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체슬리 설렌버거.제프리 재슬로 지음, 신혜연 옮김 / 인간희극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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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심이고 기적인데, 이걸 의심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게 우습다.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한 그를 배워야 할 텐데, 또 하나의 이기적 집단이 만들어낸 절망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어 우려된다. 어쨌든,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을 그대로 보고 싶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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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명이 시한부란다. 그걸 가족들은 당사자에게 알리기를 거부한다. 의사도 이에 동참한다. 환자가 충격 받을까 염려된다는 이유였다. 정작 당사자는 환자인데, 그는 자기에게 남겨진 시간을 알 권리가 없을까?

 

종종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상황을 알고 있는 가족들이 정작 당사자에게는 남은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그에 의사도 동참한다. 정확한 상태를 환자에게 말하지 않고, 그저 잘 치료되고 있다고만 한다. 이때 정말 궁금해진다. 환자는 몰라도 되나? 자기에게 남겨진 시간을? 아니면, 자기 몸 상태를 이대로 몰라도 된다고? 그러다 죽음의 순간에 원망하면 어쩌려고?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울부짖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장면을 두고 친구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고. 질병으로 오래 앓다가 죽을 수도 있고, 예고 없는 사고로 즉사할 수도 있는데, 너의 죽음이 어떤 모양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병을 앓고 있다면, 그렇게 너에게 남겨진 시간이 곧 끝난다면, 그걸 아는 게 좋겠느냐고, 모르고 가는 게 낫겠느냐고... 친구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전자라고 했다. 어떤 경우에서든 알고 싶다고 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곧 끝난다는 걸 알고 싶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살아온 시간의 정리는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하다못해, 잔고 0원인 통장까지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의 모든 흔적들은 지우고 가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는 방법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여전히 전자다. 알고 싶다. 내 죽음의 주인공은 나니까. 주변 사람들이 쉬쉬하면서 나의 상태를 비밀로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임선경의 소설 『빽넘버』를 읽으면서 자꾸만 '만약'을 생각했다. 주인공 원영은 다른 사람의 등에 있는 숫자를 본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 숫자는 그들의 남은 시간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남은 날이 하루인 사람의 등에는 붉은색으로 숫자 1이 빛난다. 그러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붉은색 숫자 1은 점멸하면서 희미해지고, 숨이 끊어지면 숫자도 완전히 사라진다.

 

원영은 그게 너무 괴로웠다. 저마다의 숫자를 등에 달고 사는 사람들. 남은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숫자가 적은 사람을 볼 때마다 힘들었다. 그 사람에게 가서 '당신은 남은 시간이 열흘 밖에 되지 않으니, 곧 정리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을 거다. 반대로 남은 숫자가 많은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다. '당신은 삼만 이천구백이십일 후에 죽으니 남은 시간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그렇게 말해도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건 똑같을 테니. 어쨌든 남의 인생이다. 원영이 그들의 등에 붙은 숫자를 본다고 해서 그들에게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할 의무나 이유도 없다. 그런데 막상 그 숫자가 보이는 사람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부러웠다. 얼마나 좋아. 아무도 모르는 그 남은 시간을 안다는 게, 점쟁이처럼 다 아는 거잖아. 그거 말해주고 복채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의 시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자체도 신기했지만,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요! 알고 싶어요, 라고... 나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들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니, 얼마나 되었으면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는 초록빛의 긴 자릿수 숫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면, 미운 사람의 등에는 붉은 한 자릿수 숫자가 점멸하고 있었으면 하는, 정말 상상에서나 가능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띄웠다.

