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늙어갈 수 없을까? (맞춤육체 238페이지)
정아은의 소설 『맨 얼굴의 사랑』은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조성환과 글을 쓰려고 하지만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서경이 주인공이다. 이서경은 소설의 캐릭터 연구를 위해 환자로 위장하고 조성환에게 성형수술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이서경은 흐지부지한 글쓰기를 일단 멈추고 조성환의 추천으로 그의 성형외과에 상담실장으로 일한다. 어느 날 이서경은 조성환이 집도하는 가슴 성형 수술에 참관한다. 아무래도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나면, 상담을 좀 더 사실적으로 성실하게 할 수 있을 듯했다. 말로만 듣고 상담하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크게 날 테니. 생생하게 눈으로 목격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묘사된 가슴 성형 수술 장면이다.
가슴 밑을 메스로 긋자 옥수수 알갱이처럼 생긴 조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간호사가 집게로 벌려 준 일자로 난 틈새에 조성환이 기구를 넣어 공간을 넓혔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긴 송곳 모양의 기구가 위아래를 쑤시면서 보형물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했다. 제법 큰 부피의 공간이 마련되자 조성환이 벌어진 구멍을 들여다보더니 간호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중략) 조성환은 으음 하고 목청을 가다듬더니 작은 동굴 안으로 보형물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동굴이라고 해 봤자 엄지손가락 하나나 들어갈까 싶은 작은 공간이었다. 그보다 몇 배는 돼 보이는 보형물이 순식간에 가슴 조직 안으로 밀려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곡선을 만들어 냈다. 조성환은 바로 봉합에 들어갔고, 민첩한 솜씨로 입을 벌리고 있던 동굴 입구를 닫아 버렸다.
다른 쪽 가슴에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짓말처럼 부풀어 오른 양쪽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술 전 그어 놓은 마킹 자국과 번진 핏자국, 방금 꿰맨 자국으로 너저분한 상태였지만 환자의 가슴은 사이즈와 형태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핀셋과 실을 간호사에게 넘긴 조성환이 한손으로 여자의 유두를 잡아 올리더니 나머지 한 손으로 가슴을 꾹꾹 눌렀다. 순간 외설스러운 상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좋겠구나, 저 여자는. (맨 얼굴의 사랑 218~219페이지)
소설이니까, 실제 소설을 쓴다고 해도 수술실에 들어가 참관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작가가 그냥 두루뭉술하게 서술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소설에서는 가슴 성형 장면이 상당히 세세하게 묘사됐다. 가슴 수술을 정말 이렇게 하는 건가? (나도 직접 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지만, 정말 이럴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장면을 쓸 수 있지? 이렇게 적나라하게? 소설 속 이서경처럼 나도 묘사된 그 장면을 보고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장면이 생생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는 가슴 성형 부분을 노엘 샤틀레의 『맞춤육체』를 참고했다고 한다. 궁금해서 노엘 샤틀레의 『맞춤육체』까지 펼쳐보게 된 거다. 부제가 '성형 수술 세계로의 여행'이다. 성형수술이 궁금하다면 딱 펼쳐 봐도 좋을 거 아니겠나? 물론 나는 아직 그 성형 수술에 관심이 많거나 어떤 부분을 고치고 싶은 간절함이 하늘을 찌르지는 않았으나, 이런 내용을 들을 기회가 흔하지는 않을 터이니 생각난 김에 읽어보고 싶었다. 정아은 작가가 소설에 인용한 부분은 『맞춤육체』의 초반부에 나온다. 그 부분을 보는 순간 궁금증은 더 커진 거고. 코는 어떻게 수술할까? 눈은? 지방 흡입은? 그 외에 여러 부위의 성형 수술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노엘 샤틀레는 몇 곳의 병원을 방문하면서 성형 수술 전과 후의 환자를 면담했다. 성형 수술 직전의 환자를 만나기도 하고, 수술 후 퇴원한 환자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오래전 성형 수술 경험을 한 환자도 만났다. 어쩌면 저자의 성형수술 관찰기는 어떤 내용이 나올지 뻔한 느낌도 있었지만, 막상 읽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는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저자가 방문한 병원에서는 심리상담사가 있다는 거다. 의사와 면담하기 전 환자는 반드시 심리상담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일반 병원에서도 진료 접수를 할 때 어디가 아파서 방문한 것인지 묻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성형외과의 심리상담사의 역할은 그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심리상담사는 환자가 원하는 수술의 이유나 부위를 이야기하면서 조금 더 환자를 살펴본다. 수술의 이유에 더 집중하면서 보는 듯하다. 그러고 나서 의사와의 면담 시간이 정해진다. 정아은의 소설에서 이서경의 역할도 비슷했다. 그녀는 상담실장이라는 직함으로 환자를 상담한다. 그렇게 상담실장을 통한 1차 상담이 끝나고 각 수술 부위에 적합한 의사에게 2차로 상담받을 시간이 정해지는 거였다. 모든 성형외과가 이런 절차를 거친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아직 내가 성형외과에 방문해본 적이 없으니 그저 소설과 취재로 말하는 내용을 믿기로 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노엘 샤틀레가 방문한 병원의 '심리상담사들'에게 뭔가 전문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들은 의사를 만나기 전의 환자를 면담하고, 상태를 확인하고 기록한다. 의사는 진료할 때 그 상담 내용을 참고하고 환자를 관찰하는데, 환자가 바라는 성형이 의학적인 이유가 아닐 때, 지금의 상태도 충분한데 욕심껏 성형을 원할 때, 수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수술을 거절한다. 어느 정도 살펴보면 이 환자의 문제가 외모인지 정신적인 문제인지 보이는 거다. 그럴 때 다시 심리상담사에게 환자를 인계한다. 외과적 수술로 치료할 이유가 없는 환자들이기에.
