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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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이런 방식으로 문학을, 고전을 공부했다면 더 흥미롭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아니면, 그때는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해서인지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했던 것이 이제 와 다시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 한 보따리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드는 생각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더 재밌게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이 될 것이고, 시험과 상관없는 독자라도 즐기면서 읽는 우리 고전 가요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든 만나게 된다면 울고 웃게 될 이야기 한판이라는... ^^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의 첫 번째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이다. 고대 가요와 향가, 고려 가요를 소개하고 있는데, 분명히 한번은 들어봤거나 읽어봤던 내용이어서 낯설지는 않다. 특히 시험에 자주 나오는 작품을 선별해서 실었다고 해서인지 반갑기까지 했다. ^^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더 재미있게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소개 글에서도 언급되는 게 ‘개정 교과 과정의 흐름에 맞추어 나온 문학 교과서 최고의 부교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흐름이나 문장을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기도 해서 소화하기에 괜찮다. 소개된 각 가요의 뒤에는 원곡을 실어두어 원래의 맛을 보게 해주었고, 간략하게 ‘핵심 정리’를 추가해 두어 요점정리 형식의 공부를 하게 했다. 거기에 가요의 내용에 맞게 함께 담긴 그림은 각 구절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구절에서 보이는 장면을 상상만 하기에는 부족한 것을 그림을 더함으로써 완벽한 이해를 돕는다. 굳이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즐기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는 마약 같은 교재가 될 듯하다.

 

 

 

고대 가요는 고조선 시대부터 통일신라 이전까지 지어진 모든 시문학 갈래를 말한다. 너무 오래되어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문학사에서 중요한 네 작품을 소개해주었는데, ‘공무도하가, 화조가, 구지가, 정읍사’가 실렸다. 그중에 한 곡 「정읍사」를 소개해보자면, 장사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여인의 노래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남편이 가는 길에 별일 없이 다니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며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형상을 옮겼다. 아마도 이 구절 들으면 다들 ‘아하~’ 할 것 같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때? 가물거리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해지지? ^^)

 

 

정읍사(井邑詞) - 작자 미상

 

달님이시어,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시옵소서.

장터에 가 계신가요?

진 곳을 밟을까 두렵습니다.

어디에든 내려놓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님 가는 곳 저물까 두렵습니다.

 

향가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창작된 시 문학이다. 향찰(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국어 문장을 적는 표기법)로 기록되었다. 4구체, 8구체, 10구체 등 3가지로 나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서동요, 모죽지랑가, 도솔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처용가’가 실렸다. 주제도 다양하다. 화랑도의 의리를 노래한 모죽지랑가, 먼저 가버린 동생을 생각하며 아파하는 제망매가, 임금과 신하, 백성 모두가 함께해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된다는 희망가인 안민가, 대범하게 역신을 물리치고 역병이 돌 때마다 처용의 얼굴로 물리쳤다는 처용가. 그리고 너무 유명한 서동요. 백제 30대 무왕이 지나가는 길에 나타난 미륵 부처님 세 명,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짓고 미륵 삼존불을 세웠다고 하니, 현재의 미륵사라고 한다. 서동요는 내가 사는 이곳 지역에서 해마다 따로 축제와 행사를 할 만큼 자주 들어왔던 노래여서 그런지 더 반갑다.

 

 

서동요(薯童謠) - 서동(백제 무왕)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서방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

 

요즘 키워드로 서동은 ‘계략남’이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천하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장가를 가기로 마음먹고 서라벌에 몰래 잠입한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며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이 순진한 아이들 먹을 것을 받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친절하게 서동이 알려준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혼인도 안 한 처녀가 밤마다 남자를 안고 온다는 내용이 신라에 이슈가 되고, 그런 딸이 부끄러웠던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멀리 보낸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자기의 매력을 어필하며 마음을 얻고, 같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얻고자 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고 결국 쟁취하게 된 서동에게 박수를~! (근데 이거 요즘에는 허위 사실 유포나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의 범죄 아닌감?)

