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 완간 세트 - 전21권 (본책 20권 + 조조록 사전 + 가계도 + 브로마이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좀 느긋하게 읽어볼 수 있겠다. 장식용이 아니라 완독하는 게 목표.
박스가 너무 헐렁해서 다 찢어져서 왔다. 책 옆의 빈 공간을 뭔가로 미리 채워서 넣었으면 더 단단하게 고정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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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특별판...

디자인 고급스럽게 나왔다.

검은색에 투표했었는데, 역시... 예뻐.

 

 

   10쇄...

   4년...

   ...

 

 

 

 

 

 

 

 

 

 

 

 

 

 

 

 

밖에 나와있는데 친절한 알라딘씨의 신간 알림 문자가 들어온다.

오호... 나왔군.

어느 정도여야 10쇄에 4년을 사랑받을 수 있지???

이유가 무엇이든, 대단하다.

 

 

 

오늘, 영화 <레드카펫>을 보면서 장르도서가 저절로 떠올랐다.

안타까움과 아쉬움, 뭐 그런 느낌으로...

 

좋으면 그냥 보면 되는데...

그냥 취향의 차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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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막내 이모가 왔다.

3년 전에 봤을 때보다 살이 많이 쪘더라.

 

"이모, 이제 사는 게 괜찮아? 살 많이 쪘어요."

 

그냥 웃으신다. 사는 게 괜찮다고도 하신다.

올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가방에서 커피와 초코바를 내놓으신다.

받자마자 초코바를 하나 까먹으며 말했다.

 

“이모, 이런 거 동네 마트에서도 파니까, 무겁게 들고 오지 마시라니까요.”

 

올 때마다 나도 같은 말을 한다.

 

“그래도 이게 맛있어.”

 

끝까지 물 건너 직접 들고 온 게 더 맛있단다.

 

“그래, 맛있어요. 하나만 더 먹을게요. ^^”

 

 

원래 미국에서 자리 잡았던 큰외삼촌이 한국에 남은 형제 셋을 데리고 미국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엄마의 형제 반은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이모는 이십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사십 여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오십대가 되어서야 한국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한국에 한번 다녀갈 때마다 많은 돈이 들 텐데 3~5년에 한 번씩은 꼭 다녀가신다.

 

이미 오래 전, 친정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 중 절반은 미국에 다 살고 있는데도...

한국에 남은 형제들이 그리워, 친정이란 이름으로 언니 오빠를 만나러 오곤 했다.

 

2년 전에 돌아가신 작은 오빠(나의 작은 외삼촌)를 못 본 게 내내 마음에 걸렸나보다.

외삼촌의 납골당에서, 반갑다고 인사하고, 울면서 인사하고,

이제 언제 또 다시 올지 몰라 아쉬워서 인사하고...

 

외삼촌도 안 계신 외삼촌댁에 있는 기분이 참, 묘하다...

한번 왔다 갈 때마다 기약 없는 약속을 한다.

또 보자고...

물리적인 거리가 만든, 이민자의 삶을 들을 때마다 그 약속이 무슨 소망 같아서 살짝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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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지인이 도서 구매를 놓고 고민이 된다고 했다. 동서문화사의 앤 시리즈를 구매할 것이냐, 인디고의 고전 명작 시리즈를 구매할 것이냐 하는...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인 책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인디고 도서로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이 나이 먹도록 읽지 못한 고전 동화가 많기 때문이다. 고전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은 많이 있겠지만, 원작으로 읽어본 게 거의 없다. 어렸을 적 책을 가까이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이가 읽는다고 생각하는 책을 쉽게 접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니 시리즈로 갖다 놓으면 더 손길이 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 옅은 바람으로 뜬금없이 읽기 시작한 어린이 고전이다. 그 시작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림자처럼 주디를 후원하던 그 마음이 언제 어떻게 변하기 시작했을까 궁금했다. <빨강머리 앤> 보다, <캔디 캔디> 보다 더 먼저 만나고 싶었던 게 <키다리 아저씨>다. 물론 읽지 않아도 내용은 다 알고 있으니 스토리에 대한 호기심은 크지 않았다. 키다리 아저씨를 모티브로 한 여러 버전 이야기들의 시작을 활자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

