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빈말로라도 마음에 없으면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스치듯 우연히 만나는 사이가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을 일이 일어나는 건 드물다. 그래서 그런 빈말에 마음을 두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내가 먼저 꺼내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언제였던가. 서른 즈음에 중학교 동창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인지 자주는 아니어도 그렇게 어쩌다 한번, 몇 달에 한 번 정도 우연히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내는 정도. 어느 날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한테 언제 시원한 생맥주나 한잔하자고 그러면서 인사하고 지나갔다. 그 친구가 느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면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인사하고 지나갔다. 그 친구의 제안이 씁쓸했던 건 빈말이라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언제 한 번 시원한 생맥주 한잔하자고 하면서 내 연락처를 묻지 않고 갔다. 몇 년 동안 몇 번을 지나치며 인사했어도 그 친구와 나는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그런 상대에게 내가 '다음에'라는 가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술 한 잔'이라는 '다음에'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거다.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에'가 있을 수 없을 거, 아닌가

 

전작들을 꾸준히 챙겨 읽고, 개정판 특별판 한정판 등등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기존 출간작도 관심 두게 하는, 인터넷서점의 출간 알림을 설정해놓은, 나에게 이도우는 그런 작가다. 6년 만에 출간되었다는 이번 작품 소식이 반갑다. 느려터진 내가 다행히도 선착순 사인본을 놓치지 않았다. 힘들었던 건, 받아놓고도 바로 읽지 못하고, 이제 좀 읽어보려고 하니 폭염에 책을 손에 들 수 없었다는 거. 힘들지만, 읽어냈다. 사람을 읽고,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전하는 삶의 모습들을 읽었다. 아마도 특별한, 아주 특별한 뭔가를 기대하고 읽었다면 밋밋하고 재미없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런 기대를 한 독자가 있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조금 기대했다. ^^) 이야기는 평범했고, 잔잔했다.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던 여자가 어렸을 적 자랐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그곳에서 고교 동창이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싶던 순간에 시골 동네의 작은 서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듣는 시간 때문에, 오래전 해묵은 상처부터 기억 속에서 잊으려고 애쓰던 상처까지 같이 찾아오고야 말았던, 하지만 이곳에서 다시 찾은 것들 때문에 상처는 비워지고 마음이 채워진다다는 내용

 

 

 

 

 

 

 

 

 

듣고 보니, 별거 없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에서 높낮이가 심한 감정을 읽는다거나 사건의 출렁임을 자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잔잔한 흐름에서 발견하는 사람들의 한마디, 의외의 장면에서 삶의 뭉클함을 찾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아아, 속이 시원하다."

이제 해원은 추운 것도 못 느꼈다. 실내복에 맨발엔 은섭의 슬리퍼만 꿰신고 나왔는데도 몸에서 이상하게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명여가 통쾌하게 외쳤다.

"그래, 다 망가져버려라! 내가 망가지는데 집이 멀쩡하면 되겠니, 같이 고장 나야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145페이지)

명여 이모의 낡은 펜션으로 찾아온 해원은 이모가 왜 펜션을 방치하는지 몰랐다. 이 장면을 읽고 있던 나도 몰랐다. 그러나 명여가 통쾌하게 외치는 그 순간의 감정은 알 것 같았다. 답답함이 폭발하듯, 본인은 닫아두고 꼭꼭 눌러두면서 그 감정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단속하고 살아온 것 같은데, 고장이 난 수도가 폭발하듯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순간, 명여의 마음도 폭발했으리라.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감정은 작은 틈새로라도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이건 뭐, 새어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폭발했으니 얼마나 거대했을까. 이렇게 소리치고 싶던 순간이 명여에게 얼마나 많았을까? 담고 있자니 아프고 답답하고, 쏟아내자니 그게 감당이 안 될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자책의 순간을 조금은 더 끌어안고 있었으리라. (명여가 왜 자책하면서 15년을 살아왔는지는 소설의 후반부에 나온다) 이 장면을 읽는데, 몇 문장 안 되는 명의 외침을 듣는데, 갑자기 뭔가 확 터지는 것 같은 기분에 은근슬쩍 개운함마저 들었다. , 한파에 수도는 터지고, 물은 분수처럼 튀어 올라온 집을 얼음 왕국으로 만들었지만, 명여의 속은 시원했을 것만 같다. 그러면서 감정이 이입된다. 누구나 그런 순간 담고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차마 꺼내놓을 수 없는 말에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 어디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외치고 싶은데 그래서도 안 될 일들, 그게 담아두고 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니까.

