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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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꽉 짜인 스토리에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뭐든 분명한 결말과 범인을 찾게 되는 사건에 길들어서일까. 그동안 미스터리 소설에서 확인하고 싶은 건, 확실한 답이었다. 발생한 사건에서 찾는 범인과 범행동기, 잔인할 정도의 수법에 기가 차는 이야기. 그렇게 하나의 사건은 해결되고 독자는 개운한 결말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특히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 등줄기 오싹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면 최고의 추리소설이 아니겠는가. 구라치 준의 이번 소설에서는 특히 그 기대가 컸다고 말할 수밖에. 왜냐고? 제목을 좀 봐봐. 기대를 안 하게 생겼나. 그동안 어느 추리소설에서 상상이나 했던 상황이었느냔 말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었겠어? 이 정도면 끝내주는 추리소설에 쌍 엄지 추켜들고 대박을 외치게 되는 상황이지.

 

마사키 박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시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대체 뭔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이 걸렸다.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157페이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밀실 같은 방에서 한 병사가 죽은 것으로 시작한다. 시체의 주변에는 하얀 두부 조각이 흩어져 있다. 방은 목격자가 나간 뒤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병사 한 명만 죽어있는 걸 빼고는. 아, 흩어진 두부 조각이 있었지. 죽은 이의 뒤통수에는 모서리에 찍힌 흔적이 있다. 아마도 이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모서리? 그 방에서 모서리는 없는데? 별다른 가구도 없고, 도구도 없다. 그렇다면 범행도구는 하나뿐이다. 두부. 그럼 그 두부는 어쩌다가 그 밀실에 들어가게 되었나? 마사키 박사가 숨진 병사에게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려라!’라고 말하며 야식으로 넣어준 것이다. 그런데 두부가 무슨 힘이 있다고 사람의 뒤통수를 가격할 정도가 될까.

 

이상하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사건은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다. 범행도구라고 남겨진 게 흩어진 두부뿐이라 단서는 그거 하나다. 그렇다고 두부에서 계속 사건 해결을 하려고 하니 뭔가 분명하게 찾아지는 것도 없다. 오리무중. 어찌 되었든 사건의 기승전결을 찾아야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당신은 이런 사건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그래서 계속 이 사건을 추리하는 등장인물들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끝장을 보고 싶어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시선이 향하는 쪽은 죽은 이가 아니라 두부다. 도대체 왜, 두부는 거기서 그런 형태로 남아있는지, 그것만 찾으면 될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아아아아악~! 답답하도다! 판타지 같은 해석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단 말인가.

 

 

시신이 있는 곳이었다.

젊은 여성이다.

반듯이 누운 자세라 마치 잠든 것 같다.

옷에도 훼손된 부분이 없다.

평온해 보이는 시체다.

다만 딱 한 가지가 몹시 기이하고 묘했다.

괴상하고 기괴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만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뭐, 뭐지 이건…….’ (80페이지,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이 작가의 분위기가 원래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신선하면서도 경쾌하다. 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 하나 특이하지 않은 게 없다. 물론 그 바탕에는 인간의 심리와 어느 지역의 풍습 같은 미신이 작용하는 게 있다. 특히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둘러싸고 작은 케이크 3개가 시신의 머리 둘레로 진열되어 있다. 시신의 입에는 긴 파가 그대로 꽂혀 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살해의 현장이 참 묘하다. 케이크와 파라니. 형사들은 탐문 끝에 용의자를 바로 찾는다. 이제 용의자를 잡아서 취조하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케이크와 파가 같은 공간에서 묘하게 살해 현장을 장식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은 것은 과학적이고 명쾌한 답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감정적인 것만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살해 동기와 과정을 찾아서는 안 되지만, 또 그게 사건을 설명하는 유일한 답이 되기도 한다.