처음 사례로 등장한 가슴 성형 환자의 이야기가 정아은의 소설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를 낳기 전의 자기 가슴을 그리워했다. 남편은 반대했지만, 여자는 지금 이 수술을 해야만 했다. (사실, 남편과 같이 상담한 순간 더 알게 되는 이들 부부의 성격이나 사생활이 있기도 했다) 그렇게 수술을 했고, 저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가 자기 가슴 수술에 참관한 것을 알았던 여자는 저자에게 묻는다. 자기 가슴 수술이 어땠느냐고. 저자는 그 환자에게 수술은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보형물 외피에 연결된 호스를 빼낼 순간이었다. 나는 멀찌감치 물러섰다.
나는 C부인의 고통스런 외침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상처로 괴로워하는 짐승의 외침이었다. 호스가 보였다. 나는 그것이 가슴의 어느 부분에 뾰족한 낚시 바늘 같은 닻을 내렸는지 알고 있다. 나는 갑자기 다리가 풀리고 무기력해져서 옆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바로 이것이 성형수술이다. 생생한 상처의 폭력에 복종해야 하는 육체. 바로 이 육체는 달라지려는 욕망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고 구원의 외침을 날카롭게 내지르는 것이다. (맞춤 육체 22~23페이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상기시키는 부분이었다. 성형수술의 이유와 과정에서 육체의 고통이 빠질 수가 없는 거였다. 수술 후 육체가 마음에 드는, 완벽한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할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가슴 수술을 한 C부인은 퇴원하고서도 고통을 겪었다. 최소 몇 달을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그 고통이 사라지고 보형물이 들어간 가슴을 더 만족하게 될 순간이 오겠지. 그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으리라.
첫 번째 절개가 이루어진 후 지방 덩어리 속으로 들어간 흡입 기구가 거칠게 왔다갔다하면서 일어나는 끔찍한 그 느낌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지방이 배의 내벽으로부터 붉게 물든 혼합물로 축출되는 것, 그리고 나서 호스를 따라 병에 담기는 것을 어떻게 흥분하지 않고 서술할 수 있을까?
저 물질들을 지방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생각하자. 영혼으로부터 뽑혀져 나오는 고통, 지방의 모습으로 저장 용기에 가득 채워짐으로써 마침내 사라질 고통.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맞춤육체 153페이지)
다양한 부위의 성형이 등장한다. 대머리, 주름 제거, 코, 가슴 등. 미용 성형인지 재건 성형인지 구분이 모호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미용 성형에 관련된 부위였다. (화상으로 가슴 수술을 한 여자아이도 등장하는 걸 보면 성형이라는 분야를 거부감으로 채우는 게 다는 아니라는 것. 재건 성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듣게 되는 성형의 이유가 참 아팠다. 예쁜 몸을 더 예쁘게 하려는 목적만 등장했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자마다 각자의 히스토리가 있었다. 주름 제거 수술을 원하던 여자는 남편의 바람기와 그가 던진 살인 같은 말에 충격을 받았다. "당신은 너무 늙었어." 이 말이 비수가 되어 그녀가 수술을 선택하게 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에게 너무 집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완전히 그녀에게 마음 두지 않음에 불안했다. 급기야 너무 늙었다는 말까지 들었다. 성형 수술이라는 방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기 몸의 주름이 사라지고 늙은 외모가 조금 더 젊어진다면 남편이 자기에게 다시 시선을 주지 않을까 바랐던 거다. 남편에게 집착하고 사랑에 갈구하던 여자의 선택은 성형이었다. 오직 한 가지. 자기 몸과 정신을 남편의 사랑으로 다시 채우고 싶어서.