 

이게 시작이었나 보다. 서울 생활이 지친 해원이 강원도 시골의 이모 집을 찾아든 이유도 명여 이모가 외치던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시원하게 쏟아냈으니, 이제 회복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거다. 이야기는 그 길을 참 천천히 걷게 한다. 당장 뭔가를 전환하는 게 아니라 서서히 걷는 길을 여는 것만 같다. 고장이 난 수도 때문에 펜션 호두하우스의 수리 기간은 열흘 정도 걸린다고 했다. 수리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명여 이모는 친구 수정의 집으로, 해원은 은섭의 집으로 임시 피난처로 삼는다. 그리고 서서히 상처를 비우고 마음을 담는 시간을 연다. 해원은 은섭의 서점 굿나잇책방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은섭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서점 일에 몰두하면서 피곤했던 서울에서의 시간을 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섞이는 법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얼음 왕국이 되어 흉가처럼 보이던 호두하우스는 일주일의 시한부였지만 굿나잇책방의 이벤트 상품으로 활용된다

 

소설 곳곳에서 묘사되는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그려진다.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의 분위기를 그리면서 읽게 되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 모여든 나이 성별 불문한 책모임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작고 허름한 기와집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펼쳐질 작은 서점 내부, 여름 내내 푸르게 자랐던 벼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겨울 논의 스케이트장,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리어카의 뒷자리에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승호, 뭔가를 계속 만들면서 손을 놓지 않는 소녀 감성 수정 씨, 엘이디 전구로 바꾸라며 영업에 열을 올리지만 그래도 책이 좋아서 책방을 찾는 거라고 믿고 싶은 근상 씨, 반항하는 이미지 뒤로 속이 꽉 찬 아마추어 래퍼 현지. 그중에서도 명여 이모의 표정을 계속 그리면서 읽게 되는데, 내가 바라보는 명여 이모의 얼굴은 항상 뭔가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 말을 하지 못하는 나날들 때문에 명여 이모는 단 하루도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해원의 인생에 책임까지 느끼지는 않았을까? 상당히 복잡한 표정의 명여 이모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한밤에 창으로 비친 달빛에 의지해서라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할 말이 너무 많지만 할 수 없어서 곧 죽어도 계속 써 내려가야만 하는 사람, 그렇게까지 했건만 다 쏟아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전에 이모가 했던 말을 생각해봤어. 날씨가 좋으면 만나자는 건 너무나 기약이 없다는 거. 그러게, 좀 더 때가 되면, 상황이 좋아지면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일들이 내게도 있었어. 이젠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401페이지)

 

어쩌면 우리에게 화해나 용서, 상처를 덜어내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무게가 없는 말들이 그 순간을 만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잔뜩 날 선 마음을 둔해지게 하기 싫었나? 나를 방어하기 위해 계속 뾰족하게 있어야 했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더는 안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의 제목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다는 말은,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과 같다고 명여 이모가 그랬다. 그건 만나지 말자는 말이라고. 그랬다. 그런 빈말들. '다음에'라며 약속 시각을 못 박지 않고 흐지부지 잊어주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말. 해원이 보영에게 지금은 너무 춥다면서 날씨가 좋으면 만나자는 말을 했을 때, 아마도 해원은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 속 상처를 들추는 시간을, 그 상처를 다시 꺼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어쩌면 영원히 기억에서만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런 상처들이 안에서 머물기만 한다고 좋은 걸까? 그대로 있어도 괜찮을 걸까? 아니다. 괜찮지 않으니까 우리는 매번 그 상처를 조금씩 들추고, 싸우고 화해하고,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는 거 아닐까. 그 괜찮아지는 시간은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하는 건가 싶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갈 게 아니라, 먼저 찾아가서 그날 날씨를 좋은 날로 기억하라는 듯이. 결국은 그 상처도 치유도 내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너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이, 세월이 흐르니까 이렇게 용기를 내게 하기도 하는구나' 싶은 조금은 늦어버린 안심.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손을 내밀어야 하는 순간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날씨가 좋은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으니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것으로 시작한 빈말(?)'우리가 같이 밥을 먹은 그 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는 마음 가득한 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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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0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장미 2018-07-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말말고 꽉찬 말로..... 우리도 밥 한번 먹어요.ㅎㅎㅎㅎㅎ
완전 진심!