 

 

 

 

 

 

 

 

 

<키다리 아저씨>를 언젠가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고등학교 때, 매주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키다리 아저씨>라는 만화를 TV에서 보여주었다. 아침 7시나 7시 반쯤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가물가물. 아무튼! 일요일 아침잠을 포기할 사람이 어디 흔한가?!!! 그 흔하지 않은 사람 여기 있었다. 나, 일요일 아침잠 포기하면서 매주 <키다리 아저씨>를 챙겨봤다고. 혹시라도 특별 편성 때문에 결방하면 TV를 바수어버릴 기세로 덤벼들었었다. 특별 편성으로 결방하면 방송국에 전화까지 했었던, 뒤끝 있던 여인의 조짐이 보였던 거다. 제발 <키다리 아저씨>를 틀어달란 말이야!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제주도 수학여행 길이었다. 우리는 예정에도 없던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이틀을 더 묶여 있다가 평일이 아닌 일요일 새벽에 제주에서 진도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는데!!!!!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있나. 객실 안에 매달려 있던 조그마한 TV 앞에,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몰입하고 있는, 100명도 넘는 여고생들을 상상해봐! 아마 그때가 <키다리 아저씨> 내용의 후반부쯤이었으니까, 주디하고 저비스씨가 밀당하고 있던 때 아니었겠어?! 모두가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잖아. “주디!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스씨란 말이야! 왜 못 알아보는 거야!”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주디의 주리를 틀고 키다리 아저씨를 사수하겠다고 외치는, 사생팬이 된 듯한 분위기였지. “주디, 알간~? 바로 앞에 있었으면 너는 100명이 넘는 이 언니들의 손에 피를 묻혔을 것이야~!!”

 

그런데 인제 와서야 처음으로 키다리 아저씨를 책으로 읽다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삐딱한 생각이 솔솔 일어난다. 이름 모를 후견인이 나타나 고아 소녀를 대학에 입학시켜 주고 꿈을 찾아가게 하는, 교훈과 감동을 주는 내용이 바탕이긴 한데... 지금 보니, 키다리 아저씨가 아주 인내심 강한 작업남(?)으로 보인단 말이지! 어렸을 적 이 이야기를 보면서 느꼈었던, 한 고아 소녀의 성공기나 키다리 아저씨와의 사랑이 완성되는 달콩달콩 로맨스가 전부가 아니었던 게지. 어른의 눈으로 다시 만나보니 이 남자, ‘키다리 아저씨’라 불리던 이 오빠는 선수였던 거야!!

 

 

 

 

 

 

 

 

 

 

이 오빠의 작업이 수상해.

열일곱 살 소녀 주디에게 14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키다리 오빠는 이름을 감추고 후견인을 자청했지. 그런데 이 오빠 왜 이런 거야? 여자아이를 싫어한다고 했잖아. 그동안 쭈욱~ 남자아이들만 후견해왔었잖아. 뜬금없이 왜 여자아이를, 그것도 주디를 콕 지정해서 후원했던 거냐고! 서른한 살의 젊은(?) 오빠, 처음부터 주디에게 꽂혀서 작업 시작한 것만 같은 이 불순한 의심은 어쩔 거야. 게다가 키다리 아저씨의 이름을 물으니 존 스미스래. 아, 이 흔하디흔한 이름과 성. (그래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란 제목의 영화가 있는 거잖아.) 주디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려고 흔한 이름을 붙인 걸 거야. ‘이 오빠는 널 해치지 않아~’, ‘오빠 못 믿어?’ 이런 마음을 날리면서 이름을 그렇게 정한 거 아냐? 난 그렇다고 생각해!