 

잔뜩 긴장하고 읽으면서 그 오소소한 소름을 즐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서 읽었는데, 첫 이야기부터 그 긴장감은 박장대소로 뒤바뀌었다. 「ABC 살인」 인간의 심리를 참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쇄살인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 피해자는 A 지역에 사는 A, 두 번째 피해자는 B 지역에 사는 B. 누가 봐도 다음 피해자는 예상된다. C 지역에 사는 C일 것이다. 도박으로 유산을 탕진한 주인공은 돈이 궁하다. 자기보다 살짝 더 받은 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하자 동생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ABC 연쇄 살인에 편승하여 동생을 죽여 버리자. 그럼 자기의 단독 범행은 연쇄살인에 묻어갈 수 있고, 범행이 성공했을 경우 동생의 재산도 갖고 보험금도 받고 일석이조. 딱 좋아. 그런데 주인공의 살인 계획에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등장한다. 처음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계속되는 방해꾼(?)들에 주인공은 당황한다. 어라? 이거 뭐지? 한번, 두 번. 계속되는 방해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러면서도 씁쓸한 기운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에게 내재한 살해와 분노의 감정이 이 정도로 많았던가? 인과응보처럼,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주인공도 그 누군가의 살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변수를 간과했다. 자기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인간이 선택한 편리함 이면에 자리한 거대한 오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내 편애」는, 인간이 발명한 것에게 역으로 공격당하는 기분이 든다. 인간이 설정한 인공지능이 인간이 해야 할 거의 모든 일을 대신에 한다. 특히 분명하게 선을 그어놓고 처리해야 할 일들에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가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일에 투입된다. 잘 됐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 앞에서 주춤할 필요가 없으니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여기서 판단 오류가 생겼다. 인공지능이라고 완벽할 수가 없던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지만, 인간보다 못한 감정으로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무감정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평등과 균형을 위해 도입한 시스템에서 오히려 인간이 처리할 때보다 더한 불평등과 오해가 쌓이게 된다. 과연 인간이 발명한 시스템은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게 맞는 걸까? 기계의 편애로 엉망이 된 생활을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분투가 눈물겹다.

 

휴식하려고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간 주인공이 눈여겨보게 된 고양이의 눈빛(「밤을 보는 고양이」)은 인간이 보지 못한 부분의 흔적을 쫓는다. 듣고 보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게 흔적을 느끼게 하는 후각. 그리고 그런 고양이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 살펴보며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누군가에게 가격당한 이를 대신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읽게 되는 틈(「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은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의 행동까지 하게 하는지 묻는다. 사실 그 내막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말자고 묵언의 약속을 하는 게 또 인간이 아니겠는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규정을 어기는 일은 인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지키면서 살자.

 

하마오카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저분한 갈색으로 시든 담쟁이덩굴이 얽힌 폐건물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한다. 네코마루 선배는 연구원 중 누군가가 농땡이를 치러 이곳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천적인 의견이다. 한편 가시와 씨는 수상한 사람이면 무섭다고 말했다. 여성스러운 생각이다. 산본마쓰 연구원은 정말로 스파이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연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다운 견해다. 처지에 따른 세 가지 생각. 이렇게 의견이 나뉘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257페이지,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때로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말하는 게 문제의 답이 되기도 한다. 마치 다양한 장르를 한데 모아놓은 것처럼 펼쳐지는 6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궁금했다가, 기대했다가, 어이없다가, 씁쓸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게, 어느새 논리를 꽉 채운 구성으로 뒤바뀌기도 하는 상황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장면을 상상했다가 코믹한 상황에 웃음도 안 나는 뒤통수에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거 미스터리 맞아?’ 하면서. 아마도 그게 이 작가의 매력인 듯하다. 골라 먹는 맛이 다양해서 찾는 뷔페처럼, 의외의 순간에 찾게 되는 답이 더 즐거운 것처럼, 느슨하게 마음 놓고 있다가 툭 치고 들어오는 긴장감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6편의 이야기가 너무 개성이 넘쳐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단편집 읽는 다양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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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어린이과학동아 1년 정기구독 (24권)
동아사이언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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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선물용으로 구매. 초등학생 눈높이에 딱 맞는 과학이야기가 흥미로움. 정기구독으로 매번 구매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딱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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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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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은 있어도 우연한 이별은 없다.