구단씨 2018-07-28 00:11   좋아요 0 | URL
속을 꽉 채울 수 있는 음식을 골라봐야겠어요~!! ^^

다락방 2020-02-2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 채널 돌리다 이 드라마를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어? 이건 이도우 작가 책인데?! 저는 읽지 않은 책이지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고, 오, 이거 분명 구단씨 님의 리뷰 있을거다! 하고 찾아왔어요. 역시 있었습니다! 헤헷 :)

구단씨 2020-02-28 15:38   좋아요 0 | URL
아... ^^
언젠가부터 드라마 방영 시작 예고도 많이 하더라고요.
알면서도 드라마는 못 봤는데, 반응은 궁금합니다. ^^
 
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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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어떤 설문에서인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아니, '어떤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는가?'였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 질문을 받고 별것 아닌 것처럼 들렸던 한 문장을 꽤 오래 생각하고 답했다는 것뿐. 지금 생각해보면 두 질문은 다르지만 닮았다. 어쩌면 하나로 엮어진 질문일 수밖에 없는, 하나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꿈꾸는 나라와 내가 바라는 대통령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나라를 이런 대통령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현재 우리 삶을 아프게 하는 일들을 사라지게 할 국가의 손길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빈부 격차나 실업률, 미세먼지 대책, 최저임금이나 법정근로시간 등. 요즘 지겹게 뉴스에서 보는 아픈 일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줄 나라와 리더를 원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 답은 너무 어려웠나 보다. 지금까지 몇십 년이 흐르도록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면서도 앞으로도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나의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런 나라와 대통령을 찾기 어렵다면 만들면 되지 않으냐고, 그 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여기 있다.

 

 

아로니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 재선 대통령 김강현. 재밌게 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며 만든 나라. 주인 없는 지역을 접수하고 거대한 프로젝트 성공시키듯 아로니아 공화국을 만든다.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한다면서 높은 건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건물의 최대 높이는 5층. (인구가 많지 않으니 가능한 일?) 공기를 오염시키는 자동차도 없다. 걸어서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된다. (나라가 넓지 않으니 가능한 일?) 아주 탄탄한 국방 시스템으로 군대가 필요 없으니 군 면제 특혜 비리 같은 것도 없다. 공부하라고 스트레스 주는 사람도 없다. 오직 신나게 잘 노는 방법을 가르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한다.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기업이 소득을 배분한다. 아이의 탄생은 국가 전체의 축제이며, '영원히 행복할 의무'를 부여받는다.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허투루 여기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자격이 없고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마땅하다. 잘라서 말한다. 아로니아 시민은 곧 아로니아 국가 그 자체다. (151~152페이지)

 

듣고 있자니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다. 이런 나라가 있을 수가 없잖아. 그러니 이런 말장난 같은 거 그만두고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가 바라던 나라가 바로 이런 나라 아니었을까?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상하를 나누는 학습이 아닌 공부, 치열한 경쟁에서 이뤄내야 할 부유함이 아니라 보통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것. 누구나 바라지만 함부로 이뤄지지 못할 일이기에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이뤄놓은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김강현과 그의 일당들은 해냈다. 이상향의 나라를 상상 속에서 머물게 놔두지 않고 현실로 옮겨왔다. 이제 아로니아 공화국의 국민들은 재밌게 잘 놀면서 행복해지기만 하면 된다. 그게 아로니아 공화국 국민의 의무다.