아버지의 코와 닮았다는 남자는 자기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우고 싶어서 코 수술을 했다. 아버지와의 모든 관계를 벗어나고 싶었던 거였다. 23살부터 36살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10번의 수술을 했다. 그래서 10번의 수술로 그는 만족할 수 있었을까? 혹시 또 한 번의 수술로 아버지의 기억과 완전한 이별을 이뤄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가슴 속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성형 수술. 그게 완전한 답이자 치료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이밖에도 많은 성형 수술 환자의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드는 생각은 -저자도 같은 얘기를 했지만- 결핍과 사랑이 성형수술로 이끄는 부분이 많다. 물론 성형 수술 환자의 모두가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듣다 보면, 정말로 그 이유가 가장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 때문에 선택하는 성형. 사랑받기 위해서,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선택하는 건 아니냐고... 수술의 남용과 방지를 위해서, 걱정 때문에 심리상담사가 존재하는 걸 보면, 환자의 불안과 결핍을 없애주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는 역할이 아닐까 한다. 성형 수술이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심리상담사일 거라고. 애슐리 몬테규의 『터칭』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촉각, 인간의 피부에 접촉되는 감각으로 존중과 배려, 아껴지고 있다는 느낌을 찾을 수 있다는 말. 접촉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게 우리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내가 그 책에서 느낀 가장 큰 부분이다. 우리 몸을 덮고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피부가 스킨십을 통해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감정들이 우리를 건강하고 사랑받게 한다는 느낌이다. 수술을 통해 외모의 변형이 사랑을 만들거나 완벽한 육체를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와 닮은 듯하다.
나는 여자들이 아름다워지고 결점을 고치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육체를 내밀고, 의사가 그 피부라는 옷감에 실시하는 작업을 본 이후로, 정말로 우리가 외모에 관한 욕구의 한 단계를 정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속임은 더 이상 옷이나 화장, 액세서리에 제한되지 않는다. 눈속임은 이제 의복과 액세서리가 된 살 자체를 정복하고 있다. (맞춤육체 56페이지)
성형은 분명 삶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성형의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막연한 거부감이 먼저 생기곤 했다. 여기를 좀 고쳤으면 더 예쁠 텐데, 더는 굶어도 빠지지 않는 뱃살의 지방을 좀 뽑을 수는 없을까, 눈이 좀 작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쌍꺼풀이라도, 안 그래도 작은 가슴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은데 내 가슴에도 보형물을? 많은 생각과 상상을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 가끔 보는 부작용의 모습들이 성형 후 나의 모습이 될까 봐 무서워서 감히 엄두를 못 낸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대로 사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그대로 살아내 보자, 하는 긍정의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완벽을 위한 욕망이 아닌 숨겨진 사연들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성형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에게 그들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면 나도 성형외과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젊음에 대한 욕망을 꿈꾸다가도 세월의 흐름과 같이 가는 얼굴의 주름이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면서 한번 웃고 마는 결론에 이를 때가 더 많지만 말이지.
성형수술이 모든 사회 계층으로 확산될 거라는 예감은 어떤 면으로 본다면 논리적이다. 즉 수십 년 전부터 이러한 의학적 발달의 혜택은 여성의 외모라는 문제에 집중되었지만 이제는 남자들과 학생들,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것 역시 달리 보면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메스로 손쉽게 고칠 수 있는 볼품없는 모습을 평생 감수하면서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병원에서는 시술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아름다움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양에 대한 과대평가에는 우리가 경계해야만 하는 일종의 끔찍한 면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맞춤육체 211페이지)
저자의 취재로 듣는 성형에 관한 좀 더 깊고 넓은 이해. 무엇보다 성형은 자기 자신을 위한 수술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형외과는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성형이 인생을 바꿀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성형이 옳다 그르다 하는 이분법적 결론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렇게 편 가르듯 간단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오늘도 성형을 고민하는 사람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균형 감각의 유지를 말하는 저자의 의도를 알 것도 같다. 우리 몸과 정신을 살필 수 있는 심리적 의미와 질문을 계속하면서 글을 맺었다. 수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비슷한 사례를 들려주며 선택의 책임을 묻기도 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성형을 선택해야만 하는 고민도 언급한다. 성형과 관련한 업종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다면 잘 알지 못한, 성형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시술 후 이야기를 같이 들려줌으로써 여러모로 문제를 인식하게 한다. 영원한 물음표로 계속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볍게 농담처럼 말했던 성형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