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점기행 (보급판)
김언호 글.사진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책을 존중하는(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책과 서점을 정말 존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세계의 서점을 따라 걷는 저자의 발자취가 낯설지 않은, 마치 정해진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던 걸로 여기게 된다. ‘왜?’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그건 눈으로 그리지 않은 그의 인생 계획표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저자 덕분에 독자인 나도 덩달아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이렇게 보고 있으니 흐뭇하다.

 

국내의 부산의 어느 서점부터 북유럽의 서점까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그대로 담아왔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의미는 서점의 외관부터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그 안의 풍경과 서점이 이끌어온 역사와 정신까지 포함해서 이르는 표현이다. 각 서점의 역사와 의식, 창립자의 사연까지 듣고 보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간 부분 이후로는 중국의 서점이, 뒷부분에 다다르면 부산의 서점도 소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앞에서부터 소개된 유럽의 서점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서점과는 다른 웅장함과 고서점의 분위기까지 풍기는데, 그 안에 서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나를 상상해보면, 정말이지 없던 고상함까지 끌어내 오고 싶을 지경이다. 아무래도 책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그 책이 담긴 건물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한몫한다. 유럽의 건물 양식이 그러할 테고, 익숙한 동양인이 아니라 서양인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데서 오는 낯섦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서점이 태어난 배경과 유지하는 데 힘을 주는 독자와 동네 주민들의 역할을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 독립서점을 다녀온 그가 건넨 사진에서 유럽서점의 스타일이 그대로 보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넌서점>은 어마어마한 복층의 구조가 웅장했다. 800년의 세월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서점을 책의 신전, 서점이 고전이라고 했는데, 이 서점의 분위기를 보고 고전이 가득할 거라는 생각 역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여기서는 대부분 책이 고전일지 모른다는 착각부터 했으니까 말이다. ‘회원의 날’을 만들어 음악회도 열고, 일정 권수 이상 구매하면 혜택도 준다. 네덜란드 역시 도서정가제가 시행 중이라고 한다. 영국 런던의 <토트 북스> 역시 비슷한 분위기다. 2층 구조의 서점이며, 어떤 광고도 하지 않는단다. 다만 구매자에게 30파운드 이상의 책을 사면 작은 가방을, 70파운드 이상이면 큰 가방을 선물하는데, 이게 바로 광고 대신이었나 보다. 반응이 좋은 것 같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도미니카넌 서점

영국 런던 돈트 북스

미국 펜실베이니아 미드타운 스콜라

 프랑스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여겨봤던 서점이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인데, 그 창립 배경이 단순한(?) 것에 비하면 서점의 역사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것 같다. 1919년 미국 출신의 실비아 비치가 프랑스에서 영어책 서점을 낸 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가난한 작가·예술가들이 그의 서점에서 책을 빌려 갔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대여점과 서점의 혼합이 아니었나 싶다. ^^ 1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불황이 심화하면서 다시 전쟁으로 가고 있던 심사치 않은 그 시대에도 이곳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니, 어떤 사람들이 어떤 분위기로 여길 드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여기서 실비아는 제임스 조이스와 만난다. 그의 작품 『율리시스』의 출간이 어려워지자 그녀가 직접 출판하기도 하면서 대박을 친다. (제임스 조이스의 서명이 담긴 율리시스 초판본이 뉴욕의 고서점 아르고시에 있는데, 6,000만 원이란다. 헉!) 하지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살림은 고단했고, 1930년대가 끝나가면서 파리는 전장으로 변했고, 제임스 조이스가 세상을 떠나는 1941녀에 실비아도 서점을 문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피네간의 경야』 때문이다. 독일 장교가 탐내던 그 책을 실비아는 내어줄 수가 없었다. 그에 거부하니 실비아는 6개월 동안 수용소에 갇혔고, 기력도 쇠약해져 더는 서점을 운영할 수 없었던 거다. 훗날 시간이 흘러 미국 청년 조지 휘트먼에 의해 서점이 이어지면서, 갈 곳 없는 작가들과 배고픈 지식인들을 위해 수프를 끓였다는... 자기 서점을 ‘잡초 여관’이라 부르며 삶과 사유의 안식처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정신은 계속되었다. 현재는 조지 휘트먼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 이어가고 있다. 서점이 가업이 되는 순간이 이런 기분일까? 일본의 오래된 라멘집의 전통을 보는 느낌이다. 규모나 배경, 이익 창출을 떠올리지 않고 오직 책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물론 수익이 있어야 유지가 되는 건 당연하고!