 

생명의 탄생에는 예정일이라는 것이 있다. 출산 예정일을 알고 그 계절에 맞추어 출산 준비를 한다. 몇 년 뒤에 학교에 갈 테니, 몇 년 뒤쯤이면 결혼도 할 테니……. 인간 삶에는 대력의 예정이 있다. 예정이 있어야 준비도 할 수 있다. 죽는 날도 예정일이 있다면 어떨까? 그건 혹시 축복이 아닐까? 사는 동안에 열심히 살고 죽음이 가까워지면 또 그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빽넘버』 180페이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죽는다. 금연, 금주, 규칙적인 운동, 오메가3와 프로바이오틱스, 깨끗한 공기와 물, 채식, 생식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놀랍게도 삶 그 자체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갔으므로, 그의 숫자가 다 소멸했으므로 사람은 죽는다. (『빽넘버』 128페이지)

 

그런데, 정말 다, 만약이다. 그런 걸 알 수가 없잖아. 알 수가 없으니 오늘을 사는 거 아닐까. 이 소설이 그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은, 다른 이의 등에 있는 숫자로 그들의 남은 시간을 보는 원영은 자신의 숫자는 못 본다. 안 보인다. 죽을 때까지 못 볼 거다. 남들의 시간을 보는 이가 정작 자기 숫자는 못 본다니, 재밌다. 마치 다 알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이 부러웠는데, 결국 타인의 남은 시간을 관여할 수 없는 그 자신도 자기의 남은 시간을 모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 소설의 답이 있다. 그냥, 오늘을 살아가시오. 남은 시간을 알아도 문제, 몰라도 문제. 그러니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답이 있겠소? 있다면 나에게도 좀 알려주시구려. 에고고...

 

 

며칠 전에 읽은 이 소설이 유독 많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며칠 전부터 자꾸 꼬이고 어긋난 일들이 머리 아팠는데, 싫은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일에 고통스러웠는데, 오늘 아침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오는 짜증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냈다. 냉동실 문을 열자마자 떨어지는 작은 덩어리 하나. 엄마가 남은 만두 몇 개를 비닐 팩에 넣고 얼려두었는데, 그게 떨어졌다. 만두 끝의 뾰족한 부분이 발등을 찍었고, 무슨 혈관주사 맞은 것처럼 빨간 바늘 자국과 그 주변에 바로 퍼지는 푸른 멍. 손을 댈 수 없는 통증에 절뚝거리며 걸었는데, 다행이 크게 붓지는 않아서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등에 붙은 숫자를 간절히 보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던, 헛웃음 나는 일만 계속되었던 하루였다. 이제 다 끝난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은 말도 안 되는 '만약'을 떠올리지 않고, 편하게 잠드는 그런 하루로 끝났으면...

 

햇살이 좋았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빽넘버』 23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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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5일, 잘하면 9일동안 쉬는 사람도 있겠다.

5일이어도, 9일이어도, 연휴가 너무 길다.

 

평소에는 안 오던 남동생도 월요일부터 온다고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나마 차례 안 지내는 집이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차례 안 지내도 똑같다. 식구들 먹을 거 한다고 준비하는 거며, 식구들이 많이 오니 준비할 양도 많다.

게다가 이번에는 너~~~~무 긴 연휴 때문에, 도대체 몇 끼를 해대야 하는 것인지...

 

식구들이 오기 전의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책 몇 권 즐기는 호사(?)를 누려본다.

 

 

당신을 그렇게까지는 3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야 3권이 나왔다.

2권이 완결인줄 알고 읽었다가 끝이 아닌 걸 알고 그 뒤가 궁금했다.

두 사람은, 아니 네 사람은 여전히 같은 마음일까...

 

 

 

 

 

어떻게든 이별

류근의 시집.

그의 적나라한(?) 말투가 그대로 드러나는 에세이가 재밌었는데

시는 또 다른 분위기. ^^

가을이니까 한 번 또 읽어보고 싶은...

 

 

 

 

 

13월에 만나요...

용윤선의 신간이다.

<울기 좋은 방>을 아직도 읽고 있다. 아껴 읽은 건 아니고 그냥 느리게 읽는 거다.

이번 신간은 제목이 예쁘다. 이 세상에는 없는 13월이라니...

가을에 만나기 좋은 글이 아닐까 싶다.

 

 

 

 

 

한 달 전에 도서관에 신청한 희망도서를 오늘에서야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세상에나... 8월 첫주에 신청한 책이 이제야 입고 되다니...

도서관 예산이 작년보다 10분의 1로 줄었단다. 왜???

그래서인지 가만히 신착자료 목록을 보니 확실히 줄었다.