장점이 단점으로 단점이 더 큰 단점으로 서서히 부각됐다.

누가 뭐래도 제눈에는 예뻤던 것이 남들보다 더 흉하게 보였다. 못 견디게 싫었다.

남편을 포획한 아내. 더는 아내로 볼 수가 없었다. (213페이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공통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를 꽉 쥐고 있는 사랑은 가짜라고, 또 그런 사랑에 끌려가는 이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순간 그 사랑을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방식의 사랑 역시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랑을 하면서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덜 아프게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사랑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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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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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상상 해본 적이 있던가? 미래의 어느 시대, 인간의 한계를 채워주는 시스템이나 로봇 같은 게 우리 삶에 익숙해진 상황을. 상상에서만 멈추지 않고 실제로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만나는 게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그런데 물리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이 소설에서 시도하는 정신적인 부분의 삭제와 추가 같은 건, 언젠가 우리가 바랐던 여러 가지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에서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것, 내 기억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것. 그 어느 것이라도 우리는 그걸 선택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이유는 하나. 기억을 삭제하거나 추가하는 건, 우리가 불행이라고 여기는 순간을 사라지게 하려는 거다. 아픈 기억을 지우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가짜 기억이라도 심어두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자기 슬픔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은 기억 개조 기술의 보급과 함께 과거의 유물이 되어 갔다. 미래는 불명확하다. 그렇지만 과거는 바꿀 수 있다. (67페이지)

 

가짜 기억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었다. 치히로는 불행했던 성장 과정의 한때를 지우고 싶었다. 아내 외에도 다른 여자들의 '의억(나노로봇이 만들어낸 가공의 기억)'을 가지고 살았던 아버지와 자식인 치히로 외에 다른 아이들의 '의억'을 가지고 살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치히로는 상처받았다. 왜 옆에 아내가 있는데도 여자들의 의억이 필요할까, 왜 바로 앞에 당신 자식이 있는데도 아이들의 의억이 필요할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처는 존재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시간을 지우고 싶어서 업체에서 살 '레테(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해주는 나노로봇)'를 삼켰다. 하지만 잘못 설정된 알약은 레테가 아니라 '그린그린(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이었다. 치히로의 기억에 소년 시절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가 경험하지 않은 청춘 시절의 기억이 심어진 거다. 그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쓰나기 도카는 치히로의 첫사랑이었고, 현재의 어느 순간마다 도카는 추억이 되어 치히로의 기억에 소환된다.

 

잊으려던 기억 대신 만들어진 어느 시간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혹시 새로운 소설 한 편을 쓰는 기분은 아닐까? 어쩌면 이 기억 때문에 애써 지우려던 시간이 행복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새로운 기억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 더 불행하게 할지는. 다만, 그 전의 불행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의뢰를 하고 알약을 삼키는 것일 테지. 치히로는 자기가 원하지 않은 기억을 갖게 되었으니 삭제하면 그만이다. 원래 바라던 행복을 향해, 다시 받은 진짜 레테를 삼키면 된다. 의뢰하지 않은 기억 따위 삭제하면 그만인데... 그러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도카의 존재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거짓 기억인 걸 알면서 거부하는데도, 순간순간 거짓과 사실 사이에서 흔들렸다. 자기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인 걸 알면서도 점점 확신할 수 없었다. 자기만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고 있었다.

