대상이었을 터, 언론에서도 그녀를 '인간 장티푸스균'이라고 부르며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얼마 후에는 메리의 실명까지 공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누군가 학회에서 그녀의 사건을 '장티푸스 메리'라고 부르면서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보건 당국은 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메리를 단속해야 했고, 메리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를 외칠 수 없이 보건 당국의 강제 집행으로 병원에 감금되듯 입원했고, 섬에 있던 병원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한쪽에서는 장티푸스를 퍼지게 하는 그녀의 감금 같은 입원을 당연하다고 여겼고, 한쪽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그녀에게 주어진 인권을 강탈당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불행은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누구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중 보건이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냐 하는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없었다.

 

메리는 섬에 있는 병원에서 3년을 갇혀 살았다. 전국에 본명과 사진도 공개되었다. 그녀는 자유를 위해 보건 당국과 서약을 한다. 요리사 일을 그만둘 것과 그녀의 거취를 항상 보건 당국에 보고할 것. 그렇게 3년 만에 섬에서 나온 메리는 그녀의 천직인 요리사 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보건 당국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면서 검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메리가 보건 당국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보건 당국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멈췄고 자취를 감추기까지 했다. 보건 당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병원에서 단체로 발생한 장티푸스 때문에 또 한 번 그녀의 인생은 감금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었던 메리는 가명으로 다시 요리사 일을 시작했고, 그녀가 일했던 병원의 사람들이 단체로 장티푸스에 걸렸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섬에 있는 병원에 수감된 메리는 23년 동안, 그녀가 죽을 때까지 섬에서 나오지 못했다.

 

1900년대 초반의 의학은 그 전보다 훨씬 발전했고, 현대 의학이라고 불러도 좋은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의학이 질병이나 의학에 관해 지금보다는 무지했던 시대였을 것이다. 메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와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이 증명되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녀가 무증상 보균자라는 이유로 평생 섬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녀가 공중의 보건을 이유로 격리당해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신상 정보가 만천하에 공개될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메리 이후에 드러난 무증상 보균자들은 자유를 억압당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감금되지도 않았다. 메리처럼 수십 명의 장티푸스를 일으킨 건강한 남자 보균자들은 보호관찰 처분으로 그만이었다. 그들의 신상정보가 신문에 나지도 않았다. 메리가 '최초의 여자 무증상 보균자'였다는 이유로 그녀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 의해 이렇게 파괴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그녀에게 '장티푸스 메리'라고, 마녀라고 불렀다. 언론이 씌운 마녀 이미지와 공포에 한 사람의 인생이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망가졌다. 타인에 의해 불행한 삶을 이어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저자는 단순하게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였던 메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전염병의 공포를 말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전염병의 보균자였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의학과 인권 중에서 무엇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문제를 꺼내놓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메리는 모두가 자기를 몰래 훔쳐보는 구경거리였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의 조사관 조지 소퍼는 그녀를 살아있는 배양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질병의 관리와 개인의 인권이 마주하는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할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전히 의학이냐 인권이냐 하는 문제의 답을 꺼내놓을 수가 없다. 질병의 공포를 없애주는(유배시키는) 것을 찬성하면서도, 한 개인의 삶이 공중 보건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야 하는지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메리의 인생을 힘들게 했던 이들, 조사관 조지 소퍼와 조지핀 베이커 박사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었다. 메리를 생각하면 그녀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을 만든 이들 중 한 사람일 테지만, 공중 보건의 발전과 전염병의 치료에 업적을 쌓은 이들이었다고 생각하면 현대 의학을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니까 말이다.

 

'장티푸스 메리'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게 누구였는지 무엇이었는지 계속 물으면서도, 공중 보건과 개인의 인권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메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비극 뒤에서 배경처럼 자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회적 약자인 메리에게 씌워진 굴레는 여기저기서 손을 뻗어 합세하고 만들어낸 거다. 전염병에 관한 공포와 하층 계급에 대한 혐오, 거기에 인간이 빚어내는 온갖 반감까지 맞물려 일으킨 재앙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의 무지와 혐오에서 비롯된 이 비극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메리의 이야기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격리된 병원에서조차 자기 일을 찾아서 했고, 억압된 자유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그녀의 노력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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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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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괴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찾아가는 길. 버니의 등장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악의 근원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이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설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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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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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리스틴 루페니언. 나는 지금 처음 접한 이름이지만, 이미 2017년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출간 계약금만 해도 어마어마했다는 후문.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에 머물자마자 이슈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이 책의 소문은 총 12편이 실린 이 단편집의 표제작 때문인 듯하다. 물론 다른 작품들 역시 특이하면서도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로 시선을 끌고 있다. 여성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많은 불안한 감정을 꺼내놓기도 했다. 매체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내용이 겹쳐지기도 한다. 현실에서 종종 마주하는 어떤 일들, 감정을 그대로 소설에 옮겨놓은 것만 같다. 어쩌면 읽고 나면 왜 이렇게 비슷한가 싶어 절망에 빠질 수도 있지만, 같은 마음과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던 우리와 그 환경, 익숙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확인함으로써 이 시간 이후로는 달라져야 한다는 의지 같은 힘을 실어준다.