 

고려 가요는 고려 속요, 줄여서 여요(麗謠)라고도 부르며, 고려 시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린 불린 노래다. 고려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여 솔직하고 직선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서정성을 담았다는 게 특징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제법 있었는데 유교 사상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가시리, 청산별곡, 서경별곡, 정과정, 동동’이 실렸다. 반란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애절함을 노래한 가시리, 무신의 정권 다툼과 몽고의 침입으로 힘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괴로운 시절을 담은 청산별곡(이 노래는 후렴구의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가 유명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간 정서가 하늘을 보며 결백을 주장하고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정과정, 우리나라 최초의 월령체 노래라는 동동. 나의 눈길을 확 사로잡은 건 서경별곡이다. 오늘날의 ‘사랑과 전쟁’의 내용에 나올만한 이야기다. 수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온 관리와 사랑에 빠진 외로운 여인이 신분의 차이로 버림받고야 말았던, 남자는 임기가 끝나고 개경으로 돌아가 다른 가문의 여인과 약속된 혼인을 한다는... (이런 몹쓸~)

 

 

서경별곡(西京) - 작자 미상

 

서경이 서경이 서울이지만

중수(重修)한 곳인 소성경(小城京)을 사랑하지만,

이별하기보다는 이별하기보다는,

길쌈 베를 버리고

사랑하신다면 사랑하신다면,

울면서 쫓아가겠습니다.

 

구슬이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년을 천년을, 홀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대동강 대동강, 넓은 줄 몰라서

배 내어 배 내어, 놓았느냐 사공아

네 각시 네 각시, 바람난 줄 몰라서

가는 배에 가는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사공아

 

대동강 대동강, 건너편 꽃을

배를 타면 배를 타면 꺾을 것입니다.

 

길쌈에 특출한 재능을 버리고까지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너무도 간절한 여인의 마음을 그대로 노래했다. 얼핏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냥 놓아버리고 싶어질 만한데, 이 여인은 혈혈단신 외로웠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던가 보다. 혼자인 일상에 끼어 들어온 남자와의 시간이 외로움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고, 이대로 이 남자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인생을 그려왔을 터인데, 남자는 임기가 끝난 그곳을 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여인은 어찌 살아갈꼬. 상처가 아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듣고 있자니 아프고 또 아프다...)

 

 

시험에 잘 적용할 수 있게 수험서로 안성맞춤인 책이지만, 그냥 읽어도 재밌다. 우리네 조상들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어쩌면 현실의 우리 삶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황들이 많은 공감을 부른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삶이 애틋해서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읽어보고 싶다. 고대 가요와 향가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우리 삶을 노래하고 있을 것만 같다. 시조와 민요, 두시언해, 한시, 가사 등등. 시리즈로 묶여서 나올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문학 작품들의 고전을 많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의 고전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는 걸 이 작품집을 읽고 깨달았다. 장면을 그리게 하는 세밀화와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구절로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썩 괜찮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시어도 꼼꼼하게 재해석한 문장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고전 문학 이렇게 접하는 것도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중학생 조카에게 강추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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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좋아하는데, 예전만큼 어린이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조카가 분가한 뒤로 조카랑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책 읽기가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요즘에는 어떤 책이 나왔는지 먼지 찾아볼 기회가 줄어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작년에, 페미니즘 검색하다가 발견한 이 동화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서 다시 꺼내본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제목부터 익숙한 이야기가 굳이 다시 읽을 필요를 못 느끼고,

그냥 지나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기돼지 삼 형제>인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하다가 읽게 된 책이다.

 

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주 깔끔했다. 엄마 돼지한테 가정교육도 아주 잘 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과 다른 아기돼지의 연령이다. 아기돼지 세 자매는 사실 아기가 아니다.

결혼할 나이가 된 어른 여자 돼지다. 어느 날, 엄마 돼지는 세 자매 돼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른 예쁜 돼지 아가씨가 되었구나.

자, 이 금화 주머니를 하나씩 받아라. 가서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보도록 하거라……."

 

엄마돼지는 아기돼지들에게 자기만의 인생을 찾아 떠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신랑을 찾아 떠나라고 한 거다.