 

오빠는 어장관리도 참 잘해.

주디를 후원하면서 키다리 아저씨가 요구했던 것은 단 하나였어. 주디의 학교생활과 일과, 공부하는 이야기를 매달 편지로 써서 보내라고 했지. 순진하고 성실한 소녀임을 자청한 주디는 고마우신 후원자(?)님께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편지에다 다 적어 보냈지. 이 오빠는 이런 식으로 원거리에서 주디의 생활을 스캔하면서 어장관리를 했던 거야. 특히 목이 마를 만하면 한 번씩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나 주는 센스~! 줄리아의 삼촌이란 이름으로 학교에 나타나서 주디에게 학교 안내를 하게 만들잖아. 조카의 친구들에게 함께 베푸는 것처럼 꽃이며 초콜릿을 건네준다니까. 이런 앙큼한 오빠 같으니라구. 사실 줄리아는 삼촌과 친하지도 않았다는데 말이야. 그런 식으로 뜬금없이 한 번씩 학교에 나타나 주디를 만나는 우연을 만들기도 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호감 가는 남자라고 어필하려 애쓴 거 아니겠어? 저비스라는 이름으로 주디와 함께 차를 마시고, 둘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하고, 같이 쿠키도 만들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만들었다니까! 거기에다 주디의 편지로 알고 있는 많은 것을 근거로, 마치 주디의 마음속에 한번 들어갔다 온 것처럼 다 알고 있잖아! 급기야 이 오빠 돈 많은 걸 자랑이라도 하듯이 뉴욕으로 주디 일행을 초대하지. 때마침 햄릿에 푹 빠진 주디를 꼬시려고 햄릿 공연까지 보여주고. 칫~! 주야장천 ‘내가 키다리 오빠야.’하는 암시를 주지만, 무디고 둔한 주디는 아무것도 몰라. 흑... 주디는 오빠 맘을 그렇게 몰라주고, 편지에다가 자꾸만 저비스의 이야기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진짜 연적은 이제부터 등장한다니까.

 

이 오빠의 질투 좀 봐봐, 웃긴다니까.

주디가 초대받고 샐리의 집에 가게 되잖아. 물론 키다리 오빠는 흔쾌히 허락해. “그래, 가서 재밌게 놀다가 와.” 그런데 그게 키다리 오빠 최대의 실수가 될 줄이야. 연적이 나타난 거야! 바로 샐리의 오빠 지미. 주디가 편지로 샐리네(정확히는 지미)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 오빠는 긴장하기 시작하고 질투에 휩싸이지. 다음번 샐리의 초대에 가지 말라고 하면서, 샐리네 초대에 응하지 말아야 할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이 오빠도 이렇게 유치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야. 큭큭... 결국, 주디는 이 오빠의 영역인 록 윌로우의 농장으로 3개월 동안 유배를 가게 되잖아.

 

이 오빠를 어쩌면 좋아...

키다리 오빠의 작업은 여기서 아주 빛이 나지. 샐리의 초대에 못 가게 해서 주디를 화나게 하더니, 저비스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록 윌로우 농장으로 보내 어린 저비스를 상상하게 하잖아. 저비스는 이렇게 귀여운 아이였다, 저비스는 이곳에서 이런 책을 읽었다, 하는 것을 저절로 알게 하잖아. 아주 계획적이야. 자신의 어릴 적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장소에 보내놓고 차근차근 알아가게 하더니, 저비스라는 존재에게 친근해질 때쯤에 짠~ 하고 나타나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좀 봐봐. 그러면서 샐리네에 가서 지미가 가르쳐 주기로 했던 걸 자신이 막 가르쳐주고 있잖아. 깔깔깔~ 낚시랑 말타기는 물론이고, 총 쏘기도 가르쳐 주고 있었어. (이거 지미가 주디에게 가르쳐 주기로 한 거였잖아!) 이 부분 읽는데, 이 오빠 진짜 귀엽더라. 지미랑 같이 못 하게 하려고 샐리네 초대에 못 가게 하더니, 자기가 막 다 해줘. 이런 거 저런 거 같이 하고 시간 보내면서 주디에게 자신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어.