 

"기억이란 건 마음먹기에 따라서 너무나 쉽게 왜곡되기 마련이니까." (39페이지)

 

결국 인간은 믿고 싶은 걸 미게끔 되는 것이다. 진실을 견디지 못할 때 인강는 인식을 왜곡한다. 현실을 바꾸는 것보다 그쪽이 편하니까. (114페이지)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가. 같은 시간의 경험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때 내가 이랬잖아. 아니, 그때 너는 저랬거든. 어느 날의 기억은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로 써진다. 우리는 이런 불완전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치히로가 혼란스러운 이유도 이해가 된다. 삽입된 기억이 아니라 진짜 그의 과거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가공된 기억이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도카와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둘이 함께한 시간의 행복을 찾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도카는 실재의 사람이 아니니까. 그때 가공의 기억에서만 존재해야 할 도카가 치히로 앞에 나타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가공의 기억에 존재하는 도카가 치히로의 인생에 뛰어들었던 것은 말 그대로 가공의 시간에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도카를 현실의 치히로 앞에 내놓은 건 무슨 이유일까. 작가는 판타지 같은 사랑을 그려놓으며 독자를 설레게 했다가, 도카를 현실 속에 내놓음으로써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LP판의 앞면 뒷면을 뒤집어가면서 들어야 앨범의 노래 전체를 들을 수 있듯이, 치히로와 도카의 시선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펼친다. 이어지는 도카의 인생은 치히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온 시절, 천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격리되듯 살아온 시간이 그녀의 성장 기간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찾은 상상의 시간은 그녀에게 위로가 됐다.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그리면서 이야기에 빠져 지내는 일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 방법 같았다. 그녀의 이런 재능은 '의억기공사(가공된 기억을 만드는 전문 인력)'가 되게 했고, 어느 날 의억을 의뢰한 치히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기와 너무 닮은 치히로의 슬픔에 그녀는 자기 자신을 투입하여 그와의 시간을 구성하고, 치히로의 기억 속 첫사랑이 된다.

 

잘 생각해봤을 때 내게 잊고 싶지 않은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잊고 싶지 않은 장소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아찔해졌다. 대개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도 있다는 걸 알면, 무엇보다 먼저 잊고 싶지 않은 일들을 적기 시작할 것이다. 그걸 몇 번이나 거듭 읽으며 뇌에 각인시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잊어버릴 수 있다면 잊어버리고 싶은 쓰라린 기억을 도려내고 나면, 남은 것은 빈껍데기와 같은 무가치한 기억밖에 없었다. (248페이지)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의 만남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삭제와 추가는 엄연히 반대의 의미가 아니던가. 기억 삭제를 원하는 사람에게 의뢰하지도 않은 기억의 추가를 설정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도카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갑자기 발병한 신형 알츠하이머(예전의 기억부터 사라지는)에 걸린 스무 살 인생이, 무엇을 기억하고 갈 수 있을까. 도카는 치히로와 다르지 않은, 불행하고 아팠던 시간보다 아름다운 첫사랑 하나쯤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카의 간절한 바람이, 기도가 반영된 의억이 실재가 되어버린 일. 도카가 의억기공사로 일하면서 추구했던 의미와 같다. 그렇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도카의 발칙한 장난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 심어두고자 하는 바람 같은 게 느껴진다. 힘들고 슬프게 자라온 시간에 그 정도의 보상은 허락되어도 좋지 아니한가. 그러면서 동시에 읽히는 감정. 자신과 다르지 않은 치히로의 시간도 자신의 존재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고 말이다.

 

"인생에는 이따금 그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행복하기만 한 인생이 그리 흔하지 않듯이, 불행하기만 한 인생도 그리 흔한 게 아냐. 도카는 도카의 행복을 조금만 더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341페이지)

 