 

 

 

 

엄마돼지에게 돈주머니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세 자매는 헤어진다.

(같이 떠날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났다.

 

 

여기서부터 『아기돼지 삼 형제』와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떠날 때 엄마 돼지는 금화 주머니를 준다.

원작이 무작정 길을 떠난 돼지 삼 형제가 집 지을 재료를 얻어 집을 지었던 것에 비하면 돼지 세 자매는 금화를 들고 떠난다.

그렇게 받은 금화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사는 거다. (오~ 이 방법이 더 간단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을 보니 어느 정도는 변화해가는 사회에 맞게 구성된 게 아닐까 싶다.

돈이 없으면 뭘 못하잖아. 누가 집 지을 재료를 그렇게 준다고?

그렇게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의 행보가 기가 막힌다.

 

편안한 걸 좋아하는 첫째 돼지는 가진 금화 모두 털어서 커다란 벽돌집을 산다.

어느 날 아침, 첫째 돼지가 창밖을 내다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돼지 한 마리가 청혼하는 거였다.

"아리따운 아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제가 귀부인이 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돼지는 문을 열어주면서 생각했다. 예의 바르고, 돈도 있는 것 같고, 마음에 드니까 저 정도면 좋은 신랑감이라고.

그러나 그 돼지는,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다. 첫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지.

 

둘째 돼지는 가진 금화 반만 들여서 나무로 된 예쁜 집을 샀다.

첫째 돼지 때와 마찬가지로 멋진 돼지의 청혼을 받는다.

잘생기고 힘도 세어 보이고, 겨울에 땔나무 걱정은 없겠다는 판단에 그 돼지를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러나 역시 돼지의 탈을 쓴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결론.

 

이제 셋째 돼지가 궁금하겠지?

 

늑대는 돼지 가면을 쓴 채로 보리수나무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다.

돼지 두 마리로 포식하고 나니 배가 불러서 좀 쉬어야겠다. 소화도 시키고 낮잠도 좀 자려고.

그런 돼지를 지켜보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으니, 굉장히 사나워 보인다. 상황이 역전된 거다.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늑대 가면을 쓴 돼지'에게 자기가 사실은 돼지가 아니라 늑대라고 설명하느라 애를 쓰는데,

그에 '늑대 가면을 쓴 돼지'가 말한다.

"그래? 저기 가서 지푸라기로 만든 집에 숨어 있는 셋째 돼지를 잡아먹으면 네 말을 믿어 주지."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지푸라기 집으로 뛰어들면서 셋째 돼지를 후식으로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셋째 돼지 캐릭터가 그렇게 쉽게 잡아먹히는 것이더냐.

지푸라기 집은 셋째 돼지가 늑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이었다.

그렇게 늑대를 포획한 셋째 돼지는 늑대를 사로잡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래서인지 셋째 돼지와 결혼하겠다는 돼지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이... ^^

하지만 셋째 돼지가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았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아기돼지 세 자매>가 훨씬 재밌게 읽힌다. 글로 보면 A4 종이의 절반이나 채워질까 하는 정도의 분량인데, 그 흐름이 통쾌해서다. 독립하라고 집에서 내보냈던 돼지 삼 형제와는 아주 다르다. 돼지 세 자매에게 신랑감을 구하러 내보낸다는 설정은 참 구닥다리 같지만, 그 여정에서 보이는 돼지 세 자매의 태도는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비춘다. 외모나 태도로만 판단한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이 정도면 뭐, 하는 계산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다.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으니, 늑대의 손이나 발만 보았어도 돼지가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좀 더 신중하고 세세하게 상대를 살펴볼 생각을 못 한 거다. 반명 셋째 돼지는 늑대가 쓴 가면을 똑같이 이용한다. 늑대가 돼지 가면을 쓰고 돼지를 잡아먹었으니, 돼지도 늑대 가면을 쓰고 늑대를 잡아먹어야지!