 

이런 나라가 있다니! 아니, 이런 나라가 있다면 누구라도 먼저 가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이 땅에서 겪는 불행한 삶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안고 찾아가고 싶을 것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그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그 불행과 반대되는 정책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데 놓치고 싶지 않다. 그곳으로 가면, 내가 아로니아 공화국 국민으로 속한다면 정말 행복해질 것만 같다. 그렇다고 믿었다. 아로니아 공화국 국민도, 아로니아 공화국을 만든 김강현 대통령과 개국공신들도. 처음에는 그들이 바라는 이상향에 맞는 나라로 갖춰지고 있음에 너도나도 행복했다. 신난다. 그들이 그리고 꿈꾸던 나라가 이렇게 이뤄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이 무슨 신성한 일이던가. 하지만 그 꿈같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던 세상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이었다. 그 바람이 이뤄지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몇 년 동안 그들이 그리는 세상을 차곡차곡 만들어가면서 확인하게 된 건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강현의 아내 강수영이 현 정권의 야당에 가입하고 차기 대통령이 되어 이루고자 하는 건 그들이 이룬 국가의 소멸이었다. 아니라고 하지만, 기존의 국가들이 국민을 불행하게 했던 요소들을 배제하고 끌어가는 게 아로니아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점점 피어오르는 건 국가의 본성이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양립할 수 없게 하는 국가 운영 시스템이 그러했다. 관리와 통제, 규율과 제재, 그 이상의 여러 가지가 국가와 국민이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없게 했다.

 

소설은 김강현의 과거와 대통령 퇴임을 앞둔 일흔의 현재를 교차로 보여주는데, 그의 과거가 서술되는 장면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김강현이 대학에 가고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검사가 되고 또 검사를 그만두게 되는 과정이 암울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비춘다. 부정부패와 부조리, 학연 지연으로 공정하지 못한 판결의 순간들, 세상이 미쳐 날뛴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엇 하나 인간의 행복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시스템에서 수혜의 대상이었던 김강현이 뒤늦게 깨달은 것이 국가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런 국가를 떠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 타이밍에 끼어 들어온 무리로 김강현은 아로니아 공화국의 건립을 실행에 옮기게 된 거다. 그렇게 새로 세우는 나라에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 정말 잘 놀기만 하면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겠지? 이 소설을 읽는 나 역시 그럴 거라고 믿었고 기대했다. 소설에서나 가능한, 상상 속에서나 이루어질 일을 그려내는 순간의 희열 같은 것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국가가 국가로 존재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은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온전하게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강수영이 김강현에게 설명하는 장면을 볼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랬다. 김강현이 이룬 국가는 점점 우리 사는 현실의 국가와 닮아갔다. 그때 강수영이 제시하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공약 또한 기가 막힌다.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행복'이었다. 공산당이 없는 공산주의식 인간공동체를 꿈꾸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온전하게 이뤄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던 나라. 누구나 꿈꾸던 나라. 하지만 우리가 사는 모든 국가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준 결말. 마지막에 강수영이 제시한 국가도 역시 완전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그녀가 이룰 나라의 시스템 역시 과부하가 걸릴 수 있고, 그 시스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그녀가 김강현의 아로니아 당에 맞서 그린머슬아로니아 당에 입당하고 자기 생각에 목소리를 높인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된 강수영이 아로니아 공화국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다 듣지 못했기에 섣불리 강수영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강현에서 강수영으로 바통 터치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듣다 보면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된다.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문제를 먼저 찾을 게 아니라, 그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 먼저 점검해야 할 문제였다. 나라가 싫어서 떠나고, 나라가 싫어서 새로 만들어도 변하는 건 없었으니까.

 

시종일관 웃음과 기가 막힌 상상으로 독자를 시선을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그만큼 우리의 간절함을 담은 이야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김강현의 성장 과정은 특히나 재밌다. 꼴통이 첫사랑에 빠져 개과천선하여 성공한 남자로 거듭나는 게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배경이 흥미롭기도 하다. 그들이 모여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웃음이 끊이지 않지만, 소설은 결코 가볍게 흐르지 않는다. 분노와 아픔, 감동과 추억이 새겨진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행복 하고자 국가의 탄생을 이뤄냈고, 그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 국가의 소멸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행복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어디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그 행복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에 맞서 어떤 대안을 만들어서 행복에 이르러야 하는지 계속 묻는다. 그 대안이 국가를 세우는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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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65세 이상 어르신, 기초 연금 수급 대상자에게
휴대폰 요금 11000원 할인된다.
물론 그냥 앉아있으면 해주는 게 아니라
신청해야만 해준다.
어제 신청하려고 했더니 오늘부터 시행되는 거라 오늘부터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아침 9시 되자마자 고객센터 통화해서 신청했다.
해당 번호 가입자의 자녀라고 신분 밝히고
몇 가지 개인정보 조회한 후 바로 처리해주더라.