 

사랑에 빠지니까 이 오빠도 허당이 된다니까.

주디가 점점 독립적인 여자가 되어가는 것을 보던 오빠는 엄청나게 긴장하지. 자기 손길을 받으면서 키우고 길들여야 할 것 같은데 장학금도 받는다고 하고, 졸업 후에 유럽여행을 추천했더니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한다잖아! 이럼 안 되는데... 긴장, 초긴장... 선수처럼 자신만만, 뒤에서 살며시 조종하면서, 계획대로 잘 리드한 것 같은데. 이런 노선변경 반갑지 않아~!!

 

 

 

 

 

 

 

 

 

결국.

결국..

결국...

키다리 오빠는 저비스의 이름으로 청혼을 해~!!! 꺄악~!!!!!

 

근데. 흑...

주디가 거절해서 이 오빠에게 멘붕이 오고, 큰 병이 났잖아.....

오빠의 작업 성공이 물 건너간 거야?

아, 슬퍼.

 

 

읽어가면서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키다리 아저씨의 등장과 처음 저비스씨의 등장은 동일 인물임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으니까. (주디가 저비스씨의 외모-특히 키-를 그려 넣은 부분만 봐도 알 수 있지.)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긴장감과 재미, 가슴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검색해보니 도서 분류가 어린이 명작 고전으로 나오는데, 흐음... 고전은 고전인데, 어린이용(조금 더 넓게는 청소년까지) 로맨스고전이다. 그것도 흔하지 않게 서간체로 써진 로맨스소설. ^^ (아, 완전 웃음 나..... 킥킥킥...)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왜 진즉 읽지 못했는지 안타까울 정도다. 병원 진료대기실에서 앞부분 읽으면서 주디의 말발에 혼자 킥킥대다가 사람들의 시선에 잠깐 민망했으나 그게 뭐! 저비스씨의 등장에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니, 알게 모르게 보이는 두 사람의 밀당에서는 역시! 하는 감탄사가 나오더라. 로맨스소설의 조건을 다 갖추었구먼~!! 100년 전에 쓰였다는 이 소설에서 한 가지 더 놀라운 건 오늘날 많이 볼 수 있었던, 띠동갑을 넘어선 나이 차이!! 주디랑 키다리 오빠랑 14살 차이래. 흑흑... 능력 있는 이 오빠, 역시 어린 여자를 차지하는구나. 그것도 처음부터 콕 점찍어서 잘 키우더니 스물두 살에(처음 주디는 17세, 4년의 대학생활, 그리고 졸업 후에 청혼을 받는다.) 확~ 잡아드시는구나. 아이고, 배 아파~!!

 

고전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으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더니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건가 싶었다. (나이 불문, 장르 불문하고 고전이라는 것을 통틀어...) 좋다. 책으로 만나는 이런 즐거움, 색다르고 즐겁다. 다음에 한 번 더 읽으면 또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근데 이 책 마지막까지 읽어보니, 이 오빠 너무 느끼해.

당신이 웃으며 손을 내밀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사랑하는 주디, 내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걸 짐작조차 못 한 거야?”

어우~ 이 말을 하고 있을 표정과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막~ 춤을 추고 있어.

(이 말을 하고 있는 키다리 오빠의 목소리가 자꾸만 박영규 아저씨 저음의 느끼한 목소리로 들려... 슬프다...)

 

 

 

 

 

 

 

 

 

 

 

오늘,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오면서 이 분위기를 이어갈 고전 두 권을 대출해왔다.