가짜 기억과 가짜 추억으로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들려주는 청춘의 사랑으로, 우리가 바라는 삶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다. 가짜이지만 경험하지 못한 기억을 심어놓는 게 괜찮은 건지, 경험으로 녹아든 기억을 인위적으로 삭제하는 게 괜찮은 건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겪는 온갖 경험의 기억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우리는 삭제 버튼 하나로 그 슬픔을 다 지울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 잊어가면서 살아가는 동안 남는 건 사랑뿐일까, 하고. 만들어진 사랑일지라도, 가짜 사랑일지라도, 환상일지 몰라도, 그게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나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 사랑일 수도 있다니... 사랑을 불신하고 청춘의 시간이 불행했던 이들에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순간이 된 것만 같다.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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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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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만큼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에너지를 뿜어대면서 활력이 생기기도 한다. 뭔가 모순되고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미워하는 일이 힘껏 애써야 하는 일이 되는 게,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게 슬프다는 것 말고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거 아닐까 싶었다. 그건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생기는 이상한 마음이기도 했고, 누군가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을 때도 비슷하게 작용했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절대 내가 먼저 손 내밀지 않을 거야, 하는 마음의 다짐이 내 표정을 악하게 만들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내가 받은 그대로를 돌려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믿었다.

 

혜진에게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버지가 고독사했단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 봐도 한참 전이다. 아버지와 혜진은 그런 사이였다. 누군가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 관계라고,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을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혜진의 마음과 태도가 이해되더라. 나부터도 그랬지만 여러 매체에서 보여주듯 이해할 수 없는 부모들의 태도가 이런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는 걸 알아서일까. 그렇게 소식을 듣고 언니와 함께 찾아간 경찰서에서는 아버지의 죽음과 그 죽음을 처리하는 절차를 알려준다. 황당하지만 부모의 죽음을 알리는 경찰 앞에서 뭐라고 표현할 방법은 없다. 그저 서류상 자식이라는 관계를 부정할 수 없으니 이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면 된다.

 

이런 기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왕래 없던 아버지가 고독사 했고, 3주간 방치된 시신이 이웃의 신고로 발견되었으니 가족이 와서 수습을 하라는 연락을 받는 일. 연락을 받는 순간에는 놀라긴 했겠지만, 곧 화가 나지 않았을까? 혜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생각도 없다. 그녀가 자란 세월의 흔적들을 떠올리면 아버지의 죽음 따위 관심 밖의 일이어야 했다. 아버지가 평생 가족에게 해왔던 일이 무엇이던가? 가출과 외도를 일삼고, 사업과 주식 투자에 몰두하다 가산을 탕진했다. 그런 이유로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되었으며, 항상 부족한 생활에 시달려야 했던 가족들이다. 아이였던 혜진과 언니는 따뜻한 가정을 꿈꾸기보다 집을 들락날락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어른 같은 아이로 자랐고, 그런 남편을 아이들의 아버지로 인정하며 살아가야 했던 엄마의 슬픔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런 힘든 생활을 견뎌오다가 부모님은 헤어졌고, 그렇게 헤어진 뒤에도 아버지는 변한 게 없었다. 툭하면 일을 벌이고 자식들에게 돈을 요구했으며, 마치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당당했다.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애초에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족이 이렇게 상처받고 와해할 지경에 이르게 만들지는 않았겠지. 오랜 세월 그런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인연을 끊고 지낸 게 2년쯤 전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고독사를 알리는 전화가 혜진에게 반가울 리 없다.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거다.

 