엄마가 가입한 통신사는 skt인데
고객센터 통화로 신청할 경우 바로 확인해서 해주고,
영업점에 가서 신청할 경우 본인이 신분증 가지고 방문.
가족이 대신 방문하더라도 가입자 신분증 가지고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엄마는 통화만 하는지라 저렴한 요금제 사용하려고 해도 없더라.
최소 요금 3만원 정도 나오는 거 사용하는데
거기서 11000원 할인이면 어디여...
(통신비 너무 비쌈...ㅠㅠ)

이번달 안으로 신청하면 다음달 청구 요금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이런 건 굳이 신청 안해도 해당되는 조건이면 알아서 다 해주면 안 되남?
어르신들이 고객센터 통화 얼마나 할 줄 안다고...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5&oid=421&aid=0003478108&mode=L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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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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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가 힘을 가지려면 빠질 수 없는 요건이 있다. 공감. 슬픔과 기쁨을 느끼면서 사는 우리지만, 그 감정이 다가오는 정도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건네 오는 말이 어떤 무게를 담고 있는지, 어느 타이밍에 다가오는지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귀찮음이 되기도 한다. 지금 작가가 건네는 말은 위로가 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혼란과 슬픔을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거기에 소설과 문학의 이야기가 있다. 문학 작품 속 장소와 작가를 향한 애정, 저자가 작가로 살아가는 모습의 순간순간이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와 있다. 그 문장들 구석구석에 담긴 진심과 숨겨진 위로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함정임. 소설보다는 에세이로 많이 만났던 작가다. 조금은 가볍게 읽어보고자 펼쳐 든 그녀의 책은 가볍지 않았다. 일상을 풀어내는 것 같지만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행지에서의 풍광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지만 사실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굵직한 삶의 무게였다. 쉽지 않은 글쓰기,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지구촌 곳곳에 닿은 발걸음이 새겨준 인생의 말들. 이번 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무게감은 더한 것만 같다. 묵묵히 걸어온 길에서 쌓이고 쌓인 말들은 더 많아진 것만 같다. 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말을 안고 가는 기분.

 

'언젠가부터, 괜찮냐고 묻는 것이 차마 꺼내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저자는 괜찮으냐고 묻지 않고, 썼다. 짧은 글들 속에서 계속 안부를 묻는다. 저자가 거처를 옮겼다는 부산의 곳곳부터 외국의 여행지에서의 인연들까지, 저자는 여행하면서 만난 온갖 것을 들려주고, 자기가 만난 책에서의 문장으로 말을 꺼내면서 계속 독자의 안부를 살핀다. 때로는 예술가의 삶을 위로하기도 하면서, 자주 독자를 자기가 많은 것을 느낀 그곳으로 인도한다. 저자가 만난 작가들의 세계, 특히 '보들레르와 랭보, 발레리, 말레르메의 시들, 라신, 베케트, 카뮈의 희곡들, 스탕달, 플로베르, 사르트르의 소설들, 바슐라르, 블랑쇼, 바르트의 비평들을 만나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보석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칼보다 강하며 죽음보다 영원하다는 것(117~118페이지)'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름은 알고 있지만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의 작가가 많은 건 유감이었다) 소설가가 만난 작가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대로 읽게 된다. 소설로 느낀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결코 행복하기만 할 수 없는 현실의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소설의 장면에서 만나는 장소를 여행하는 듯하기도 하고, 소설의 작가들이 살던 시간을 걷는 것 같기도 한 걸음에 독자를 동참시킨다. 그렇게 저자의 시선이 옮겨가는 곳을 볼 때마다, 저자의 여행 목적과 의미가 더 궁금해지곤 했다. 작가의 말들을 찾아서, 문학 속 문장의 감정을 떠올리며 찾아다니는 곳. 거기에서 저자가 추구하는,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문학의 깊이를 읽는다.