신착자료 들어오는 속도도 느리고, 목록도 완전 줄었다. 그 중 절반은 이용자의 희망도서인 것 같고...

 

9월이 시작되자마자 몇권 신청했는데, 이건 또 10월 말에나 들어오는 거 아닌지 몰라...

신간이 신간이 아닌 상태로 읽겠고만...

 

 

이 와중에 이번주 초에 주문한 책이 도착~! 우아아아아아~~~~~

 

 

 

 

 

 

그나저나,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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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9-1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윤선, 저도 기대하는 책입니다. 추석잘보내세요^^

구단씨 2016-09-12 15:54   좋아요 0 | URL
일단, 용윤선의 전작부터 완독해야겠어요.

연휴가 깁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추석 지내세요~ ^^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리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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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입니다. 한 잔 꺾어봅시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정신은 비교적 말짱하다. 헌데 계단 오르기가 힘들다. 양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늘어진 엿가락처럼 꼬였다. 옆에서 따라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시지 않고 선을 그은 것이 그나마 다행. 기특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51페이지)

 

밤 10시쯤, 정말 딱 한 잔만 하고 싶었다. 아니다. 딱 한 병. (한 잔은 좀 서운하잖아) 집에 엄마가 맛있게 익혀둔 고기도 있었고, 목이 시원해지는 과일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 한 병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상황. 2월 설날 명절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집에 맥주가 없을 게 뻔한 걸 알면서도 냉장고를 뒤졌다. 아하. 그때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맥주가 한 병 나온다. (다행이다) 신난다. 기분 좋게 맥주를 컵에 따르다가 급우울해져버렸다. 맥주가 한 컵 밖에 안 나와. ㅠㅠ 정말 딱 한 잔뿐인 거야? 아쉬운 대로 그 한잔을 마시다가 보니 속이 상한다. 아, 서운해. 뭔가, 정말 서운해. 맥주를 사러 가야겠다. 그런데 너무 귀찮다. 걸어서 3분 거리의 마트까지 가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그때 마침, 내 눈에 들어온 건 며칠 전에 제부가 왔다 가면서 준 와인이다. 아주 좋은 거라고 했다. 비싼 거라고도 했다. 얼마나 좋은 건지, 얼마나 비싼 건지 모른다. 몰라도 괜찮다. 일단 눈앞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이름도 모르는 그 와인을 땄다. 조금씩, 한 모금씩, 그렇게 천천히 마시다가 보니 와인 반병을 마셨더라. 그때야 알았다. 내 손에 힘이 빠지고 있던 것을... 그래도 뭐, 기분이 알딸딸하니 좋더라. 적당히(?) 잘 마셨고, 기분 좋게 취해서, 잤다. (주사가 특별히 없고, 그냥 술 마시면 졸리니까, 잔다. 그래도, 그날 그렇게 몸이 늘어지고 손에 힘이 빠지는데도, 양치까지 잘하고 잤다니까!)

 

아, 이런. 술과 함께한 미야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자꾸 말이 삼천포로 빠지려고 한다. 내가 아직도 술이 안 깼나 보다. 술은 술술 들어가지만, 인생은 안 술술~하다는 미야코의 일상에서 웃음까지 곁들이다 보니 술과 미야코에게 취하는 기분이다. 그녀의 이름 코사카이 미야코. 책 소개에서 보면, '코사카이'는 '술이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뜻이란다. 어쩜 이리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 잡지사 편집부에서 일하는 미야코는 퇴근과 동시에 술집이 즐비한 골목으로 선배 언니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는 게 삶의 낙이다. 어라? 무슨 말인가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니 열쇠가 없다. 택시에서 두고 내렸나? 의미 없는 길을 오가며 열쇠를 찾았는데, 그녀의 손에서 도망간 가방은 집 앞 돌덩이에 걸쳐 있다. 술로 가득 채운 에피소드가 미야코를 설명한다. 동료의 명품 가방 안에 술 마신 것을 게워내고, 취중에 길거리에서 누워 잠자는 그녀는 누구인가. 훌러덩 벗고 있던 그녀의 앞 시간은 어디서 찾아와야 하나? 잃어버린, 찾을 수 없는 그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그녀가 했던 일들에 숨이 막힌다.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아픈 건가. 병원 진료실에서의 일화에는 진짜 박장대소했다.