 

표제작 「캣퍼슨」의 주인공 마고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대학생이다.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매점에서 일한다. 어느 날 매점에 손님으로 온 로버트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곧 두 사람은 데이트하고 영화를 본다. 잠깐 술을 마시고, 마고는 로버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간다. 그와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좀 더 진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에 그와 함께 간 것이지만, 막상 옷을 벗고 있는 로버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식는다. 더는 그와 닿고 싶지 않다. 내키지 않은 그 마음을 로버트에게 설명하고 싶지만, 막상 설명도 잘되지 않을뿐더러 단순한 한 마디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 상황에서 긴 이야기로 다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고는 자신의 지금 마음을 설명하고 그와의 관계를 그만두는 대신 그와의 섹스에 응한다. 그 후로 그와의 연락을 차단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일이 잘못된 건 아니다. 상대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도 나쁜 게 아니다. 다만, 흔하게 말하는 그 ‘썸’ 이후 변화하는 감정에 대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좀 다른 것 같다. 마고가 로버트에게 보인 호감이 처음 마음 그대로 머물지 못했을 경우, 솔직하게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여성으로 살면서 그런 표현을 얼마나 자유롭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어렵다. 상대와 마음을 나누면서 시작하는 관계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깊은 관계가 더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을 때 우리가 하는 선택은 뭐든 가능하다. 싫다고 거절하거나, 다른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금 더 만나보거나. 그런데 그 마음을 말하지 못해서 지금 상황을 잘 모면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무섭다. 아마도 그 후의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몰라서 생기는 두려움일 것이다. 상대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돌변해버리는 순간을 상상한다. 물론 그런 상상은 종종 현실에서 그대로 마주하기도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거절과 솔직함을 잘 드러낼 수 없었던 순간의 두려움은.

 

마고가 왜 로버트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지 하는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첫 번째로는 로버트가 마고의 태도를 오해한 상태라면 화를 낼 수 있다는 것. ‘네가 내 집까지 같이 온 것은 섹스를 하겠다는 거였잖아? 너도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인제 와서 그냥 가겠다고?’ 마고의 마음은 그저 단순하게 로버트와 섹스를 하는 것뿐이었을까? 아니었을 거다. 그와 '마음을 나누면서' 섹스를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막상 그의 모습을 보고 점점 사라지는 욕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자기 의사 표현을 포기한다. 두 번째로는 공포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고가 그와의 섹스를 목적으로 그의 집을 방문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순간 로버트가 취할 행동의 공포를 미리 그려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 든다. 사람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는 게 현실이기에, 친절하고 다정한 로버트가 마고의 변한 마음을 말하는 순간 폭력적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이런 마음이 단순히 추측으로 머문 게 아니라는 건 이 이야기의 결말에 드러난다. 마치 계속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듯이, 마고에게 원하는 게 없다고 말하면서 욕을 하는 그의 마지막 말은 끔찍했다. 우연히 술집에서 로버트를 본 마고가 왜 그렇게 숨으려고 했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없는 사람처럼 가려져 있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상상으로만 머물렀으면 하는 일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데이트. 설레고 즐거워야 할 단어인데, 어느 순간 우리는 데이트의 좋은 의미보다는 두려움을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생기는 게 비극이다.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던 작품이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이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주는 많은 구혼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 많은 구혼자 중에서도 공주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번번이 구혼자를 거절할 때마다 공주는 비난받았다. 최후의 통첩을 받은 공주는 그다음에 만난 사람과 결혼한다. 그럭저럭 결혼생활을 유지하지만, 상대를 사랑할 수 없었던 공주는 그 마음에 병이 들어 그녀만이 볼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 깨진 거울로 비치는 자기 얼굴 사랑하는 사람의 다리라고 믿는 넓적다리 뼈. 현실의 강압을 견디지 못한 선택으로 평생 자기 삶의 행복을 모르고 살아온 여성의 세월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에 보이는 공주의 모습은 반전처럼 보인다. 가장 악하고 독한 사람이 되어 결국 자기 삶을 찾고야 말았으니. 왜 여성은 악녀라고 불려야만 한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걸까?

