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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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이런 방식으로 문학을, 고전을 공부했다면 더 흥미롭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아니면, 그때는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해서인지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했던 것이 이제 와 다시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 한 보따리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드는 생각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더 재밌게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이 될 것이고, 시험과 상관없는 독자라도 즐기면서 읽는 우리 고전 가요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든 만나게 된다면 울고 웃게 될 이야기 한판이라는... ^^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의 첫 번째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이다. 고대 가요와 향가, 고려 가요를 소개하고 있는데, 분명히 한번은 들어봤거나 읽어봤던 내용이어서 낯설지는 않다. 특히 시험에 자주 나오는 작품을 선별해서 실었다고 해서인지 반갑기까지 했다. ^^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더 재미있게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소개 글에서도 언급되는 게 ‘개정 교과 과정의 흐름에 맞추어 나온 문학 교과서 최고의 부교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흐름이나 문장을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기도 해서 소화하기에 괜찮다. 소개된 각 가요의 뒤에는 원곡을 실어두어 원래의 맛을 보게 해주었고, 간략하게 ‘핵심 정리’를 추가해 두어 요점정리 형식의 공부를 하게 했다. 거기에 가요의 내용에 맞게 함께 담긴 그림은 각 구절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구절에서 보이는 장면을 상상만 하기에는 부족한 것을 그림을 더함으로써 완벽한 이해를 돕는다. 굳이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즐기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는 마약 같은 교재가 될 듯하다.

 

 

 

고대 가요는 고조선 시대부터 통일신라 이전까지 지어진 모든 시문학 갈래를 말한다. 너무 오래되어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문학사에서 중요한 네 작품을 소개해주었는데, ‘공무도하가, 화조가, 구지가, 정읍사’가 실렸다. 그중에 한 곡 「정읍사」를 소개해보자면, 장사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여인의 노래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남편이 가는 길에 별일 없이 다니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며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형상을 옮겼다. 아마도 이 구절 들으면 다들 ‘아하~’ 할 것 같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때? 가물거리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해지지? ^^)

 

 

정읍사(井邑詞) - 작자 미상

 

달님이시어,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시옵소서.

장터에 가 계신가요?

진 곳을 밟을까 두렵습니다.

어디에든 내려놓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님 가는 곳 저물까 두렵습니다.

 

향가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창작된 시 문학이다. 향찰(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국어 문장을 적는 표기법)로 기록되었다. 4구체, 8구체, 10구체 등 3가지로 나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서동요, 모죽지랑가, 도솔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처용가’가 실렸다. 주제도 다양하다. 화랑도의 의리를 노래한 모죽지랑가, 먼저 가버린 동생을 생각하며 아파하는 제망매가, 임금과 신하, 백성 모두가 함께해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된다는 희망가인 안민가, 대범하게 역신을 물리치고 역병이 돌 때마다 처용의 얼굴로 물리쳤다는 처용가. 그리고 너무 유명한 서동요. 백제 30대 무왕이 지나가는 길에 나타난 미륵 부처님 세 명,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짓고 미륵 삼존불을 세웠다고 하니, 현재의 미륵사라고 한다. 서동요는 내가 사는 이곳 지역에서 해마다 따로 축제와 행사를 할 만큼 자주 들어왔던 노래여서 그런지 더 반갑다.

 

 

서동요(薯童謠) - 서동(백제 무왕)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서방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

 

요즘 키워드로 서동은 ‘계략남’이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천하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장가를 가기로 마음먹고 서라벌에 몰래 잠입한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며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이 순진한 아이들 먹을 것을 받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친절하게 서동이 알려준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혼인도 안 한 처녀가 밤마다 남자를 안고 온다는 내용이 신라에 이슈가 되고, 그런 딸이 부끄러웠던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멀리 보낸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자기의 매력을 어필하며 마음을 얻고, 같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얻고자 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고 결국 쟁취하게 된 서동에게 박수를~! (근데 이거 요즘에는 허위 사실 유포나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의 범죄 아닌감?)

 

고려 가요는 고려 속요, 줄여서 여요(麗謠)라고도 부르며, 고려 시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린 불린 노래다. 고려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여 솔직하고 직선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서정성을 담았다는 게 특징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제법 있었는데 유교 사상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가시리, 청산별곡, 서경별곡, 정과정, 동동’이 실렸다. 반란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애절함을 노래한 가시리, 무신의 정권 다툼과 몽고의 침입으로 힘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괴로운 시절을 담은 청산별곡(이 노래는 후렴구의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가 유명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간 정서가 하늘을 보며 결백을 주장하고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정과정, 우리나라 최초의 월령체 노래라는 동동. 나의 눈길을 확 사로잡은 건 서경별곡이다. 오늘날의 ‘사랑과 전쟁’의 내용에 나올만한 이야기다. 수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온 관리와 사랑에 빠진 외로운 여인이 신분의 차이로 버림받고야 말았던, 남자는 임기가 끝나고 개경으로 돌아가 다른 가문의 여인과 약속된 혼인을 한다는... (이런 몹쓸~)

 

 

서경별곡(西京) - 작자 미상

 

서경이 서경이 서울이지만

중수(重修)한 곳인 소성경(小城京)을 사랑하지만,

이별하기보다는 이별하기보다는,

길쌈 베를 버리고

사랑하신다면 사랑하신다면,

울면서 쫓아가겠습니다.

 

구슬이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년을 천년을, 홀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대동강 대동강, 넓은 줄 몰라서

배 내어 배 내어, 놓았느냐 사공아

네 각시 네 각시, 바람난 줄 몰라서

가는 배에 가는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사공아

 

대동강 대동강, 건너편 꽃을

배를 타면 배를 타면 꺾을 것입니다.

 

길쌈에 특출한 재능을 버리고까지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너무도 간절한 여인의 마음을 그대로 노래했다. 얼핏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냥 놓아버리고 싶어질 만한데, 이 여인은 혈혈단신 외로웠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던가 보다. 혼자인 일상에 끼어 들어온 남자와의 시간이 외로움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고, 이대로 이 남자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인생을 그려왔을 터인데, 남자는 임기가 끝난 그곳을 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여인은 어찌 살아갈꼬. 상처가 아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듣고 있자니 아프고 또 아프다...)

 

 

시험에 잘 적용할 수 있게 수험서로 안성맞춤인 책이지만, 그냥 읽어도 재밌다. 우리네 조상들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어쩌면 현실의 우리 삶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황들이 많은 공감을 부른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삶이 애틋해서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읽어보고 싶다. 고대 가요와 향가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우리 삶을 노래하고 있을 것만 같다. 시조와 민요, 두시언해, 한시, 가사 등등. 시리즈로 묶여서 나올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문학 작품들의 고전을 많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의 고전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는 걸 이 작품집을 읽고 깨달았다. 장면을 그리게 하는 세밀화와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구절로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썩 괜찮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시어도 꼼꼼하게 재해석한 문장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고전 문학 이렇게 접하는 것도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중학생 조카에게 강추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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