 

어쨌거나, 병원에는 진료에 앞서 기록하는, 문진표라는 것이 있다. 외상에 관해서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도 적는다.

"코사카이 씨."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흰 커버를 덮은 둥근 의자에 앉아 의사와 마주했다. 의사의 첫 마디.

"정직한 사람이군요."

놀랄 일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사실 위장, 속임, 거짓말은 적인 편이라 생각한다. 허나 병원 의사의 소견으로 듣기엔 이게 뭔가 싶었다. 조심성 없다, 멍청하다, 라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할 상황 아닌가. 술 취해 다쳐서 병원에 왔는데 어째 도덕적인 칭찬을 듣는 거지? 미야코는 절로 고개가 외틀렸다.

의사는 말을 이었다.

"여자들은 대개 이런 상황에서 '넘어졌다'고 씁니다."

그러면서 문진표에 다치게 된 경위란을 톡톡 쳤다.

흰 종이에 꾹꾹 눌러쓴 글자. '술이 떡이 돼서.' (155~156페이지)

 

이러니, 미야코가 어떤 사람인지 눈앞에서 그려지지 않아? 몸에 술이 채워지지 않을 때도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그녀가 술만 잘 마시느냐? 아니다. 일도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다. 작가를 대하는 것부터 기획을 마무리하는 일까지,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하는 그녀다. 대책 없을 것 같지만, 나름 선을 지키고 열정을 불사르는 그녀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녀이기에 어느 자리에서건 인기를 폭발시킨다. 말 그대로 못 하는 게 없다. 누구 하나 그녀를 미워할 수도 없다. 일 잘해, 술 잘 마셔, 인간적이지, 대화 통하지. 이 얼마나 좋은 상대냐고. 읽는 내내, 이런 사람 하나쯤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미야코 같은 사람 옆에 한 명 있다. 일단 술병을 들면 말술을 마시는데, 술 취한 그녀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말 힘들다. 새벽 두 시에 술집 앞에서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한 시간을 헤맨 적도 있다. 에휴...)

 

술이 술술 넘어가듯 그녀의 인생도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듯했으나,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실패로 기록될 일이 있으니, 바로 연애다. 어느 날, 대학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만나자고 한다. 뭔가 느낌이 온다. 이상하다. 좀 더 예쁘게 하고 나가야지. 아마도 오늘이 디데이가 될 것 같다. 오호~ 이건 틀림이 그거야. 바로 그거! 프.로.포.즈. 뭐, 아직 결혼할 때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뭐, 결혼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미야코는 설레는 맘으로 애인을 만나러 간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미야코한테 물어봐. 그날 밤 그녀가 왜 그렇게 술잔을 꺾어댔는지 말이야. 그녀는 애타게 불렀다. 술아 술아~ 내 술들아~ 일루 와~. 한 잔 꺾고 꺼억~, 두 잔 꺾고 꺼~어~억~

 

술로 시작해서 술로 계속되고, 술로 즐겁고 우울해지는 그녀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남 일 같지 않은 거냐. 소설인데 시트콤 같다. 나 같고, 내 옆의 또 다른 사람들 같다.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오늘을 풀고, 속상함을 털어내고, 기쁜 일에 더 설레게 하는 매개로 술을 선택한다. 술 때문에 미야코가 보인 엉뚱함이 자칫 과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과함이 어쩌다 한 번, 귀엽게 보일 정도라면 괜찮을 듯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이 가볍지만도 않다. 직장이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진지한 일들이 그녀들의 끝도 없는 수다로 술술~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게 바로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때로는 울기도 하는 인생이지만, 이렇게 웃어가는 일들 때문에 오늘이 재밌어질 수도 있는 거. 그런 재미를 술이,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게 즐겁다.