 

사람을 무는 여자가 주인공인 「무는 여자」는 얼핏 무서우면서도 시원시원하고, 「정어리」는 딸이 생일에 비는 소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어쩌면 말로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한 엄마의 갈증을 대신 풀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바라본 세상의 못된 모습을 만드는 인간들을 벌주는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은근히 통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 사람의 묘한 관계를 그리는 「나쁜 아이」는 종속관계로 물들어가는 인간관계가 또 다른 모습으로 흐트러지는 과정을 그린다.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데, 뭔가 자기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다른 이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는 건 아닐까 하는, 세상의 나쁜 습성을 보는 것만 같았다

 

「룩 앳 유어 게임, 걸」은 표제작 「캣퍼슨」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듯하다. 열두 살 소녀 제시카는 공원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제시카에게 희대의 범죄자 찰스 맨슨의 노래를 들려주고 밤에 자기를 만나러 공원으로 오라고 한다. 제시카는 거절하지만, 계속 그 남자의 제안을 생각한다. 그러다 끝내 그 남자에게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음 날, 이웃집의 제시카 또래의 소녀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가 만난 사람과 관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웃집의 소녀가 당하지 않았다면 그 일은 혹시 자신에게 닥치지 않았을까? 그날 공원에서 본 남자의 얼굴이 잊히지 않아서 제시카는 경찰에 제보하고 몽타주까지 확인한다. 나중에서야 범인이 잡힌다. 제시카가 공원에서 만난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공원에서 만난 남자와 이웃집 소녀의 납치 사건은 제시카의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고 그때 그녀 나이인 자녀들까지 두었으며 캘리포니아를 떠나 멀리 옮겨 온 이후로도 제시카는 오랫동안 자정이 지나기 전에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쌍둥이 딸들이 그녀의 침실 옆방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는 창가에 서서 점점이 빛나는 무섭고 광활한 밤을 바라보면서, 문득문득 찰리가 아직도 그곳 공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79페이지 「룩 앳 유어 게임, 걸」)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아주 작은 순간이기도 하다. 한 남자를 만났거나, 어떤 약속을 지키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선택을 했을 때나... 이 책에 실린 단편 모두가 개성 있고 의미 있지만, 여성이 주인공으로 자기 뜻과는 다르게 약자의 삶이 되어버린 순간이 인상적이다. 데이트 상대에게 겁을 먹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우연히 만난 남자의 한 마디에 편안한 보행 한번 어려워졌으며, 결혼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악녀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이야기들이 불편하면서 기억에 남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강요되는 사회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게 절망스럽기도 하고, 그렇기에 조금씩 변해가는 세상이 반갑기도 하다.

 

 

제각각 자기 매력을 과시하는 12편의 이야기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현실에서 자주 보던 상황들부터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들, 인간 세계가 아닌 이야기들,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 소재나 설정이 끝까지 그 분위기를 이끌어가고야 마는 작품들이다. 입소문을 타고 그 진가를 발휘한 표제작부터 길고 짧은 다른 작품들까지 한꺼번에 만나는 재미가 있다. 어떤 작품은 너무 잘 이해가 돼서 계속 공감했고 어떤 작품은 좀 난해해서 제대로 소화를 못하기도 했지만, 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만날지 기대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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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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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삶을 부러워한 적은 없다. 그러면서도 잠깐씩 외출하는 기분으로 다니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짧은 시간의 여행은 기분전환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이 부부의 여행기가 낯설면서도 살짝 부러우면서도 놀랍기만 하다. 몇 주 몇 달이 아닌 몇 년의 시간을, 아주 이주한 것도 아닌 여행자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행복을 주는지 궁금했다. 부러움은 잠시 넣어두고,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의 삶이 이 부부의 인생에 무엇을 만들어주고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이우일이 쓴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을 안다. 읽어보진 않았다. 그 책의 분위기 정도를 파악했을 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진 이번 책은 이우일의 아내 선현경이 썼다. 부부는 포틀랜드와 하와이의 시간을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쓰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들의 여행 계획에 책을 쓰는 일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일상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책으로 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건, 오랜 시간 그리고 써왔던 그들이기에 가능한 거 아닐까? (이 부분에서 잠시 또 부러움을 꺼내 본다. 일상의 기록이 한 권의 책이 되고, 여행이라고 부르지만 잊히지 않을 추억의 한순간으로 깊게 새길 수 있었다는 거 말이다.)