 

작가란 그저 이야기의 재미(오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흘러가는 시간에 맞서는 예술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 던지는 존재이다. 뭇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어긋나고 응어리진 현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작가이고, 소설이다. (78~79페이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과 문학에 관해 더 많이,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저자가 전하는 소설과 문학, 소설가들에 관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로의 삶이 어떠한지 저자의 소설 쓰기는 어떤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말하고 싶은 것을 느끼곤 했다. 무언가 잔뜩 말하고 싶지만, 깊이 있는 문장들로 그 마음이 온전히 건네져 오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한 듯한 느낌도 이어진다. 그리고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도 느낀다. 이 부분을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더 굵게 들려서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와 공감하며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소설이라는 매개로 연결되어 있고 싶은 간절함을 보게 된다. 차마 소리 내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해 전하고 싶은 문장들. 결국은 '쓰기'의 순간만이 그 위로와 치유가 가장 힘을 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페이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사랑하는 존재,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은 호모 나랜스들이다. 리베카 솔닛이 『멀고도 가까운』에서 밝힌 대로, 이야기꾼의 재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이야기의 힘은 쓰는 이든, 읽는 이든, 기본적으로 감정이입에서 나온다. (62페이지)

 

뭔가를 끼적이면서 맥락 없는 말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에 자기 검열을 하느라 참아온 말들 때문인지,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익숙한 순간들을 건너와야만 하는 일상을 버텨야 했기에, 괜찮은 척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순간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괜찮은 척도 하지 못해 차라리 말을 삼키곤 했던 순간들 때문이거나... 저자가 자기의 일상을 기록하며 책과 이어가는 삶을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건, 괜찮은 척도 하지 못하는 마음일 때 뭔가를 적어가는 시간으로 위로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을 들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일상의 많은 순간에 뭔가를 쓰면서 지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휘갈겨 쓰던 메모지의 용도를 다해 버릴지라도 뭔가를 쓰는 일은 습관처럼 익숙하다. 조금 전까지도 나는 스테이플러로 찍어둔 이면지에 이 책의 문장 몇 개를 끼적이기도 했다. 그 문장의 어떤 단어 때문인지 어떤 느낌 때문인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해도,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서였겠지. 문장에서 내 감정을 찾아내고, 그 감정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일. 그게 문학을 만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면, 저자가 말하는 소설의 의미와 닮았다.

 

소설은, 세간에서 쉽게 말하듯, 한갓 지어낸,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가 평생을 바친바,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이자 진실을 향한 지난한 길이다. 19세기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악령 들린 사람들이 연일 우리 앞에 불려 나오고 있다. 무소불위로 저지른 죄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할 수 있을지 염려하며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이고 지옥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 위로하고, 한 줌의 도덕이나마 소중히 지키며,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한 연대를 구축할 때다. (248페이지)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책을 읽고 짧게나마 끼적이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했다. '왜?'라는 물음으로 기억을 더듬어갔다. 나는 그때 왜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지치고 힘들었던 그 순간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다면 그 말이 더 튀어나오지 않게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하지 못할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건. 그리고 이어졌던 끼적임. 그 책이 하는 말을 더 이어가고 싶어서 뭔가를 계속 적어갔다. 그렇게 말하는 방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디고 느리지만,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글을 읽고, 하고 싶은 몇 마디를 말하는 게 아니고 쓰는 게 더 편하다. 저자는 '글쓰기의 역할이 위로의 숙명'이라고 말하지만, 그 숙명을 소설가인 자신이 안고 가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지만, 독자인 나, 우리는 그들의 숙명으로 오늘도 위로를 찾는다. 숨통을 트여본다. 각자가 가진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면서, 혹은 이렇게 풀어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옷으로 입혀지길 바라면서. 내가 이렇게 나를 보듬어주었듯이 누군가에게 가서 포근하게 안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몇 글자,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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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신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공지영 신간. 해리.

 

 

 

 

 

 

 

 

유홍준 산사순례

 

 

 

 

 

 

 

 

아르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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