 

 

 

 

(늑대를 포획하고 난 후의 셋째 돼지 표정 좀 봐라. 저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돼지 자매 두 명은 죽었지만, 신랑감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가 얻은 교훈은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아마도 그건 당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내가 똑바로 서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 동화였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 역시.(이 부분은 경쟁 사회에서 필요한 자세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적당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은 참 대단했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났던 여자 돼지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처음 길을 떠난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거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난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신랑, 결혼이라는 것은 삶을 차지하는 많은 의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니까.

여자의 행복이 결혼만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나, 어떤 남자를 선택하느냐에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나

요즘 세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개념은 아니니까.

사실 이건 여자 남자 따로 놓고 볼 일은 아닌데 말이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결혼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건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인생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다.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파고드는 메시지가 강하고,

통쾌한 결말에 큰소리로 웃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이야기다.

이 짧은 동화 한 편으로 요즘 시대의 많은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뭔가를 해결하고 찾아가는 느낌이 좋다.

 

 

페미니즘 동화를 검색하다가 같이 발견한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는데,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 주인공들이 멋있어서 아직은 코딱지만한 조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들이다.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동화 속 공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색다른 캐릭터들,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 여자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로 보여주고 싶은,

굳이 어린이가 아니어도, 엄마가 아니어도, 만나보면 좋을 책들이다.

 

 

 

 

 

 

 

특히 <종이 봉지 공주>는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이다. 너무 멋있었던 사이다 공주 때문에 박수를 막 쳐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이(청소년)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 참고하면 좋을 책 한권 더.

 

 

 

 

 

 

 

아이들 책을 바라본 최윤정 작가의 평론집인데, 어린이 문학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책 속의 구절에서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감정들, 실수들, 웃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몇 가지 주제를 정해서 골라놓은 책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굳이 부모가 아니어도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아이들에게 보여야 할 태도, 말 같은 것을 배우는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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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06-2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흥미롭네요!!

