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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평점 :
아직은 잘 모르겠다. 죽음으로 이별한 사람들과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과 나의 공감을 이룬 시간을 꺼내게 되지 않을까
추측을 할 뿐이다. 그 시간이 아니고서는 서로를 기억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죽은 사람들과 나. 그 접점을 찾을 수도 없었거니와 이런 일
- 죽은 사람과 만나는 일 -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아서인지 낯설다. 그런데 존 버거는 그걸 좀 다른 분위기로 불러온다. 낯선듯하지만
필연으로 만나게 되는 느낌으로 그들의 여행 같은 흐름에 끌어들인다.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와 우리가 그들과
공유했던 것들을 끄집어낸다. 계산되지 않은, 변하지 않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가능할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들은 죽기 전 모습으로 남아 우리를 마주할 테니. 그들은 떠났고, 시간도 흘렀지만, 사람과 세상이 변하는 그 간격이 사라진
채로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을 거니까.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것처럼 읽힌다. 그의 자전적인
시간이지 않을까 추측하면서 읽게 되는데, 존 버거의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간으로 들어간 것처럼 들리는 걸 무시할 수가 없다.
리스본과 제네바, 아이링턴, 그리고 더 많은 곳. 그렇게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그의 기억 속 사람들을 소환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걷는다. 눈치를
챘겠지만, 그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어머니, 딸, 지인들. 첫 페이지에서부터 등장하는 그와 어머니의 조우는 반가운 그림이면서 한동안 상황
파악을 해야 할 정도로 숨소리가 낮아지곤 했다. 그의 어머니? 어디서 오셨나? 아, 오래전 그의 곁에서 떠나간 사람을 이렇게 만나는구나. 너무
자연스럽게, 어제도 만난 것처럼,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소소하고 자잘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누면서... 죽은 이에게서 배우고 가져갈 것들을
말하는 어머니란, 뭐랄까, 아낌없이 더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리더라. 죽기 전에 알 수 없던 것들을 죽은 후에 알게 되었는데,
뭐든 나에게 물어보렴, 내가 알게 된 것을 다 말해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죽은
다음에 많은 것을 배웠단다. 그러니까 너도 여기 있는 동안 나를 잘 이용해. 죽은 사람은 사전 같아서 모르는 것을 찾아볼 수 있어.
(39페이지)
얼굴을 제대로 보기 전에 걸음걸이로 알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상대와 함께 보내고 싶은 좋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에게서 듣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에도
집중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내 눈에는 죽음으로 이별한 모자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이 만남이 지속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서일까,
아니면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너무 현실적인 장면들만 눈에 담고 살아가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애틋하면서도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살면서 공유했던 많은 시간을 읊조리듯 풀어내는 시간 속에서도 자꾸만 그 끝이 먼저 보이곤 해서, 슬픈 장면이 아님에도 자꾸만,
순간적으로, 뭔가가 울컥거리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가 여러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뭔가가 내
안에서 자꾸 쌓여갔다. 풀어내지 못할 지독한 어떤 감정, 마음에서 느끼는 건 분명하지만 표현하기에 불분명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좋아했던 과일 하나마저도
그만의 사전에 의미를 다시 새기듯 그려진다. 그럴 수도 있겠다. 뭐든, 누군가로 인해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가 머물렀던 도시들이 그냥 이름으로만 불리지는 않을
듯하다. 그 도시와 공간, 시간이 마치 그를 기다렸던 것처럼 스르륵 다가오곤 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을 기억해 낸다. 아니지. 그들이 찾아와준
거니까 기억이 아니라 만난 거다. 그가 발 디디는 곳에서 그의 과거 한때를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를 추억하고, 살아오고 살아갈 시간에
대해 조언하듯 따뜻한 말이 오간다. 죽은 이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은 것처럼 이 소설은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현재형으로 보이게
한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상상조차 안 했던 장면들을 사실처럼 그리고 있다. 마치 그게 진짜인 것처럼 생생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과거와
현재라는 구분이 없이, 그냥 그들의 삶에 대해 계속되는 이야기로 머문다.
그렇게 구분 없이 읽어서일까. (그가 그렇게 썼으니 읽는
나도 그렇게 읽어지는 거겠지만) 읽다가 문득 한 번씩 생각하게 된다. 내가 죽으면 어디서 누구를 기다리고 싶을까. 누군가 죽은 후에 나는
그(그녀)를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만나고 싶어질까.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그가 언급한 어머니처럼, 나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지지 않을까. 가장
애틋하고, 가장 고맙고, 가장 미안하고, 아직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으로, 지금 하지 못한 말까지 한꺼번에 꺼내놓고 싶어지지 않을까.
어디나
아픔은 있다. 그리고 어디나, 아픔보다 더 끈질기고 예리한, 소망이 담긴 기다림이 있다.
(224페이지)
죽은 이들과의 만남이라고 하면 슬플 것 같은데, 뜻밖에
슬픈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쾌한 기억들을 꺼내고 즐기는 시간으로 남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도 눈물이 자꾸
나려고 하는 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