 

그들의 하와이 입성 이후 하나하나 들려오는 정착기가 눈물 난다. 그들의 신혼여행도 그랬겠지만,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딘가로 간다는 게 무턱대고 겁이 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와이로 가기 전 그들이 머물렀던 포틀랜드의 시간도 적응보다는 즐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여행자가 익숙한 그들이 하와이에 갔다고 해서 겁날 게 뭐가 있을까. 전과 다른 점이라면 여기서는 그들의 이동수단도 마련해야 했고, 파도에 몸을 맡기며 보드도 타야 했다는 거? ^^ 중고 직거래로 BMW 산 것은 눈물겹다. 오래됐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그 차가 여러 가지 고장을 드러내며 신고식을 했을 때, 팔 때는 친절하던 판매자가 이런저런 구매 후기 불만을 토로했을 때는 답변조차 하지 않을 때. 한국이나 미국이나 개인 간의 거래는 비슷한 후기를 만들 수도 있구나 했다. 그래도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자동차 수리점의 좋은 사람을 만나 어느 정도 고치고 사용하면서 돈 낭비를 안 하게 된 것도 하와이에서의 좋은 기억이리라.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 늘어난 이 부부의 하와이 생활에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건 보디보드인데,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상상하면서 읽은 장면 중의 하나였다. 해변 근처에서 발을 담그기도 무서운데, 그곳에서 파도를 타면서 즐기는 스포츠는 어떤 즐거움을 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우일의 보드 사랑이야 이미 저자가 말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물을 즐기기 않는 것처럼 보였던 저자도 슬금슬금 그 파도타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얼마나 좋았으면 잠깐 한국에 다녀가면서 지하실에 넣어두었던 보드를 가지고 갔겠는가. 수영복 자국 그대로 무슨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할 만큼, 부부가 해변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다. 좋았으니까 그리했겠지. 싫어했다면 잠깐의 파도 구경으로 끝날 일일 테니까. 얼마나 좋았으면 이 해변 저 해변 투어 하듯이 찾아다니면서 보드를 즐겼을까 싶기도 하다. 어느 순간 빠져든 파도타기는 그들의 일상을 좀 더 열정적으로 만든다. 그 파도 때문에 한국으로의 귀국 일정을 석 달이나 미루었을 정도면 알만하지 않은가. 그게 나빠 보이지가 않는다. 물론 이들의 직업 특성상 오랜 시간 여행자로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석 달쯤 귀국 일정을 미룬다고 크게 어긋날 일이 없었을 테지만, 좋아하는 파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시기와 그걸 즐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알 것도 같아서다. 누구든 그런 거 하나쯤 있지 않을까? 이거 하나만은 꼭 보고 싶다는 마음 같은 거 말이다.

 

파도를 타다 보면 엄청난 파도의 힘에 저절로 왜소함을 느낀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함께 들었다 놨다 하는 파도에게서 거대한 힘을 느낀다. 그리고 겸허해진다. 바다에게 잘 보이고 싶어진다. 바다에게 슬쩍 고마움과 함께 인사를 건네게 된다. (92페이지)

 

 

머무는 시간이 긴 만큼 일상의 다양함도 늘어났다. 저자는 코바늘 강좌에 가기도 하면서 그곳의 나이 든 사람들과 그곳의 분위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머무는 기간으로 따지면 여전히 이방인이고 여행자일 뿐이지만, 현지인의 삶을 이렇게 가까이서 오랫동안 흡수하기도 쉽지 않을 일이다. 우쿨렐레를 배우고, 훌라댄스에 몸을 맡기고, 맑은 공기에 푸른 바다에 눈을 뗄 수 없는 그곳이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하다. 파도를 타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가 일상인 생활이 얼마나 편안함을 주었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느긋해진다. 계산대 앞에 손님을 두고 직원끼리 잡담하면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모습, 한국에서라면 어땠을지 상상이 되는가? 그런 긴장된 상황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며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걷는 곳이 하와이였다. 그런 생활에, 모든 것을 빠르고 급하게 해결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곳의 삶이 잠시 잊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제나 습관처럼 하는 말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느림의 순간이 자주 찾아와야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타지에서 지내는 것이 서울의 생활과 가장 다른 점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끝이 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 늘 우린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일흔 살의 생일을 맞는 엄마의 웃는 얼굴도, 나보다 작은 꼬맹이 딸과의 포옹도 다시는 오지 않을 마지막 순간들이다. 이곳에 살아보겠다고 왔을 때의 낯설음도, 2019년의 이곳 바다도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302페이지)

 

저자의 솔직한 일상을 적은 문장에 이우일의 재밌는 그림까지 더해져, 여행기로의 가벼움과 즐거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책이다. 이 책이 여행 노하우나 안내를 제공하는 책이 아니어서 서운할 사람 있을까? 여행 가이드북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 않은가. 저자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이런 이야기 괜히 느긋해지고 편안해져서 읽기 좋았다. 여전히 나는 떠나는 일에 귀찮아하고 낯선 곳의 불편함이 싫어서 여행을 자주 즐기고 싶은 인간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가 주는 그 느낌은 계속 만나고 싶다. 포르투갈어 ‘창문하다(janealar)’에서 힌트를 얻어 새롭게 탄생한 말이라는 '하와이하다'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생각한다는 의미의 ‘창문하다’처럼, 하와이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생각한다는 의미를 그대로 전달한다. 읽는 내내 여행과 일상 그 사이 어디쯤을 만나고 있는 기분에 많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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