구단씨 2018-06-29 10:08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읽고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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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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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도 시골의 삶을 잘 모른다. 아마도 그건, 우리 집의 직접적인 생계 수단이 농사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집주변으로 몇 발자국만 가면 누구네 밭, 누구네 논, 누구네 과실수 등.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흙을 밟고 돌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도 내가 직접 그 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 살아왔기에, 그저 노인네들의 습관적인 넓은 오지랖이 부담스럽다고 여기는 정도였다. 아마도, 앞으로도 여기에 계속 살게 되더라도 나는 영원히 ‘시골의 삶’이라는 것을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마음이 남았다. 이 소설, 김종광의 『놀러 가자고요』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동안 느꼈던 게 겉으로만 보았던 어떤 어르신의 표정에서 다 읽지 못한 마음이었다면, 누군가의 푸념 같은 진심을 듣고 나니 조금 더 알게 되는 마음이 여기 있었다. 아마도 많은 부모의 생활이 그러하리라, 시골에서 사는 많은 이들의 진짜 속내였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주변의 작은 모습에서 유추하는 분위기 정도로만 봤던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부에 와 닿는 듯하다. 모두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단편은 하나의 단편소설이자 서로 연결된 장편소설이 된다. 작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연작소설 느낌이 난다. 구석구석 시골의 삶이 묻어난다. 범골의 역사로 마을의 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범골사』해설」, 「범골 달인 열전」은 구수함이 풍기는 시골의 모습이었다. 어느 시간에 누가 어떤 행적으로 그 마을의 이름을 오르게 했는지, 글로 전해지는 범골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산후조리」는 농촌의 생활 그대로를 전하는 강한 메시지처럼 들린다. 자녀의 산후조리를 끝으로 더는 산후조리를 할 일이 없을 거로 여겼던 어머니는, 송아지를 출산한 소의 산후조리를 맡게 된다. 장기까지 쏟아내며 자식을 내놓았던 소의 모습에서 인간의 탄생이 동시에 보인다. 어머니는 마치 딸을 돌보듯 소의 산후조리를 하는데, 그 모습이 애틋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밤을 새워가며, 젖병에 우유를 물려가며 돌보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막상 어머니들이 우리를 그렇게 키웠다고 생각하니, 세상 모든 일에 그런 최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뜬금없는 다짐까지 생기려고 한다. 농작물을 키워내는 일, 가축을 돌보는 일,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 모든 일이 생계와 연결되어 있다면 더더욱.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들어왔던, 누군가의 입에서 우스갯소리로 들었던 그 말이 생각났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 뭐.’ 농촌의 삶을 만만하게 봐서 나온 말일 테다. 지금은 농촌의 모습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모든 것을 바쳐 농사를 짓고,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남은 것들을 다 쏟아붓고 남은 것은 늙은 몸과 농사일이 버거운 현실이었다. 소문처럼 누구네 자식 일이 입에 오르내리고, 마을회관에서나 어울려 점심 한 끼를 때우는 일, 명절날 누구네 집 마당에 늘어선 승용차들로 그 집 자식들의 생활 정도를 점치고... 정작 그곳에 남아 생을 이어가는 노인들의 마음을 듣는 이들은 없다. 그저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서로의 입장을 나누며, 같은 삶을 이어가려 애쓰는 정도다. 4백만 원이라는 욕조기를 사드릴 수 없는 아들의 마음을 그대로 읊은 「만병통치 욕조기」로 그 모습을 확인한다. 다리가 아픈 어머니에게 찾아온 만병통치 욕조기를 파는 외판원의 온갖 꼬임에도 넘어가지 않는 며느리의 태도는, 시어머니의 아픈 다리보다 자기가 새로이 일군 가정의 안위가 먼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아들은 손에 카드를 쥐고 있으면서도 선뜻 내놓지 못한다. 아내가 또박또박 쏟아내는 불매의 이유를 반박할 수 없어서다. 바쁜 농사철이 지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시골 마을에 찾아드는, 흔히 행사장이라고 부르며 호객을 하는 집단에 찾아간 노인들이 두 손에 화장지며 달걀이며 바리바리 싸 들고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출입문을 통해 슬쩍 엿봤는데, 어르신들이 신나게 한 판 놀고 배를 채울 것들을 안고 가는 듯한 표정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어르신, 어르신’,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며 안마를 해주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품 홍보를 한다. 흡사 문화센터의 노래교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그들이 결국 마지막에 내놓는 건 고가의 제품들이었다. 처음에는 몇천 원짜리 생필품, 시간이 흐를수록 고가의 제품을 권한다. 무릎 통증에 좋다는 약, 가스 마시지 않아도 된다며 인덕션을, 누워있으면 허리가 저절로 찜질이 된다는 전기 매트,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준다는 약탕기. 필요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안 산다고 하면 자식들이 그거 하나 사주지 못하냐고 자존심을 건드린다. 「만병통치 욕조기」의 외판원은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구수한 입담을 쏟아내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을 퍼부으며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가발댁, 손만 댔다 하면 완벽하게 해내는 부업의 일인자 마늘댁, 돈벌이도 안 되는 노인회장으로 선출되어 아내를 더 바쁘게 만드는 김사또, 놀러 가자면서 2박 3일 일일이 전화를 하면서 남편의 일을 덜어주는 아내 오지랖, 진실을 왜곡하며 부풀리는 거짓말 제조기 소설가 소판돈, 견인차를 부를 필요도 없이 마을의 도랑에 빠지는 모든 차를 꺼내주는 김견인 등.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각각의 개성이 넘쳐흐른다. 어디 개성뿐이랴. 그들이 한데 모여 만드는 범골은 눈물 나게 웃기고, 웃음 나게 슬프다. 그곳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상에, 거를 것 없는 푸짐한 말들, 정말 들어야 할 말을 듣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게 하는 노인들의 ‘썰’들이 웃기다. 일할 젊은이가 없고, 5대의 거주민들을 청년이라 부르고, 농촌 노총각의 인생이 의미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자식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좀 괜찮아졌나 싶으며 어김없이 터져버리는 구제역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삶. 어릴 적 경험하고 피부로 접했던 농촌의 푸근함은, 현실의 팍팍함과 힘듦으로 푸근함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어떡하나. 그들 삶의 터전에서 그 삶을 이뤄주는 것들을 보듬어 안으면서 또 살아가야 할 것을...