 

모두, 오늘도 시원하게 넘어가는 한 잔으로 즐겁게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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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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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를 꿈꾸며... 『죽여 마땅한 사람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살인이 범죄가 아니라면, 처벌받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는 몇 번의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누구나 그런 적 한 번이라도 있지 않아? 나를 상처 입혔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 다만, 우리가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건 타인의 목숨을 내 기준대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살인은 법의 처벌을 받는 범죄라고 인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신감, 분노 같은 감정을 이길 수 없어 살인을 저지른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이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동시에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그 ‘죽여 마땅한’ 이유도 듣고 싶었다. 가끔 TV 뉴스를 보면서 흥분하다가 쉽게 내뱉는 말, 어떤 가해자나 피의자에게 당연하게 던지는 말이 있다.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고...’ 내가, 피해자가 받은 고통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개인의 복수가 아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받아야 한다는 절차와 방식이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진짜 죽인다면? 그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이 된다. 그 가정에서 멈추지 않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군가가 죽어 마땅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유 중에 마음의 상처를 입힌 이유라면 상대에게 죽음을 건네고 싶은 감정은 더 격해진다.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한,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한 너를 그냥 둘 수는 없다’고. 그래서 실행에 옮긴다. 나와 직접 관계가 있든 없든, 죽이고 싶다는 그 바람을 가진 이를 돕는 일도 한다. 릴리가 그랬다. 히스로 공항 라운지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테드와 릴리. 테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것을 공항에서 처음 본 릴리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로 생각한 릴리에게 무거운 속내를 털어놓은 거다.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그냥 꺼낸 말이라고 생각했던 테드에게 릴리는 진지하게 대꾸한다.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고, 도와주겠다고...

 

“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으려면 시체를 숨겨야 해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애초에 살인이 없었다면 살인자도 없는 거니까요.” (87페이지)

 

릴리가 테드를 어떤 방법으로 도울까? 그 방법은 한 가지다. 테드가 자기를 배신한 아내 미란다를 죽이고 싶다는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기 위해 시체를 잘 숨기는 것. 두 사람은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묘미는 그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처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는 것을 따라가면서부터다. 릴리와 테드, 테드의 아내 미란다, 살인 사건의 담당 형사 킴볼의 시선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모든 진실을 알고 싶을 때 당사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풀어야만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게 불가능할 때 관계된 이들의 목소리를 따로 듣기도 한다. 이때, 각자의 입장만 듣게 된다는 맹점이 있다. 어떤 이유로 이들의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동하는지, 죽여 마땅한 이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는지,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모든 경우 다 죽일 수 있었는지, 그 죽음에 관해 아무도 처벌할 수 없었는지... 누군가를 죽이기로 계획했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위기를 또 어떻게 넘기면서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되는지 반전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테드는 미란다를 죽일 수 있을까, 그 살인이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살인을 들키지는 않을까?

 

‘썩은 사과 몇 개를 신보다 먼저 도려내는 일’이 가능한지 물으면서 또 하나의 큰 질문을 던진다.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일은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이어진다. 사람이 사람을 살인으로 심판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명확한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음도 확인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보게 된다. ‘나라면?’ 이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봤을 생각일지도 모른다. 법의 절차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처벌을 내가 하고 싶다는 욕망에 잠겼던 찰나를 건너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냥 한번 생각해본 것’과 ‘살인’ 사이의 경계를 만든다. 인간이기에 대부분은 전자의 경우가 많을 듯하다. 혹여 누군가 나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나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하는 정도의 즐거운(?) 상상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법이라는 제도가 있고, 우리는 그 법의 절차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게 많은 사람이 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아서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생각들이 사건을 만든다. 이 소설은 그 빈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저지른 살인은 잘못되었지만, 또 그렇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뿜어져 나오니까.

 

가슴이 아팠다. 익숙한 감정은 아니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난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저지른 살인마다 이유가, 그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420~421페이지)

 

‘살인은 나쁘다’라는 한 가지 결론만을 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살인을 응원하는 순간도 만들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가 싶은 의문을 품게 한다. 벌을 받아야 할 행동에 묘한 공감이 생겨나고 있다니... 나 정말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에 동조하는 순간이 있는 걸 보면,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음이 틀림없다. 릴리만의 심판이 모두 옳다는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하겠지만, 그 시도 자체를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완벽한 살인과 숨김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당신은, 우리는, 그 고통을 사라지게 하려고 직접 해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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