<작은 아씨들>과 <로미오와 줄리엣> ^^

11월이 가기 전에 꼭 완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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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4-10-23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캔디캔디 컬러 애장판도 있는데 열권짜리도 갖고파요. ㅋㅋ

구단씨 2014-10-23 09:50   좋아요 0 | URL
완전 좋으시겠어요.........
컬러판은 진즉에 품절이던디요... ^^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
박후기 글.사진 / 문학세계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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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꺼내어 하는 말(소리) 대신에 글(문장)로 그 말의 깊이를 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시간 생중계처럼 전해지는 말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정리되어 글로 써지는 시간이 만들어지면 조금 더 다른,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이유로, 가끔은 일부러 급한 마음 상태의 전화보다는 조금 생각하다가 문자를, 문자보다는 메일로 상대에게 전달할 때가 있다. 설명이 필요하다거나 내 마음을 조금 더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바람이 있을 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올곧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의미의 언어가 여기 하나 더 있다. 말과 글만큼이나 더 전달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 사진이다. 딱 그때, 그 순간의 기록처럼 보이는 한 장의 사진이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종군기자의 사진 한 장이 전장의 실상을 그대로 전했던 것처럼, 사진이 말을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그 사진의 말을 알아듣는 나는, 또 한 번 공감의 언어로 소통한다. 사진이라는 언어...

 

 

시인이 쓴 산문이다. 나는 아마 이런 느낌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시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시 같은 글을 통해 어떤 마음을 전달받고 싶었던 거라고. 읽고 보니 그 기대감이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순서가 조금 다른 듯했다. 글이 가득한 느낌 속에 사진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구성이 아니라, 사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시인의 글이 따라오고 있다. 사진이 걷고 발자국을 남기면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그 발자국을 밟는다. 그 사진을 찍었을 순간의 마음, 그 장면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함께한다. 뻔한 얘기 같지만, 그 안에 일상을 풀어놓고 싶은 나의 바람까지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에 반했던 듯하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이라니, 뭔가 가벼워지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들킨 것만 같잖아. 양쪽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감정의 벽돌 하나를 내려놓고 싶기도 했다. 비까지 내리는 이 가을, 그냥 지나치고 갈 리 없는 익숙한 감기가 버거웠고, 한 살 더 먹어가는 나이의 무게가 심란했다. 마음을 흔드는 많은 일이 제자리를 찾아주었으면 싶은 바람에, 종교가 없음에도 수신자가 없는 그 어딘가를 향해 기도하고 싶기도 했다.

 

 

기도는 변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 또한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중략)

언제나 사람이 먼저 기도를 떠나왔던 것이다.

처음에 품은 그 절심함을 잊고, 사람이 먼저 사랑을 떠나왔던 것이다.

기도는, 어쩌면 잊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149페이지)

 

그런데 저자는 손바닥 뒤집듯, 기도에 대한 나의 마음에 너무나도 간단히 직구를 날렸다. 기도가, 잊고 싶다는 마음의 말이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랬나 보다. 나의 진심은 ‘이런 소원을 들어주세요.’ 하는 플러스(+)의 요청이 아니라, ‘이런 마음을 사라지게 해주세요.’ 하는 마이너스(-)의 잘라냄을 바라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려오라고 나에게 말한다. 살다가 하루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그런 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시(詩)에서 내려오고 싶은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무엇인가로부터 내려오고 싶고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날, 저자가 어떤 찰나를 담은 사진 한 장과 그 순간을 기록한 마음처럼 눈과 귀를 열게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눈이 내리는 계절의 흐름, 누군가의 구부정한 어깨, 버릴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사람, 모여서 함께 흔들리는 갈대, 오늘을 살게 하는 많은 법칙, 혼자 흔들리지 말라는 위로, 기울어지는 그리움에 기대어도 된다는 말, 깊어지는 맛을 내는 것들의 의미, 비는 내가 우는 소리라는 듯, 서로가 서로에게 지나가는 길목의 마주침, 감정이 살아있음에 붉어지는 얼굴의 아름다움... 그 이상의 것들이 품고 있는 말들을 풀어낸다. 시처럼, 음이 낮은 노래처럼, 마시기 좋게 적당히 식은 차 한 잔처럼.