 

 

 

농사철에 일정 잡았다고 걱정하셨는데요, 노인분들이 농사철 아니면 움직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잖아요. 추우면 추워서 안 되고 더우면 더워서 안 되고 먼지 많아도 안 되고 바람 많이 불어도 안 되고 비 맞아도 안 되고 딱 이맘때밖에 없어요. 괜히 옛날부터 사오월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요. 석가모니 부처님도 하필이면 사월 초파일에 딱 맞춰 태어나신 것도 다 까닭이 있다고요. 농사철 중에도 논갈이 끝나고 못자리하기 전에 좀 한가하잖아요. 그래서 딱 그때로 정한 거라고요. 그것도 회장님 혼자 정한 게 아니고 회의에서 여러분이 정한 거라고요. (113페이지)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는 이곳의 삶이 어떻게 흐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일 년에 한번 놀러 가자고 하는 마을 사람들의 약속. 오지랖 여사는 놀러 간다는 사람의 확답을 듣기 위해 마을 주민 모두에게 전화를 건다. 저마다의 사정과 핑계로 인원을 추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식이 온다고 해서, 다리가 아파서, 그날은 국민안전의 날이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확답을 안 한다. 대신 전화를 건 오지랖 여사를 붙잡고 시시콜콜한 자기들의 이야기를 한다. 손녀가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는, 치매 부모를 모시기가 힘이 든다는, 무릎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된다는, 생일이라고 자식들이 와서 생일 밥 먹자는 이야기 같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싶은데 대상이 없었다는 듯이, 지금 전화를 건 당신이 아니면 누구에게 말할까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 마음은 비단 시골 생활이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따로 사회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아닌 이상, 노인의 삶은 말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니, 말할 대상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누구 하나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덜 외로운 노년의 인생을 지낼 것만 같다는 듯이.

 

작가가 풀어내는 『놀러 가자고요』 속 범골의 이야기는 범골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00 마을에서 지내는 우리 모두의, 우리 부모의 이야기이자 삶이었다. 혹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에 담았던 풍경들을 확인하는 듯해서 소설 속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농사와 상관없는 삶을 이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9편의 단편이 전하는 것은 농사를 생계로 하는 시골의 삶뿐만이 아니라, 노인의 삶도 같이 비추고 있었다. 우리네 부모의 삶이자, 어쩌면 우리가 곧 만날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이 살기 좋게 발전하고 변한다고 해도, 노인으로 가는 인생의 이치는 바뀔 수 없으니까 말이다.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고이는 웃픈 이야기다. 익살스럽게 풀어낸 이야기마저 마지막에는 씁쓸한 속내를 들킨 기분으로 읽게 된다. 몇 문장만 읽어도, 나른한 오후의 풍경처럼 여겼던 농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확인하게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또 살아갈 그곳 사람들의 풍경이 가슴에 깊게 남는다. 작가가 풍성한 입담으로 쏟아낸 이야기가 인생의 고충을 그대로 담아내서일 테다. 아직은 내가 다 겪지 못한 그 삶의 고뇌 같은 것을 미리 맛본 기분이다. 어른의 삶은 이런 것인가 싶어 서글퍼지다가도, 아직 남아 있는 어린애 같은 마음에 또 웃음이 나는 일의 반복. 그러다 보니 인생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고, 걱정 앞에서는 한숨도 쉬고, 즐거운 일에는 실컷 웃기도 하는, 이런저런 눈치나 사정 같은 거 잠시 접어두고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가보자는 게 뭐 어때서.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서른 명쯤은 채워야 버스 움직이는 게 좀 신날 텐데, 오지랖 여사가 돌린 전화가 의미 있을 텐데, 범골 노인들 미적미적 뒤로 빼는 분들 많던데 확답을 줬는지 모르겠다. ‘그날 봐서’가 아니라, 그날은 그냥 다 같이 놀러 가는 날로 도장 쾅~! 찍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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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덥고,

이상하게 비도 정신없이 퍼부어대고,

책은 잘 안 읽지만,

여전히 관심 가는 책들은 늘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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