 

 

그리고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 일본, 한국의 서점이다.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난징의 서점과 서점인들이 문제의식을 발동하고 중국사회를 같이 본다. 24시간 문을 여는 싼롄타오펀서점의 바람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독서정책이 부럽다. (내가 사는 이곳 도서관은 2016년 도서관 도서구입비를 10분의 1 이하로 줄였다고 하던데, 그래서 올해 입고된 신간이 많지 않더라) 일본의 서점은 보고 바로 일본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고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의 부산 영광도서의 계속되는 변신, 꾸준한 보수동 책방골목은 우리 서점의 역사라고 한다. 사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언제 가게 될지 기약이 없이 그냥 오랜 시간 들어온 곳이라서 그런지, 저자가 말하는 우리 ‘서점의 역사’라는 표현이 낯설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처럼 기본 몇백 년은 된 고서점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독자와 시민이 명문서점을 만든다는 저자의 말은 뭔가 울컥하기도 하고, 서점을 좀 더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책을 파는 곳, 책을 사기 위해 드나드는 곳으로 여겼던 내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여전히 내게 서점은 그렇다), 독자와 시민이 나서서 서점 성원 운동을 벌였던 다른 나라의 서점 역사를 듣고 보니, 역시 이익을 내야 운영되는 곳이 서점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의 문화와 정신을 끌어가는 곳으로 거듭나고 유지되어 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싶어진다. 폐허가 된 극장에 들어선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미드타운 스콜라서점이 낙후된 지역을 재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듯, 네덜란드 책방 마을 브레데보르트가 관광지가 지역을 발전시켰듯,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와 뉴욕의 스트랜드서점이 명문서점이자 관광코스가 된 것처럼, 지역발전에 유의미한 존재가 되는 곳으로 거듭나는 건 서점 혼자만이 이뤄낼 수 없는 일이다. 저자가 들려준 이런 서점의 이야기, 세계 서점의 매력들을 듣고 있노라니 더 부러워진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서점이 있긴 하지만 안 간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대부분 수험서나 교재, 베스트셀러가 진열되어 있고, 편하게 앉아 책 구경 하기는 힘든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서점이 익숙하다. 대형서점이 들어와서 카페 같은 분위기로 이용자들을 편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금방 들어온 것 같지는 않고... 이번 여름에 집 앞에 시립도서관 분관이 개관했다. 처음 여기 공사할 때는, 책 들여올 예산도 부족하다면서 이미 4개의 분관이 있는 시립도서관에 굳이 또 만드나 싶었다. 차를 타고 10분이면 가는 곳에 도서관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 개관하고 나니 이용자가 많다는 걸 알았다. 도서관 아래층에 노인복지관을 같이 운영해서 그런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어르신도 많았고, 도서관에서 어르신 상대로 개설하는 수업도 종종 있던데, 괜찮더라. 도서관 다니면서 엄마 수업도 신청하고 오곤 했다. 억지로 신청해놓으니 귀찮다고 하면서도 가시더라. 거기 수업에서 만든 작품(?)을 집에 걸어두고, 사진 찍어서 막 손주들에게 보내라고... ^^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서점과 서점인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는지, 세상을 경험하는지 보여준다. 오랜 시간 그 명맥을 이어올 수밖에 없는 의지를 들려준다. 그곳을 지켜내야만 했던 이유가 너무 간절했던 거다. 단순하게 책이 아니고, 그냥 그런 서점으로의 공간이 아니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싸워야 할 많은 것을 찾게 하는 의식의 장소였던 거다. 서점이 하나의 나라라면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 나라를 지키고 이끌어온 국민이다. 세계 명문서점은 베스트셀러에 매달리지도 않고, 문화를 연결하여 사람들 가슴에 들어가려 하는지 얘기한다. 책을 선택하는 서점인의 안목, 서점에 대한 독자·시민 의식이 명문서점을 만들어낼 거라 말한다. 도서관도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여기에 분관 만드느라 예산 낭비한다고 투덜댔던 거, 도서관 개관하자마자 반성했다. 생각보다 이용자가 많았다. 도서구입비나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여기에 소개된 서점이 전부가 아닐 테지만, 이보다 더 할 말이 많을 테지만, 이만큼이라도 본 책의 숲도 아름다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처럼 언젠가 한 번은 세계의 서점 순회 간절하게 하고 싶어질 것 같다. ^^

 

 

 

어느 작은 서점의 구석에, 이런 내 자리 하나 고정석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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