 

누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날이 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내 마음의 행간(行間)까지도 읽어버린 것이다.

그런 날엔 한없이 서럽고, 또한 알 수 없는 떨림이 등피를 두드린다. (87페이지)

 

몰랐으면 싶은데 간혹 눈치 빠른 누군가는 내가 아무런 말이 없어도 마음을 알아챈다. 내 숨소리가 거기까지 날아갔나 싶게 정확히 짚어낸다. 무슨 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었구나 싶은 눈치를 나도 알아채는 것이다. 서로가 말이 없어도, 딱히 어떤 손짓을 건네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고야 마는 것. 그건 불어오는 바람 때문일 수도 있고, 커피가 아닌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미 하나 달리한 단어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또 한 번 감정을 건드리고 흔들리게 한다. 빗물이든 눈물이든 흐르게 한다. 때로는 그런 마음을 집어내는 것이 이런 책이 되기도 한다는 게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떠리. 그대로 다가오는 그 공감을 담고 싶은 것을...

 

 

마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닫힐 수도 열릴 수도 있다. 문틈, 그 미세한 자리를 비집고 굳이 들어오려 애쓰는 게 마음일지도 모른다. 알면서 모른 척하기도 했고, 일부러 그 틈을 안 보이려고도 했다. 그래서 지나친 많은 것들을 이 책이 다시 불러온다. 지나가 버린 한때의 시간을, 하루살이가 비우게 하는 오늘을. 이 밤에 조용히 비추는 가로등마저 다시 보이게 한다. 그 대상이 삶이든 사람이든, 한순간이나마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게 한다. 그 관조의 시선이 가져올 어떤 여유, 저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조금 쉬어가는 길, 돌아서 가는 길을 이런 식으로 들려준다.

 

 

저자 박후기를 시집으로 먼저 만났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 넘치는 우리 삶을 색다른 시선으로 시를 통해 얘기하는 듯했다. 시를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듣고는 했는데, 이번 책은 그가 찍은 사진과 그 시간의 말을 함께 담고 있다. 잡지사에 취직해서 본의 아니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을 동시에 했다던 그의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사진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거창한 소개가 아니라, 그가 뷰파인더를 통해 본 그 순간, 그 마음의 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그 사진 한 장과 그 장면을 통해 그가 사유한 마음 한 자락을 담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감정의 한순간이 있다는 것을, 다른 이에게는 평범하게 지나는 한 장면이 오직 자신에게만은 특별한 한 컷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 하고 싶은 한 마디가 그 한 장의 사진에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봄날의 햇볕처럼 내리쬐던 며칠 전의 하늘을 쉬지 않고 내리는 빗소리가 가득한 지금, 기억한다. 많은 게 흔들릴 정도로 불어대는 바람이나 거세게 비가 퍼부어대는 지금의 서늘함보다, 환하게 비추던 햇볕 아래서 더욱 추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던 그 날을, 내 마음이 기억한다. 비록 사진으로 담아두지 못했지만 아마 그날을 찍었다면 분명 사진에서 보였을 것이다. 너무도 맑았던 하늘, 봄으로 착각할 정도로 포근했던 햇살, 그 안에 자리한 내 서늘한 시선이.

 

 

한 장의 사진이 열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침묵의 언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소통하고 싶어지는 언어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의 많은 여건 때문에 때로 달리 보이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건 사진이 감정과 표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읽어내는 사람은 그 사진과 교감하는 것일 테고. 누군가의 마음과 시선을 담은 사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나에게 저자의 시선(사진)과 마음(문장)은 타이밍 좋게 다가온, 위로다. 내 마음이 지금 내리는 비만큼 더 서늘해지기 전에, 다시 찾아올 봄날처럼 풀어지기를 바라는 위로. 내리고 싶은 날이 있다고 말했으니, 그런 날 하루쯤은 내려도 괜찮겠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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