아버지가 밉고 화가 나지만,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 할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처리해나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자기 가정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맞는 거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다.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도 없었고, 아이를 돌볼 수도 없었다.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도 힘들었다. 남편이 옆에서 집안일을 많이 해주고 아이를 돌봐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혜진의 일상이 있다. 혜진이 움직이고 돌아다니면서 챙겨야 할 그녀만의 일상이 있다. 그것도 해내지 못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은 극단적인 상상을 하기도 했다. 자꾸만 아버지의 마지막 공간이 생각났다. 오래되어 방치된 시신, 그런 곳을 깨끗하게 치우고 나가야 하는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대행업체를 찾았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냄새를 마주해야 했다. 방치된 아버지의 시신이 남긴 건 오래되다 못해 젓갈 냄새가 나는 유품과 빚이었다. 견디고 일어서야 했다. 남편과 병원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싶어 막막했다. 오랜 세월 힘들게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럼 다 정리된 기분으로 개운해야 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뭔가와 마주해야 하는 이 기분을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말이다. 나는 그걸 아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혜진은 그런 기분을 '기분이 없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기분이 없는 기분. 형체가 없는 기분일까? 뭘까?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기분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혹시, 내 마음이 없어진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하지 못하고, 저렇게 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 급기야 '나'라는 사람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크게 바라는 것 없었다. 그녀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기 삶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자꾸만 들여다보던 마음은 엉망이었다.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기분이 없는 기분이라는 게 뭔지,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 상태가 기분이 없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는...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고 가능한 일들. 좋은 거 앞에서는 좋아하고, 싫은 거 앞에서는 싫어하는 기분이 드는 게 당연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당연한 일을 느낄 수 없다는 게,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게 너무 슬프게 들린다. 부모의 부재가 불러오는 상실감 같은 게 아니었다. 미워하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개운함이 아니었다. 분명 아버지는 죽었는데,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다. 그건 아버지의 고독사 때문일까? 아니면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던 성장 과정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이 기분이 우울하다는 것과 이 우울을 떨쳐버려야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다. 그 힘든 여정을 혜진은 시작했다.

 

가끔 들려오는 고독사가 내 아버지의 이야기가 된다는 상상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고독사는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고독사가 왜 이르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홀로 생활하게 되는 과정이 누구나 비슷하지 않겠지만, 이런 경우의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 가족과 헤어진 아버지가 그런 죽음으로 세상을 마무리했다는 게 안쓰러울 법도 하건만, 왜 나는 혜진의 아버지에게 자꾸 분노가 이는 걸까. 왜 그런 마지막으로 끝까지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떠나는 걸까 싶은 원망이 들었다. 결국은 마음의 병까지 얹어주고 떠난 당신을, 당신이 죽었는데도 용서할 수가 없다는 화가 치밀었다. 이것도 우울이라면 나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겠지만,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그대로 증명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치료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할까 싶지만, 언젠가 혜진도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치유의 결말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경험한 슬픔과 우울은 가슴에 새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한번 내 몸에 들어왔던 병이 나가고 면역력이 생겼을 것 같지만, 사실 언제나 같은 강도로 오는 병이 아니더라도 그 병은 비슷하게 또 마주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는다. 나는 그렇더라.

 

우울증이 생겨서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이 된다는 것. 기분이 없는 기분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너무 생생하게 들려온다. 어쩌면 이런 비슷한 기분을 우리도 종종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그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진단받지 못한 병이 되어버려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곤 하지 않았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우울증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해야만 하는 우리 앞의 일들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 묻기도 하는 것 같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의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대부분이겠지만, 그 문제들에 따라오는 감정의 문제는 누가 해결해주기 어렵다. 혼자 견뎌내야 하지만 분명 주변의 도움도 간절해진다. 가족과 친구, 혹은 전문가의 진료까지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방법을 몰랐던 건 아닌데, 선뜻 손 내밀기 어려워서 주저하던 것을 이제는 당당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혜진에게 어느 날 닥친 아버지의 고독사는 그동안 혜진의 마음에 담아두었던 산을 하나 넘어가는 일이었다. 이 산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음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랜 세월 그녀의 삶에 발목을 잡고 있던 것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한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감정을 털어내고 행복을 찾는 일은 너무 어려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건너가야 할지,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지금 처한 환경도 달라서 혜진과 같은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지 몰라도, 세상을 통과하는 방법 하나를 배운 것만 같다.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감정과 우울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가 바라는 구체적인 위로와 치유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혜진이 방문했던 병원의 선생님이 하는 말처럼, “우리 목표가 약을 끊는 것은 아니잖아요? 잘― 지내는 것. 그게 우리 목표”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는 이 기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이 삶을 유지하고 오늘을 잘 지내는 게 목표가 되는, 행복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위로였던 거다. 나 스스로 잘 지내게 될 일상으로 가는 길을 이렇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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